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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Oct 24. 2019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아버지'를 떠올리다

아버지는 왜 그랬던 걸까?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봤을 때는 누나와 여자친구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늘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니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났다. 영화 속 김지영의 아버지 때문이다.

영화 속 김지영의 아버지와 할머니, 그들이 애지중지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공감되는 기억과 공감되지 않는 기억이 떠올랐다.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영화 속 김지영의 할머니 같았다. 아버지는 집안의 장남이었고, 당연히 나는 장손이었고, 그래서 조부모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때로는 손자, 손녀들 사이에서도 꽤 우위에 있었다. 그런데 장손과 장손이 아닌 손주들을 가르는 조부모들의 애정은 꽤 집요하다.

80년대 후반의 일이다. 할머니 생신이었다. 누군가가 케잌을 사왔다. 어느 집이나 그렇듯이 케잌은 아이들이 주로 먹었다. 나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런데 케잌 위에 올려진 과자 인형이 탐이 났다. 하지만 나만 아이인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아이도 탐을 냈다. 난 장남의 아들, 그 아이는장녀의 아들. 즉 할머니의 외손자였다. 나와 그 아이 사이에서 신경전이 벌어지자, 할머니는 이건 “할머니 케잌이니 과자 인형도 내 것”이라며 그 과자인형을 가져가 버리셨다.

이거랑 비슷하게 생겼다!

그렇게 정리가 됐고, 난 쉽게 탐내고 쉽게 잊어버리는 어린 아이였던 터라 몇 시간 후에는 고모의 아들과 또 신나게 놀았다.


며칠 후, 서울로 돌아가는 날 아버지 손을 붙잡고 할머니 댁을 나가는 나를 할머니가 불렀다. 할머니는 내 손에 뭔가를 쥐어주셨다. 그건 휴지로 돌돌 말린 바로 그 과자 인형이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셨던 것 같다. “그래도 장손이라고 병진이한테 주시네.” 물론 어린 나도 기분이 좋았다.


할머니는 똑같은 자식이어도 이왕이면 아들, 그러니 손주도 이왕이면 아들의 자녀를 우선하게 되는 그런 시대에 태어나서 자라신 분이다. 영화 속 김지영의 할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 속 김지영의 남동생 지석과 80년대 후반의 장손이었던 나는 그런 조부모 때문에 상처받는 형제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는 과거 최수종과 김희애가 출연한 드라마 ‘아들과 딸’을 통해서도 수없이 떠올릴 법한 거였지만,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나서야 떠올리게 됐다. ‘아들과 딸’이 방영된 게 1992년.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이것이 공감되는 기억이라면, 공감되지 않는 기억은 김지영에게 “취직은 때려치우고 시집이나 가라”는 영화 속 아버지의 말이었다. 나는 명절이나 조부모 생신 때는 집안에서 우대받는 장손이었지만, 막상 우리 4명의 가족 사이에서는 그냥 ‘막내’였다. 누나는 공부를 잘했고, 그래서 언제나 부모의 자랑이었다. 누나가 재수를 할 때도 아버지는 비싼 종로학원 학원비를 계속 내주셨다. 재수 후 누나는 서울대를 갔다. 부모님의 더 큰 자랑이 됐다.


그런데 나는…


어린 시절에는 공부를 못했고(사실 안했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야 정신차리고 공부를 하다가 그나마 대학 갈 성적이 됐는데, 그만 원서를 낸 모든 대학에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바로 재수를 준비하려 했다. 그런데 내가 재수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아버지가 내게 내민 건 기술학교 전단지였다. “기술을 배워서 돈을 벌어라.” 화가 나지는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그러다 서러웠다. 누나는 공부 잘한다고 학원비도 다 내주었으면서 왜 나에게는 전혀 다른 제안을 하는 걸까? 내가 누나보다 공부를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나는 성적순으로 대우 받았다. 나는 그래도 재수를 선택했고, 편의점 아르바이트 및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했고, 결국 부모가 원하지 않는 대학에 들어갔다. :-)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좀 울컥한 게 있다. 아버지는 어떤 생각이었던 걸까? 당시는 아버지가 은퇴를 한 터라, 자식들이 빨리 돈을 벌어주기를 바랬을 거란 생각도 한다. 이런 혼자만의 생각은 재수할 때도 했었는데, 스무살의 나는 “그럼 좋은 대학 나온 누나한테 돈을 벌라고 해야지!”하며 또 분개 했었다. 그나마 아버지가 살아온 시절을 생각하면 조금 이해할 수도 있다. ‘기술 배워서 돈 버는 게 최고!’의 시절이었고, 아버지는 그렇게 돈을 벌어서 가족을 건사했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좀 울컥하다.


이 기억을 꺼내는 이유가 ‘82년생 김지영’이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하기 위한 건 아니다. 내가 남자라서 아버지에게 차별받은 것도 아니다. 공부를 못해서다. 조부모에게 우대받는 기억이든, 집안에서 천대받는 기억이든 ‘82년생 김지영’은 그렇게 한국 사회 속에서 겪었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라는 점을 기록해 놓고 싶다. 1992년 TV에서 ‘아들과 딸’을 봤던 당시의 3,40대도 똑같이 않았을까?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의 현실을 드러내는 영화인 동시에 가족의 역사를 돌이켜보게 만드는 영화다. 나는 그런 손자였고, 아들이었다. 아들과 딸을 차별해서도 안되지만, 공부 못한다고 차별하지도 말자.


*이 글에서 '82년생 김지영'이 다루는 여성에 대한 차별에 대한 이야기와 섞이지 않는 기억의 이야기가 포함된 것에 대해 지적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한 댓글을 인용하면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에 대한 보이지않는, 삶에 공기처럼 스며든 잔잔한 차별에 대한 이야기'인데 왜 자기가 공부 못해서 겪은 '차등'의 이야기와 비교하냐는 지적입니다. 


일단 저는 영화 속 김지영의 인생과 저의 인생을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속 할머니와 그 손자 때문에 80년대 후반 저의 할머니와 저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이 기억은 '82년생 김지영'의 맥락과 섞일 수 있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적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얽힌 차등의 기억에 대해서는 지적하신 분이 많았습니다. 영화 속 김지영의 인생과는 섞이지 않는 이야기 일 겁니다. 하지만 영화 속 김지영의 아버지를 보면서 저는 당연히 저희 아버지를 떠올리게 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영화 속 김지영처럼 가족에게 서러웠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은 분명 여성이 겪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여성'이란 카테고리로만 묶여야 할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육아에 대한 이야기이고,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딸을 바라보는 가족의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또한 '성차별'만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차별과 서러움을 겪었던 사람들이 공감하게 될 이야기입니다. 위의 글에서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의 현실을 드러내는 영화인 동시에 가족의 역사를 돌이켜보게 만드는 영화"라고 적은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제가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아버지를 떠올린 이유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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