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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링 Jul 31. 2022

트리 모양 모르는 맛

친구가 '싫어! 체크리스트'를 만들라고 했다.


한 달 전까지 모쏠이던 친구가 그새 연애를 시작했다. 그것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우리가 기적이라고 일컫던 일을 기어코 해낸 것이다. 이번에도 이상한 놈에게 반하고 차인 내게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앞으로는 별로인 걸 쭉 써보는게 어때?"

상대방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위주로 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막상 써보면 걔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란 걸 알게 될걸? 지금 그게 문제잖아."

사실 친구의 말이 천퍼센트 맞았다. 이제까지 나쁜 건 꼭꼭 숨겨놓기 바빴다. 한번 좋아보인 사람은 계속 좋게만 보고 싶었고, 그럴수록 데미지가 컸다.  친구는 그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좋으면 그때 몸과 마음을 내어주라고 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맞는 말이었다.

"'싫어! 체크리스트' 를 만들어."

이번만큼은 그녀의 말을 따라보기로 했다.


얼마 전 만난 J의 '싫어!' 리스트를 작성해보니 놀랍도록 많았다. 나이는 있는데 아무 일도 안 했고, 그닥 잘생긴 편도 아닌데 대화가 썩 잘되지도 않았고,

「비포 선라이즈」 를 싫어했고, 소설을 무시했으며, 첫날부터 돈 얘기를 너무 많이 했다.


전국적인 통금만 아니었어도 집까지 갈 일은 없었을 텐데. 하지만 우리 집은 지나치게 심심했고 넷플릭스는 심각하게 지겨웠다. 덕분에 이번 연도엔 산뜻한 연애와 절교했다. 아, 절교라기엔 다소 민망한 사이. 우린 서서히 멀어졌다.


집에 가자마자 J는 새로 장만한 가구와 인테리어의 가성비를 읊어댔다. 수다스러운 만큼 잘 듣는 편도 아니었는데, 공감능력조차 미미했다. 쓰다 보면 한 페이지는 족히 넘어갈 텐데 기를 쓰고 싫은 점을 보려니 더부룩했다. 잘 덮어만 두던 걸 파헤치려니 이래도 될까 싶었다. 그렇다고 몇 년간 고수했던 시스템을 고집할 순 없었다. 더는 엄한 놈한테 상처 받고 울며불며 친구들에게 전화하고 싶지 않았다.


오른쪽엔 당연히 ‘좋아..’ 리스트도 있다. 우선 대두가 아니고(당연한 게 아니다.), 목이 한 뼘만큼 길고, 애니를 좋아하고, 착한 것 같고, 솔직한 것 같고, 홍대에서 자취를 하고, 가면 직접 키운 허브를 따 칵테일을 만들어 준다.

고작 이럴 수는 없었다. 이제 보니 거진 시집을 살 때처럼 상대를 고르고 있었다. 한결같이 “좋아하는 분위기에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만 찾았으니 낭패를 볼 만 했다.


어쩌다 보니 크리스마스이브에 J와 만났다. 오늘만큼은 절대 칵테일과 빔프로젝터에 홀리지 않겠노라 결심하고 집을 나섰는데, 우선은 이브니까 하이볼도 마시고 사시미도 먹었다. 걔는 술이 들어가자 고백하듯 말했다. 글을 쓰고 있다고, 책을 낼 걸 거라고. 경제학과 인류학을 엮은 새로운 관점이라고. 차라리 걔가 바텐더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J는 크리스마스 전주부터 대놓고 달랐다. 스파이더맨을 보기로 한 날, 자꾸 손을 잡으려 했다. 그날따라 피터의 거미줄처럼 엉겨 붙었다. 내가 알기로 깍지는 섹스와 명백히 다른 범주였다.


이자카야를 나서며 “오늘은 집에 갈 거야.” 했더니 걔가 여태껏 본 적 없는 얼굴로 말했다. 집에 케이크를 사다 놨는데 케이크가 눈 내린 트리 모양이라고. 이브에 혼자 트리를 잘라먹을 만큼 나쁜 애는 아니었다.


 사이 내린 첫눈 같은걸 자르니 체리 쥬빌레도 나왔고, 엄마는 외계인도,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도 나왔다. 모르는 맛도 있었다. 걔는 찬장에서 내가 넌지시 말했던 코냑을 꺼냈다.  레논이 즐겨 마셨다던 브랜디 알렉산더의 베이스로, 전에 없던 술이었다.


여름에 나를 찼던 걔가 이랬을까. 친구는 엄한 놈한테 상처받고 오지 말라며 내게 비법을 알려줬는데, 상처는 커녕 도무지 좋아지지 않았다. 반할 수가 없었다. J와 키스를 하면서도 줄곧 여름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게 ‘싫어!’ 리스트는 내 안의 금사빠를 성공적으로 박멸했고, 나는 J의 카톡을 연이어 씹었다. 기분이 엿 같았다.


반하는 걸 좋아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기꺼이 반했다. 그렇게 끌려간 곳은 어김없이 드넓었다. 지겨운 나를 벗어나 바람을 맞으면, 싫어했던 것도 좋아지고 몰랐던 이름조차 선명해진다. 그 기분에 취해 있다 보면 여기가 모래사장인지 남극인지, 롯데타워 전망대인지 우리 집 옥상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볼만 엄청 따가웠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넘쳐나는 애처럼 굴었는데 아껴야 하는 것이었나. 남은 게 뭔지 헷갈렸다.


여름의 걔한테 연락이 끊긴 날, 카페에 앉아 노트를 꺼냈다. 왜 내가 싫어진 걸까. 답 없는 질문만 연거푸 던지며 지난날을 퍼먹었는데, 어디를 퍼도 모르는 맛이었다. 그러다 눈이 올 때쯤 알게 된 것이다. 걔네들은 그만큼 내게 꽂히지 않았단 걸. 내가 J에게 반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전까지는 모르던 맛이었다.


2021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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