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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링 Sep 07. 2022

땡스 투 하루키

자기 스스로의 신이 되기

수능이 끝나고 도망치듯 해외로 갔다. 나름 어려서부터 간직해  꿈이 있었다. 코코샤넬처럼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포트폴리오 학원 선생은    "너는 패션은 아니야"라면서 브랜딩 쪽이  맞을  같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브랜딩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로 다만 패닉에 빠져 그를 원망했다.


우습게도 그 말 한마디에 여태껏 고이 모셔뒀던 꿈을 구겨버리고 패션이 빠진 그냥 ‘디자인과’에 진학한 것이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무엇보다도 대학이 가고 싶었던 탓이다. 꿈은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면 정말 죽어버린다는 걸 알았다.




기숙사는 런던의 섀드웰(Shadwell)에 있었다. 반짝거리는 3파운드 치킨과 케밥이 널려있던 동네였다. 역 앞 아파트에 모여있던 남자 무리는 내가 지나갈 때마다 일제히 나를 쳐다봤고 난 할 수 있는 한 가장 끔찍한 상상을 하며 곧장 집으로 왔다. 상상 속에서 난 자주 죽었고, 다쳤다. 해가 지면 무서워서 나갈 수 없었고, 쉴 새 없이 노크하는 옆방 토미는 텐션이 너무 높았다. 표정이 풍부한 연기과 학생이었다. 우리 기숙사는 학교와는 좀 떨어져 있었다. 기숙사 아이들끼리 친목을 다졌고, 모임의 중심에는 늘 토미가 있었다. 난 한 번의 모임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들은 술을 마시며 상식 퀴즈를 풀었다.


다들 달뜬 얼굴로 핸드폰을 한 손에 들고 퀴즈를 냈다. 우리에게 배스킨라빈스와 손병호가 있다면 이들에겐 상식 퀴즈가 있다. 펠릭스가 말아준 진토닉(본인만의 레시피가 있다며)을 쥐고 프린스 찰스의 미들네임을 묻고 답하며 가장 세계적인 섹스 포지션 따위를 재현하는 이들 사이에 있고 싶지 않았다. 술에 취해 상식 퀴즈를 푼다고? 이 와중에 머리를 쓴다고? 알고 보니 영국은 일주일에 한 번씩 펍 퀴즈 나이트(Pub Quiz Night)가 있을 정도로 퀴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날만 되면 신이 나서 펍으로 뛰어가는 애들도 있었다.


그 후론 토미가 문을 두드릴 때마다 불을 끄고 숨을 죽였다. 토미는 방을 차례대로 두드렸고, 가장 끝쪽에 있는 내 방을 두드리기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공유 주방엔 모르는 남자애들이 자꾸 왔다 갔고 난 미어캣 같은 그들에게 어색하게 하이(hi..)하고 되도록이면 방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밥도 방에서 먹고 술도 방에서 먹고 잠도 방에서 잤다. 죽을 맛이었다. 외동으로서 혼자 놀기의 진수를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영 달랐다. 나에게는 맥북과 몇 권의 하루키 책 밖에 없었다.


그때 하루키에게 빠졌던 것은 참 다행스럽다. 다자이 오사무였다면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루키 본인처럼 소설 속 주인공은 대체로 부지런했고, 규칙적으로 운동했으며, 때깔이 고왔다. 외롭고 슬퍼도 때깔은 고왔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진짜로 자유롭기 위해선 루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무조건 매일 나가서 걷기. 두 가지만 해도 끔찍해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난 자주 내 모습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방엔 벽면 거울이 하나 있었다.

오고 가며 그 거울을 지나칠 수 없었고, 3평짜리 방에서 거울과 함께 사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마치 여기에 내가 있다는 걸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거울을 봤다. 자기 자신을 너무 의식하다 보니 세상이 들쭉날쭉했다. 매일 아침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서야 지구는 둥글어졌다. 밤에는 나갈 수 없었다.


그 무렵 토미 친구의 플랫 메이트(flat mate)가 일주일 뒤에 죽은 채 발견되었다. 토미는 그 친구의 방에 놀러 갔다가 맡은 악취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그 소식을 듣고 다른 기숙사에 사는 친구와 나는 서로의 생사를 확인해주기로 했다. 3일 이상 연락이 안 되면 의심해보기. 흘리듯 말했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외로움은 생각보다 층이 다양했다. 그 중심엔 절대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감정이 있다.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거라는 생각과 이런 끔찍한 나는 죽어도 마땅하다는 생각이 뒤엉켰다. 그 와중에 내 방은 남향이었다. 큰 창 너머로 해가 뜨고 질 때마다 세상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큰 산 없이 낮은 지붕 사이로 해가 꼴딱 꼴딱 넘어갔다.


유학생활이 재밌었다면 습관적으로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하루키를 조달해 읽지 않았을 것이며, 그의 산문집에 등장하는 숱한 사이키델릭 록밴드와 재즈 명반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알게 된 노래들은 나를 또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해가 지날수록 세계는 점점 부풀기만 한다. 섀드웰(Shadwell)에는 아직도 혼자 꺽꺽거리며 우는 아이가 있다. 그건 고독이 아니라 고립이었다. 난 다루기 까다로운 편이었지만 가까스로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는 일을 터득했다. 그 후에 유진목 시인의 인터뷰를 읽고 그 시절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에 나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신이 되어야 하고 스스로 행운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옥타비아 버틀러 <야생종> 11쪽


유진목 시인이 <디스 옥타비아>에 인용한 문장이다. 보호자 없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아프지 않게 돌보는 일. 그렇게 아프지 않고 자신과 잘 지내게 되는 방법. 난 아직도 계속 깨닫기만 하고 미묘하게 달라진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자꾸 멀어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멀어졌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엔 자신과 잘 지내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고 그들이 사람들에게, 세상에 이로울 거라는 믿음이 있다. 세상과 잘 지내기 위해 스스로의 신이 되어야 한다면, 난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신이 되고 싶다. 아직도 난 상상 속에서 금방 죽고, 자주 다친다.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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