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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Dec 25. 2018

<로마>는 어쩌면 한국에도 있었을지 모르는 이야기다

 <로마>를 보다가 떠오른 친구의 이모, 그리고 <심플라이프>

1970년대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한 <로마>를 보면서, 이 이야기는 어쩌면 같은 시대 서울 어딘가에서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로마가 멕시코 시티 내의 어느 동네 이름이라고 하니, 한국판의 제목을 생각한다면, <성북동> 정도가 될까? 1970년대의 서울 또한 그때의 멕시코시티만큼 엄혹한 곳이었으며 이곳에도 클레오 같은 식모들이 살았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중산층 가정의 식모로 일하면서 번 돈을 시골의 가족에게 보냈던 사람들. (당시에는 집을 지을 때도 식모방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식모와 집주인이 겪는 갈등들이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고, 그 중 일부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 같은 작품의 아이디어가 되기도 했다. 갈등이 없지는 않았을테니, 계속 그 집에 남아 일한 식모들은 많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일부는 집주인 가정과 가족이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봤지만, 친구에게 들은 적도 있다.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이모들에게 이쁨을 받으며 자랐다. 그런데 그 이모들 중 한 명은 어머니와 친자매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알고보니 어머니의 집안에서 식모로 일하던 분이었다. 나중에는 가족처럼 함께 살았으며 시집을 가서 가족과 헤어진 이후에도 친자매처럼 지냈고, 그래서 친구는 자연스럽게 그분도 자신의 이모라고 여겼던 것이다. <로마>를 보고난 후, (난 뵌 적이 없던) 친구의 이모가 떠올랐다. <로마>에 나오는 아이들도 클레오를 그렇게 생각하면서 성장할 것이다.(그랬으면 좋겠다.) 집안에서 고용한 하녀, 혹은 식모가 아니라 자신을 보살펴 주는 또 다른 가족.

이런 생각을 하다가 떠오른 또 다른 영화는 허안화 감독의 <심플라이프>다. 이 영화의 식모 아타오(엽덕한)는 무려 4대에 걸쳐 한 집안에서 일해온 여자다. 유덕화가 연기하는 로저는 성공한 영화제작자인데, 당연히 어렸을 때부터 아타오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 성공한 영화감독인 알폰소 쿠아론이 실제 자신의 유모인 리보에 대한 헌사로 <로마>를 만들었다고 하니 더더욱 <심플라이프>가 떠오를 수 밖에.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심플라이프>를 한번쯤 보면 좋겠다. 허안화 감독이 한 번쯤 <로마>를 보면 좋겠다. 친구의 이모님에게는 이왕이면 <심플라이프>보다는 <로마>를 권해드리고 싶다. 회한으로 가득한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보다는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가 더 좋을것 같아서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헤미안 랩소디'는 좀 더 상상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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