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병진 Jun 23. 2019

'구해줘 홈즈'를 보면서 인생의 방향을 상상한다

그곳에서는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할까?

'관찰 예능'의 시대에 TV는 연예인의 일상과 그들의 집과 그들의 식사를 보여준다. '나혼자산다'에 처음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에피소드는 대부분 그런 식이다. 불이 꺼진 어느 집이 있고, 누군가 자고 있다. 잠에서 깬 연예인은 자신의 루틴대로 몇가지 행동을 한 후, 주로 씻거나 먹는다. TV는 그가 씻는 모습도 자세하게, 먹는 모습도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그가 살고 있는 집을 훑는다. 기안84 같은 사람이 아닌 이상 다들 좋은 집에 깔끔하게 정리해놓고 산다. 그래서 기안84가 사는 집이 아닌 이상, 그 집을 봤을 때 먼저 드는 생각은 '얼마짜리 일까?'란 질문이다. 남궁민은 한강이 내다보이는 곳에 산다. 박나래도 한강이 내다보이는데다가 방도 많고 넓은 집에서 산다. 이시언도 전망 좋은 아파트에 산다. '나혼자 산다'만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동상이몽2'에서 윤상현과 메이비가 사는 집, '미운우리새끼'에서 탁재훈이 제주도에 마련한 집을 보면서도 얼마짜리 일까를 생각했다. 당연히 부럽다.


'구해줘 홈즈'는 관찰 예능의 시대를 구성하는 '집구경'이란 요소를 대놓고 밀어붙인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구해줘 홈즈'를 통해 집구경을 할 때는 '나혼자산다'를 볼 때와는 다른 태도를 갖게 된다. '구해줘 홈즈'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야하는 일반인들에게 마땅한 집을 찾아준다. 그들은 이사를 해야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꼭 필요한 옵션들을 덧붙인다. 방과 화장실은 몇 개여야 하고, 가진 예산은 어느 정도이며 집의 위치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최대 몇 분 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등이다. '구해줘 홈즈'의 연예인 패널들이 집을 보러다닐 때면 집에서 TV로 보는 나도 그들에게 좋은 집을 찾아주고 싶어진다. 내가 선택한 집과 의뢰인이 선택한 집이 똑같으면 괜히 기분이 좋다. 그런 한편, 나는 나도 모르게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상상하곤 한다.


강원도 양양에 정착하고 싶다는 어느 군인가족의 집을 찾아주는 에피소드였다. 그들은 양양 남대천을 마주한 언덕 위의 5룸 단독주택을 선택했다. 방송을 보는 동안 나도 그 집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내가 저런 집에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상상했다. 그 집의 매매가는 2억 3천만원이었다. 지금 살던 집을 처분하고 양양에 가면 저런 집에 살 수 있단 말이야? 이런 이야기를 회사 동료랑 했는데, 그는 "듣자하니 강원도 주문진에 가면 마당있는 단독주택을 월세 30만원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둘 다 서울에서 좁게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한탄했다. 부산 살이를 계획한 의뢰인에게 집을 구해주는 에피소드에서도 나는 달맞이 고개의 방 2개짜리 빌라를 탐내면서 부산에 가서 살면 어떨까를 상상했었다.


'구해줘 홈즈'를 보는 동안 인생의 방향을 상상하게 되는 이유는 먼저 이 프로그램이 서울 중심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안과 밖에서 보금자리를 찾는 의뢰인도 있지만, 강원도 양양과 제주도, 부산 등 여러 지역의 집을 찾는 사람도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이 프로그램에서 찾는 집들이 '투자 가치'를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집찾기를 의뢰한 사람은 '투자 가치'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의뢰인들이 내건 조건에는 '투자 가치'가 없었고, 매매보다는 임대였고,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서 집구경을 할 때도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연령대와 가족수의 의뢰인들이 조건을 제시하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집을 구경하게 된다는 점이 크다. 내가 20살 대학생이었다면, 내가 결혼해서 아이가 있었다면, 내가 서울이 아닌 양양이나 부산에 가서 살게 된다면? 이 상상의 스펙트럼은 저런 집에 살 수있다는 기대와 함께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하나까지 다양하다.


부산 에피소드에서 흰여울문화마을의 집을 보여줄 때는 꽤 구체적으로 상상했었다. 그 동네의 작은 집 시세를 찾아봤고, 지금 오피스텔 보증금+저축+퇴직금+적절한 대출을 쓰면 작은 독립서점을 운영하면서 따로 글을 쓰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서 글도 쓰고, 낭독회도 하고, 영화 세미나도 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여자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집을 사면 직접 일을 벌일게 아니라 다른데에 월세(이왕이면 김밥천국 같은 곳에)를 주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너는 너무 노갬성”이라고 답했다.


'구해줘 홈즈'가 앞으로도 서울을 벗어난 지역의 집들을 자주 소개해주기를 바란다. 서울에 비해 저렴하고, 넓은 집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지금 서울에 갇혀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지금의 생활을 접고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건 어려운일이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게 되는 것도 흔치 않은 경험이다. 어차피 나와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보다는 내 생활의 반경을 다시 점검해보는 게 더 흥미로울 수 밖에 없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기생충'의 반지하, 내가 살던 반지하에 보였던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