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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Jan 15. 2019

아이콘이 된 전과자, 배우 대니 트레조 이야기

<마세티>의 그 배우다. 


“흥미로운 얼굴을 가진 사람이 있다.” 영화 <마세티>(2010)의 리베라 요원(제시카 알바)은 그가 문제적 인물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린다. “전과기록이 있는 지 알아볼 것. 남자, 히스패닉, 상처들, 문신들.” <마세티>는 <그라인드 하우스>(2007)에 삽입된 가짜 예고편을 둘러싼 팬덤으로 제작된 영화였다. 속편 <마세티 킬즈>(2013) 또한 <마세티>에 삽입된 예고편에 힘입어 만들어졌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B급 취향에 대한 관객들의 열광만을 이유로 설명하는 건 부족해 보인다.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의 배우. 대니 트레조야 말로 <마세티>의 심장을 뛰게 만든 장본인일 것이다. 어떻게 배우가 됐을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외모의 그는  B급 영화 팬들에게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만약 리베라 요원이 마세티가 아닌, 대니 트레조의 전과기록을 확인했어도 만만치 않은 내역이 나왔을 거다. 전설적인 컨트리 가수 쟈니 캐쉬와 대니 트레조는 샌 쿠엔틴이나 폴섬 등 그들이 돌아다닌 감옥의 이름만으로도 평행이론이 성립될 정도다. 어린 시절부터 약물중독에 빠졌고, 강도짓을 일삼았던 대니 트레조는 196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그에게 갱생의 기회가 찾아온 건, 샌 쿠엔틴 교도소에서 권투를 할 때였다. 교도소 내 수감자들과의 타이틀전에서 그는 라이트급과 웰터급 챔피언을 차지했고, 이를 통해 자신감을 찾은 그는 12 단계의 갱생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이수했다. 범죄와 약물의 유혹에서 벗어난 이후 그가 한 일은 약물중독자들을 상담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니 트레조는 영화 <런어웨이 트레인>(1985)의 제작진을 만나 촬영현장을 찾게 된다. “그때는 영화계 안에서 코카인이 걷잡을 수 없이 만연했다. 정말 미친 시대였지. 현장에 가면 사람들이 테이블 위에 코카인을 늘어놓고 있었을 정도였다니까.”

마약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러 갔던 그는 이 현장에서 인생을 구원받는다. 마침 그 현장에는 샌 쿠엔틴 교도소에서 함께 있었던 다른 재소자가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한테 아직도 권투를 하냐고 묻더라. 나는 감옥을 나온 후로도 계속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런어웨이 트레인>의 주연 배우인 에릭 로버츠의 권투지도를 나에게 맡겼다. 그런데 또 어느 날에는 감독이 나를 부르더라. 나를 에릭 로버츠의 상대역으로 출연시키겠다고 말이다.” 그날 이후 대니 트레조는 수많은 B급영화에서 악역으로 등장했다.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나를 출연시키려 했던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말했다. 그 멕시칸 남자를 데려와. 커다란 문신을 한 남자 말이야. 그리고는 그들보통 한 줄짜리 대사를 주곤 했다. ‘모두 다 죽여버려!’ 같은…”

지금까지 대니 트레조는 약 200여 편의 영화에서 범죄자 혹은 살인자를 연기했다. 기록으로만 보면 할리우드 전체에서 손꼽히는 다작배우다. 1990년 이후로는 매년 4편 정도의 영화에 출연했고, 2002년에는 9편의 영화에 얼굴을 드러냈다. 다작의 이유에 대해 그는 “아드레날린을 분출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에 나는 강도짓을 하면서 살았다. 마약과 강도짓을 함께 하다보면 나중에는 경계가 사라진다. 마약을 사려고 강도짓을 하는 건지, 마약의 기운이 강도짓을 부추기는 건지.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한 편의 영화 자체가 아드레날린의 집합체 아닌가.” 물론 그가 연기한 배역은 대부분 관객의 눈에 언뜻 스쳐가는 역할이었다. 그 중에는 <히트>(1996)나 <콘 에어>(1997)같은 메이저 영화도 더러 있었다. “<히트>는 출연작 중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나한테 티켓을 정말 많이 주었거든.”


