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pajaroazul
Sep 19. 2022
장마 끝 눅진 땅이 마르기 시작하던 날
제비꽃 하나가 제 목을 꺾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세찬 빗속에서
굳건히 삶의 의지를 다지던 제비꽃이
언제 그랬냐는 듯 허리를 늘어뜨린 채
게으른 방문객의 안부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쨍한 볕에 화가 났다
불지도 않는 바람에 뼛속이 시렸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이유와
너만이 짊어졌을 무게들이
비가 마르듯 순식간에
며칠째 가시질 않아 성가셨던
눅눅하고 무거운 물기가
단번에 공중에서 증발한다
말뿐이었던 방문객
우산을 내주진 않았지
탓 한번 안 하던 너였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조문객
부끄러움에 숙여진 허리
우리의 마지막 공통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