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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jaroazul Mar 29. 2022

딱 한번만 더 싸워보자

정신과 일기 - 3

 지난주는 파란만장했다. 의사에게 정곡을 찔린 뒤 내내 언짢았고, 반발심에 저녁용 항우울제를 먹지 않고 버팅겼다. 불안 약은 안 먹는다고 당장 큰일이 나진 않지만, 항우울제는 얘기가 달랐다. 금방 불면증이 도졌고, 깨어있는 중에도 기분이 크게 요동쳤다. 주말엔 2년 가까이 마시지 않던 술에도 손을 댔다. 보드카와 맥주, 소주를 마구잡이로 섞어 마셨다. 거지 같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집안에 또 우환이 생겼다. 아버지의 눈물을 마주하거나 위로할 깜냥 따위 내겐 없었다. 가족들이 모두 외출한 토요일 밤, 비겁하게 혼자 술을 들이붓고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 헛소리나 지껄일 뿐이었다. 단짝 중 하나는 "사랑한다"는 뜬금없는 고백에 같은 말로 화답해주지 않고 어색하게 얼버무렸다. 내게 절연당한 친구는 어째서인지 SNS를 모두 지우고 잠적해버렸고, 짝사랑했던 정신과 레지던트 개XX는 나의 안부 연락을 씹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차단했나 보다. 대체 내가 뭘 했다고?) 주초 27번째 생일을 무사히 넘겨 안도했던 기분은 온데간데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지? 누구 아는 사람?


 ... 이런 연유로 병원을 가지 않으리라 결정했다. 병원이야 바꾸면 되지, 괜히 언짢게 가서 얼굴 붉힐 것 없지 않은가. 마음 한 켠에서 '성급하게 굴지 마.'란 충고가 들려왔지만 엿 먹으라지. 월요일 6시, 약을 끊어 잠이 없어진 탓에 새벽부터 잡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초진이라면 신분증이 필요할 테니 지갑을 챙겨야겠다. 그런데 도통 보이질 않았다. 항상 두던 서랍엔 동전 지갑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옷 주머니를 전부 뒤지고, 가방을 탈탈 털었지만 헛수고였다. 은행 앱을 켜 사용 이력을 뒤져보니, 술을 마신 토요일에 민증이 든 지갑을 들고나갔었다. 그날 새벽 한 시에 취한 채 아이스크림을 먹겠답시고 동네를 들쑤시고 다닌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제기랄. 스타벅스 다섯 군데, 슈퍼 두 군데에 전화를 돌리고서야 포기했다. 아무리 마셔도 필름은 안 끊긴다고 으스대며 살아온데 대한 인과응보였다.


 순간의 일탈을 뒤처리하는데만 두 시간을 쓰느라 아침 댓바람부터 진이 다 빠져버렸다. 새 병원은 고사하고 당장 가서 약이나 받아와야겠단 생각뿐. 남아있는 체크카드엔 생일선물이랍시고 받은 약간의 용돈이 들어있었다. 선물을 병원비로 써야 한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지만 화 낼 힘도 없었다.


 짜증스럽게도 의사는 월요일 아침부터 쾌활한 목소리였다.

"오셨네요."

"주말에 술 쳐 마시고 사고 친 거 수습하느라 바빠요."

나는 인사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쏘아붙였다. 의사는 킥킥 웃으며 어쩌다 술을 마셨냐고 물었고, 사람 좋은 그의 미소에 짜증이 차올라 있는 그대로를 쏟아냈다. 지난 한 달간의 진료에서 당신이 한 말 중 일부가 신경을 긁었고, 집안은 초상집 분위기이며, 늘 그렇듯 난 나대로 엉망이기에 마셨다. 2년 동안 금주하다 때려 부으니 금방 취해서 사고를 쳤고, 이 꼬락서니가 되었노라. 의사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떤 말이 특히 마음에 걸렸냐고 물었다. 기억을 더듬어 가며 세션별로 그가 했던 말을 조목조목 짚고는,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


"... 선생님 말이 틀린 게 아니라서 열 받는 거예요. 의사한테 팩폭 당하고 기분 좋은 환자가 어디 있겠어요?"


 정신과의는 중립적인 위치에서 환자를 관찰하고, 상황을 설명해줘야 한다. 내원자들은 대개 현실을 왜곡하거나 극단적으로 해석하기 마련이다. 의사는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가 객관성을 기를 수 있도록, 도망치지 않고 현실을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 옆에서 돕는 역할이다. 그렇다 보니 의도치 않은 팩폭을 하게 된다는 것,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가 유능하단 것도, 만나본 의사 중 가장 상냥하단 것도, 솔직함에 진심이 깃들어 있단 것도 알고 있었다. 평범한 사이였다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을 법한 특징들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 울컥했던 건지도 모른다.


