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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jaroazul Nov 28. 2022

정신과를 바꿔보려고 합니다만

정신과 일기 - 7

 정신과 일기는 오랜만이다. 소식이 없었다는 건 무난하게 지내고 있었다는 의미렷다. '무난'의 기준이 변한 탓도 있고, 공시에서 해방된 덕도 있었다.


 의사를 바꿔볼까란 생각은 하루이틀한 게 아니지만, 결정적인 계기가 없었다. 그는 친절하고, 실력도 괜찮다. 가장 중요한 약 적합성도 통과였다. 그런데 이 병원, 너무 바쁘다. 현 세태에 바쁘지 않은 정신과가 있겠느냐만, 요일과 시간대를 바꿔가며 반복적으로 시도해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의사는 밀린 환자들을-소비재를 노리는 내 입장에서는 의사가 '처리'해야 할 경쟁자들-진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의사 말마따나 예민한 나는 상대방의 기분, 상황을 빠르게 알아챈다. 미묘하게 빨라진 말투와 본론만 묻는 질문을 눈치채지 않을 수가 없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일상을 이어가는 나로서는 그를 돕고 싶다. 그래서 빠르게, 기술적인 부분만 골라 말한다. 카톡에 키워드만 적어서 준비한 뒤, 화살을 쏘듯이, 간결하고 빠르게. 엉뚱한 이야기라든가, 1년 동안 건드리지 않았던(그에게 굳이 언급하지 않았던) 문제를 슬슬 꺼내볼까도 싶지만 내 뒤에 환자가 10명이 넘는데 점심시간은 30분 남았다. 착한 환자가 되는 편이 낫겠다. 내 진료시간은 2분 컷이다. 아닐 때도 있지만 열에 일곱은 이렇다.


 솔직히 말하면 진료실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부터 불만스럽다. 하지만 그가 부탁한 것도 아니고, 내가 자진한 일이다. 게다가 상담 시간이 짧으면 진료비도 내려간다. 정신과 레지던트인 소꿉친구가 일방적으로 나와 연을 끊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를 짝사랑해서, 정신과의를 보거나, 한의사인 친척 결혼식에 갈 때, 하다못해 하루 두 번 항우울제 알약을 꺼낼 때마다 자극이 온다는 이야기가 정신의학과에서 얼마나 쓸데없을지 나로서는 감을 잡을 수 없다. 심리상담에서는 모든 사소한 불평이 용납되었기에. 그것에 대한 반추 또한 질릴 만큼 했기에 더 위화감이 든다.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놨지만, 결론은 필자의 부족함이리라. 어떤 분야가 반드시 어떻다거나, 의사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 (애초에 내가 먼저 맞춰준 것인데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아버지는 종종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란 말씀을 하셨다. 필라테스 학원 위층에 여의사가 진료를 보는 정신과가 있었다. 후기도 괜찮았다. 12월이 되면 그곳에 가봐야겠다. 이번엔 제발, 환자 수가 10%만 적길 바라며. 신탁자금을 받아 여유로운 여의사 선생님을 상상해본다. 물론 말도 안 된다는 걸 안다. 신탁자금을 받으면서 의대에 가서 개고생 하는 변태가 어디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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