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전이

정신과 일기 - 1

by pajaroazul

병원을 다니는 요즘, 아침저녁으로 시간에 맞춰 약을 먹는다. 저녁에 먹는 개수가 더 많은데, 뭐가 뭔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의사를 믿어볼 따름이다. 효과는 괜찮았다. 약하게 시작해보기로 한만큼 부작용도 적었고, 졸리긴 하지만 어차피 감수할 작정이었다.

예전 정신과는 신촌에 있었던 데다 학교 상담소의 추천을 받아 간 곳이라 그런지 인기가 많았다. 예약제였지만 늘 붐볐고, 간호사는 한 명이라 지켜보는 내가 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의사 선생님은 차분하셨지만,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어림잡아 쉰 정도 되어 보이시는 선생님은 교수님 내지는 아득한 어른 같았다.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어떤 일로 오셨나요?'라고 묻는데 면접실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진단명을 알려주지도 않으시고, 환자의 감정 동요에도 시종일관 침착함을 유지하시는 선생님께 솔직해지기가 어려웠다.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다고 둘러대는 경우가 많아졌고, 약도 먹다 안 먹다를 번복하다 멋대로 끊었다. 당시 약의 부작용도 심했어서, 양학 정신과에 대해 전반적인 불신이 있었다. (딱히 한의학이라고 신뢰하는 것도 아니지만) 과연 정신과 의사들은 처방하는 약을 본인이 먹을 수 있을까, 란 의문부터 시작해서 상담심리에 관한 한 테라피스트들보다 실력이 떨어진다는 선입견까지. 잘 맞는 의사를 찾는다는 게 말이 쉽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집 근처로 평이 괜찮은 곳을 점찍고 간 병원, 의사는 생각보다 젊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보통 의사·상담사들은 경험이 쌓일수록 실력이 좋다고들 하니까.


삼주 차에 접어든 지금, 선생님이 마음에 든다. 여러모로 깔끔하셨고, 최선을 다해 진료해주셨다. 간호사가 여럿이고 일처리가 빠른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 연기이든 아니든 간에, 내 건조하고 뒤틀린 유머에 웃어주신다는 점이 기뻤다. 농담을 설명하거나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수동 공격적인 자조가 동정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얼마나 즐거운지, 월요일 오전이 일주일 중 최고의 순간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상대와 대화를 하고 있다고 느끼는 때였고 유일하게 소리 내어 웃는 시간이었다. 얼마나 우습고 처량 맞게 들릴지 안다. 자기 말만 들어주면 좋아 죽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것도 치료 목적으로 만난 돈이 오가는 의사·환자 관계에서.


아닌 게 아니라, 예상치 못한 감정이 낯설기도 하고, 하필 이를 치료자에게 느낀다는 사실이 못마땅했다. 혹시나 싶어 찾아봤더니 '전이현상'이란다.


감정 전이 또는 전이(轉移, 영어: transference, 독일어: Übertragung)는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고안한 개념으로, 과거의 상황에 느꼈던 특정한 감정, 혹은 날 때부터 무의식에 새겨진 정서를 현재의 다른 대상에서 다시 체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을 치료자 등에게 무의식적으로 전환(redirection) 혹은 투사(projection)하는 것이다. 출처: 위키백과


기왕 전이를 일으킨 김에 다각도로 살펴보기로 했다. 나란 인간은 의사라면 껌뻑 죽는 건가? 내 말을 들어주기만 하면 상대 불문 전이를 일으키는가? 심리상담가들을 여럿 만났지만 최소한 남성 상담사들에게 전이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여자 교수님에게 일으킨 적은 있는 것 같다) 이전 의사 선생님에겐 라포 형성조차 하지 못했었고. 지금 병원이 여러가지로 마음에 든단 점도 한몫했다. 선생님과 대화를 하다 보면 연락을 끊은 소꿉친구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 아이도 몇 년 뒤면 전문의를 따겠지. 인턴 생활은 이미 끝났을 텐데, 잘 지내고 있을는지 따위의 생각들. 친구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혹시 날 임상실험 환자 정도로 여기고 훈련하는 거 아냐?"

그는 아니라고 선을 긋곤 역으로 물었다.

"너야말로 내가 정신과 지원하고 싶어 하는 거 알고 벌써 뽑아먹는 거 아냐?"

"그렇다기엔 너무 허접인데?"

우린 배가 찢어져라 웃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일종의 전이였다.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서 보고 싶은 것만 골라봤다.


하여간 전이 때문에 일부 환자들은 필요 이상으로 내원하거나, 이성 감정까지 갖는단다. 병원에 갈 때 치장을 한다거나, 주치의에게 이것저것 준다는 글엔 안타까운 미소가 지어졌다.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가뜩이나 우울증으로 힘겨워하는 환자 입장서 이런 것까지 대응해야 한다니 씁쓸했다. 그러나 나는 자존심만 강한 껍데기 인간이므로 악을 써서라도 부정하리라. 엉터리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로맨틱한 내담자·상담자 관계는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고, 존재해서도 안된다. 우수에 찬 비련의 (하지만 살짝 미친) 여주인공이 되기엔, 아이러니하지만,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웃긴 건 선생님의 실력이 얼마나 기가 막힌 지, 내가 쓸데없는 전이 따위에 주의를 기울이는 동안, 정작 마주해야만 하는 근본적인 문제로 화제를 돌리시더라. 아, 짜증나. 말랑말랑하던 기분이 '진로'라는 단어에 싹 굳는 느낌이었다. 화를 내기는 싫었다. 취업 시장이 어떤지 아시냐고. 진즉에 진로가 정해져서 패논패로 시험만 붙으면 되는 전문직이 뭘 아냐고 쏘아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죽하면 이러고 있겠냐고, '보여주기 식'이라기엔 나도 잃는 게 너무 많다고. 하지만 아직은 선생님이 좋아서 싫은 소리를 하기 싫었다. 아직까지는.


문득 내 브런치를 알려드리면 어떨까, 란 생각이 든다. 건너편에 앉아 건방을 떠는 20대 환자에 대한 그림이 좀 더 잡히시겠지만 동시에 오만정이 다 떨어지시리라. 그런데도 알려드려야겠다니. 암, 그래야 나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