다작의 배경을 설명할 때, 로드리게즈 감독의 사랑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데스페라도>(1995)를 시작으로 <황혼에서 새벽까지>(1998) 3부작, <스파이 키드>(2001) <그라인드 하우스>의 예고편, <프레데터스>(2010), <마셰티> 시리즈 까지 로드리게즈의 감독의 거의 전작에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경우에는 3부작에 모두 출연한 유일한 배우일 정도. 재밌는 사실은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대니 트레조가 육촌형제 관계라는 점이다. 그들도 <데스페라도>에서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고 한다.

“나는 아이콘(Icon)이 된 전과자(ex-con)다.” 대니 트레조를 아이콘으로 등극시킨 건, 역시 <마세티>다. 로드리게즈 감독이 20년 전부터 <마세티>를 구상했고, 그때부터 대니 트레조를 주연배우로 점찍어 놓았다. “나를 위한 캐릭터가 있다고 했었다. 연기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 그저 평소의 나처럼 걷고 움직이고 말하면 된다고.” 영화 속에서 대니 트레조는 정말 연기를 하지 않는다. 마세티는 총 보다는 칼을 선호하고, 사람의 목을 자를 때는 무표정이며, 그를 만나는 여자들은 죄다 섹스를 하고 싶어 한다. 대니 트레조의 연기는 로드리게즈가 써놓은 지문을 고스란히 따라하는 것에 불과해 보인다. 종종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대사들, 이를테면 “마세티는 문자를 보내지 않는다”거나 “마세티는 담배를 피지 않는다”란 대사도 그저 건조하게 읽을 뿐이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처럼 건조하고 딱딱한 연기조차 마세티를 구성하는 성격으로 읽힌다. 마세티를 설명하는 각종 설정들이 대니 트레조의 외모를 통해 완성된다고 할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연기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흥미로운’ 외모만으로 먹고 사는 건 아니다. 그는 <프레데터스>에서 함께 연기한 애드리언 브로디의 연기를 원작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비교하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애드리언은 그의 마음을 활용한다. 카메라가 그를 비추고 있을 때, 관객들은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을 거다. ‘어떻게 하면 프레데터를 죽일 수 있을까?’ 반면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스테로이드로 만들어낸 근육 같은 연기를 한다.” 험상궂은 외모와 근육질의 몸, 상체를 뒤덮는 문신을 가진 그가 진짜 연기를 하려 했다면 결국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흑역사를 따라갔을 것이다. 대니 트레조는 연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캐릭터를 살리는 연기를 하고 있다. 아마도 지난 200여 편의 작품을 통해 그는 자신의 얼굴에 어울리는 연기 방식을 체득한 듯 보인다.


<마세티 킬즈>는 전편에 비해 황당함의 수준이 도를 넘는다. 1편인 <마셰티>는 그라인드 하우스 영화들의 성격에, 멕시칸과 미국인 간의 관계에 대한 조소를 버무린 영화였다. 하지만 <마세티 킬즈>의 이야기는 우주로 가버린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이건 괜한 수사가 아니다.) 1편에서는 가장 농담 같은 캐릭터였던 마세티가 2편에서는 가장 땅에 붙은 캐릭터처럼 보인다면 설명이 될까? 1편을 즐겼던 관객들은 마세티에게 불가능한 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마세티> 시리즈를 통한 관객과 대니 트레조의 관계가 그러할 것이다. 대니 트레조라면 그가 어떤 배역을 연기한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세티> 3편의 제목이 <마세티 킬스 어게인 인 스페이스>라고 할 지라도 말이다. 이 제목 역시 농담이 아니다.


*2013년 11월 맥스무비에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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