 한번 터진 속마음은 걷잡을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마주친 선생님의 눈은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 마냥 동공이 확장되어 있었다. 자신이 실수했다거나, 환자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계신 건가? 하, 쌤통이다! 긴장한 고양이 같은 그의 모습에 이상한 용기가 솟아났다. 괜찮은 척 숨길 바에야 다 털어놓는 게 낫겠어. 어차피 비용을 지불하는 건 나고, 밑져야 본전 아냐?


"... 곱씹어볼수록 제가 등신 같은 거죠. 애초에 내가 왜 여기 왔는지 모르나? 의문이었고요. 우울증 환자가 자기혐오의 대가라는 건 자명하고, 제가 진퇴양난 상황에 놓여서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란 것도 다 아시잖아요? 그것 때문에 병원에 온 거잖아요. 공부에 집중하거나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한단 거, 평생 이런 식으로 살 순 없단 거. 지적해주신 그 모든 것들이 마르지 않는 제 혐오의 원천이자 선생님을 찾아온 이유라고요. 근데 그걸 짚어내신다고 한들 제게 그 말들이 무슨 의미인가요? 동어 반복이에요 최소한 저한테는."


 그날 처음으로 처방약과 부작용이 아닌 이야기들로 시간을 채웠다. 의사는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이유, 앞으로의 치료 방향과 계획, 현 상황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좀 더 솔직하게 말씀해주셨다. (선생님은 갑작스레 날아든 공격에 3초 동안 무장해제가 된 듯했다.) 가족 이야기도 했다. 내가 주절주절 떠드는 동안 선생님은 건너편의 인간이 얼마나 가혹하며, 냉정하고, 스스로를 증오하는지를 발견하셨다. 순식간에 깊은 부정으로 빠지는 사고 과정에 "약 먹어서 치료해봅시다.", "우울증입니다."라는 상투적인 멘트 대신 "와, 왜 그렇게까지 생각이 옮겨가요?"라고 물으셨다. 질책이 아닌 경이롭다는 투였고,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순수한 질문이었다. 우습지만 난 소아과가 아닌 타과의가 그렇게 말랑거릴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으레 정신과 의사란 차분한 어조와 웃는 얼굴로, 팩트를 사용해 환자의 뼈를 하나씩 분지르며, 잔잔하게 넘실거리는 자존감과 타인의 마음을 치유한다는 사명감에 찬 인간 아니던가! (물론 필자의 편견입니다.)


 어찌 되었든 이런 나라도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 바가 있다. 침묵이 편리한 때가 많다는 거. 굳이 불만을 표현하거나 문제를 지적하기보단 피하는 게 상책일 때가 있다. 안 맞는 사람은 영영 안 맞기도 하고, 모든 관계에 최선을 쏟아부을 필요도 없다. 나도 첫 의사에겐 아무 말하지 않았었다. 속으로 삭였고, 자의적으로 약을 끊었다. 타인이 날 이해해줄 수 없다, 결국 모든 건 내 책임이다... 이런 종류의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딱 한 번만 더 시도해보면 안 될까? 어차피 상대도 나랑 비슷한 인간일 텐데. 미움받기 싫고, 사고에 휘말리기도 싫고, 가뜩이나 피곤한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게 최우선 목표일 거라고. 종종 거기에 너무 집중하느라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정작 본인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해선 무심하며, 용기 대신 적당함을 선택하고는 그런 자신을 비밀스럽게 미워하고 있을 거란 사실. 엄청난 공통점 아닐까. 십년간 입이 닳도록 우겨온 개똥철학인 "충돌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난 굳이 대화하고, 굳이 충돌하고, 굳이 맞춰가고 싶다. 더군다나 당신이 날 도와야 하는 입장이라면, 내게도 최소한의 책임을 물을 재량 정도는 있지 않을까? 환우들 중 의사에게 상처받아 치료를 중단하는 케이스가 많은데, 어차피 바꿀 병원이고 답 없는 의사라면 언제라도 바꾸면 된다. 과정에서 또 다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해보련다. 경험 상 열 한 번은, 운 좋게 얻어걸리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게 당신이라면, 그럴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한 달 뒤에도 계속 약을 먹고 있을지, 같은 의사를 보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하여간 이번 주는 괜찮았다는 소리지. 그나저나 선생님, 나 나가고 우신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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