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들어오는 것보다 중요한 건...
반지하라고 해도 빛이 많이 들어오는 1층이나 다름없는 반지하가 있다. 반지하라고 했는데 그냥 지하나 다름없는 곳도 있다. 진짜 반지하다운 반지하도 있다. 그 모든 반지하 집에 살아봤다. 그냥 지하나 다름없었던 반지하는 알고 보니 빌라 지상층의 주인들이 각각 가지고 있던 지하실을 통폐합해 만든 집이었다. 진짜 반지하다운 반지하는 그냥 지하나 다를 게 없었다. 바닥에서는 습기가 찼고, 비가 많이 오면 화장실 하수구가 역류했다. 1층이나 다름없는 반지하는 그나마 좋은 기억을 갖게 해 준 반지하였다. 그곳의 내 방에서는 하늘이 보였다.
영화 '기생충'의 기택 가족은 반지하에 산다. 나름 빛이 많이 들어오는 반지하인데, 최악의 구조를 가졌다. 안방의 메인 창문이 대로변과 마주하고 있다니... 빛은 더 많이 들어올지 모르지만 대로변 사람들의 시선을 그대로 감당해야만 한다. 내가 살아온 반지하는 다행히 벽과 마주한 창문들을 가지고 있었다. '기생충'을 보고 나니 그나마 괜찮았던 곳이구나 싶었다. 빛을 얻을 수 있는 대신, 외부의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면, 그냥 빛을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이 집의 화장실 구조도 흥미롭게 보였다. 반지하 집은 화장실 변기와 하수구를 다른 곳보다 높게 만든다. 내용물이 흘러가려면 정화조보다 높아야 하기 때문에 생겨난 구조다. 그렇게 내용물은 빠져나갈지 모르지만, 폭우가 내리면 역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기생충'의 화장실 변기는 내가 살아봤고, 봐왔던 반지하 집의 화장실 변기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었다. 실제 그렇게 설치할 수밖에 없는 집이 있을 수도 있고, 영화적인 설정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반지하에 살던 시절, 어머니는 비가 오면 항상 집을 걱정했다. 밖에서 일하고 있다가도 비가 오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폭우와 홍수 때문에 집안으로 물이 넘쳐났던 적은 없었다. (일상적인 습기를 막기 위해 장판 아래에 비닐 돗자리를 깔아 둔 적은 많다.)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처음 집을 살 때는 당연히 반지하가 아닌 집을 샀었다. 그런데 높아도 너무 높은 곳에 있는 집이었다. 집을 오가는 일이 당시 10대의 나에게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도 그때 어머니는 이제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집에 물이 찰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좋다고 했었다. (그런데 10년 후 다시 반지하로...;;) 지금은 반지하에 살지 않지만, 그럴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다시 반지하에 살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높은 동네의 반지하를 선택할 것이다. 방에 누워있다가 다른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보다는 빛이 없는 게 낫고, 폭우에 집이 잠기는 것보다는 다리에 근육통이 생기는 게 낫다.
아래는 반지하다운 반지하집에 살 때 찍은 사진이다. 여름이면 저 창문에 개구리가 붙곤 했다. 길고양이들이 지나다니는 모습도 여러 차례 봤다.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개구리나 고양이가 그나마 귀엽다.
P.S *요즘 유튜브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