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내 이야기

연신내에 30년 넘게 산 싱글 남성에게 연신내는 어떤 곳인가.

by 강병진

연신내는 TV나 영화에서 그리 자주 언급되는 곳이 아니다. 드문 사례 중 하나는 영화 <강남 1970>이었다. 헬기를 타고 서울을 돌아보던 권력의 수뇌부들은 제2의 서울을 만들 지역을 논의한다. 한 사람이 물었다. “어제 보신 연신내 쪽은 어떻습니까.” 이에 대한 상대방의 대사를 듣는 순간, 내가 지난 35년을 연신내에 살아야했던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북의 도발도 생각해야지. 아무래도 땅값 올리려면 포사선 끝 밖이 낫지 않겠어?” 당시 북한 포사선의 사정거리 덕분에 연신내는 강남처럼 개발되지 않았다. 그래서 집세가 싼 편이었고, 그래서 저렴한 동네를 찾아다니던 부모님은 연신내로 이사를 온 것이고, 그 이후로도 이 동네가 만만했던 터라 우리 가족은 주변의 불광동, 갈현동, 구산동을 돌면서 지금에 이르게 됐다.


북한 포사선 안쪽에 있는 곳이기 때문에, 연신내 주변에는 군부대가 꽤 있다. 그곳에서 휴가나 외박을 나온 군인들, 연신내 일대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북한산성을 오고가다 연신내를 지나치는 사람들, 그리고 은평구에 사는 사람들이 이 동네의 상권을 형성한다. 주말이면 등산객들이 연신내역 6번 출구의 첫 블록으로 들어가 그날 산에서 받은 정기를 동력 삼아 술을 마신다. 그들의 자녀뻘 되는 청소년들은 바로 그다음 블록인 먹자골목에서 분식을 사 먹거나, 옷과 신발 등을 구경한다. 그들의 언니뻘 되는 사람들은 ‘로데오 거리’로 불리는 그다음 블록에서 차를 마시거나, 고기를 먹거나, 맥주를 마신다. 그리고 연신내에서 오래 살았던 어르신들은 연신내역 2번 출구의 연서시장으로 모인다. 부침개, 족발, 임연수어 등등 계통이 없는 안주와 막걸리를 파는 상점이 즐비한 이곳에서는 김치전 한 장, 제육 한 접시, 막걸리 두 병을 팔고도 1만2,000원을 받을 정도로 술값이 저렴하다.


아직 마흔 살도 안 됐고, 결혼도 안 했고, 당연히 아이도 없지만, 로데오 거리에서 놀기에는 다소 멋쩍은 나이인 나는 먹자골목의 건너편에서 주로 먹고 마신다. 연신내역 4번 출구. 약국 옆길로 들어가는 동네. 사람들은 이곳을 ‘양지극장 골목’으로 부른다. 지금 양지극장 자리에는 헬스클럽과 사우나가 함께 있는 대형 건물이 들어섰지만, 많은 사람의 입에서는 여전히 ‘양지극장 골목’이다.양지극장 골목은 고등학생 시절 전에는 함부로 다닐 수 없던 곳이었다. 당시 경찰서가 ‘청소년 통행 제한구역’이라 세워둔 경고문 때문이었다. 유흥가가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몇몇 건물은 사람과 업종만 바뀐 채 그대로 있다. 술을 마시다가 화장실을 찾아 건물로 들어가면, 임권택 감독의 영화 <만다라>에서 지산 스님의 연인 옥순이가 남자를 위해 양말을 빨아주던 곳이 생각날 정도다. 어쨌든 골목의 술집들이 하나둘씩 다른 업종으로 전환되면서 고등학생 시절에는 접근 가능한 동네가 되었다. 양지극장에서 영화도 보았고(<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 가지 이유>가 기억난다), 친구들 덕분에 이곳에 가장 맛있는 순댓국과 족발을 파는 가게를 알게 되어 술도 많이 먹었다. ed


처음 영화 잡지에 취직해서 6년 정도 직장을 다니던 동안에는 연신내 옆 구산역에서 6호선으로 출퇴근을 했다. 이후 패션 잡지로 이직했고, 그때부터는 연신내역에서 3호선을 탔다. 이 골목이 내 생활 반경 안에 들어온 건 그때부터다. 패션 잡지에 적응이 쉽지 않아, 꽤 자주 동네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게다가 고등학생 시절 동네 독서실에서 만난 형님 한 분이 이 골목에 소시지 전문점을 낸 덕분에 거의 매일 그곳에서 500 한 잔에 소시지 한 줄만 시켜놓고 야구 중계를 보곤 했다. 나 같은 손님 때문이었는지, 2년 후 무렵 형님은 가게 문을 닫았다. 지금 이 골목에서 드나드는 곳은 족발집뿐이다. 과거 술국을 리필해가며 어울리던 친구 중에 연신내에 남은 사람은 이제 거의 없지만, 강남과 분당으로 간 그들도 어쩌다가 모일 기회가 있으면 연신내에 와서 함께 족발을 먹는다.


지금 나에게 이 골목은 출근과 퇴근을 잇는 길이기도 하다. 패션지에서 다시 이직했는데도, 3호선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아침에는 사람들로 붐비는 도로변보다 한적한 이 골목을 걷는다. 연신내역 4번 출구를 통해 일터로 나갔다가, 다시 4번 출구로 나와 이 골목을 통해 집으로 가는 게 내 일상이다. 어떤 날은 순댓국을 한 그릇 먹는다. 그렇게 또 어찌하다 보면 연신내에 몇 남지 않은 친구와 마주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시키지도 않았던 술을 시킬 수밖에 없게 되는 그런 생활이다. 야구 선수가 기복 없는 기록을 위해 자신만의 ‘루틴’을 정립하듯, 나에게는 이 골목이 잘 맞는 루틴인 셈이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의 관성상 분명히 이 골목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다시 지어질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족발집 장맛만큼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글은 2016년 1월, '보그 코리아'에 기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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