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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Oct 13. 2021

친척 어른들에게 집안의 선산을
돌보지 않겠다고 해봤다

태어나보니 장손이었다

충청북도 어딘가에 집안의 선산이 있다. 직계 조상들이 그곳에 계신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따라 벌초를 다니며 가봤고, 20살 이후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러 갔었다. 때가 되면 선산을 돌보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같이 가자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가 함께 가자고 말하는 분들이 생겼다. 함께 가자는 것뿐만 아니라, 가서 각 산소의 위치를 파악하고 관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시는 분들이다. 당연히 친척 어른들이다. 


싫었다. 그냥 싫었다. 집안의 선산을 관리하는 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가 그랬다. 아버지에게 그 일은 의무였다. 의무감이 어느 정도였냐면, 직계 조상의 산소를 벌초하는 것만이 아니라 종친회 활동에 참여했고, 나중에는 자기돈과 시간을 써서 종친들의 족보까지 만들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도 젊은 시절 집안의 족보를 만들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족보를 만들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시절, 한 친척 어른은 당시 중학생의 나에게 “할아버지도 했고, 아버지도 했으니 너도 나중에 해야지”라고 말했다. 싫었다. 아버지와 달리 나에게 그건 의무가 아니었다. 의무가 아닌데, 의무라고 지워지는 일은 싫을 수밖에 없다. 족보를 만드는 것도, 선산에 가라는 것도 다 싫었다. 


싫지만 싫다고 말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명절날에 우리 집을 찾는 친척 어른들은 항상 선산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나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유했다. 대놓고 강요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나도 대놓고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냥 웃었다. 집안 명절 행사의 주최자인 어머니가 난감할 것 같아서였다. 명절 때마다 그렇게 웃었던 나는 최근 추석에도 웃었다. 이번에도 웃고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연휴가 끝나지 않은 날이니, 당연히 늦잠을 자고 있는데 아침부터 카톡이 울렸다. 몇 번의 ‘카톡’ 알림음을 듣고 일어나 폰을 확인해 보니, 전날 나에게 선산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셨던 친척 어른이 선산의 사진들을 보내시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어떤 분을 모셨는지, 그리고 이 묘는 언제 어떻게 이장을 했는지도 함께 적혀 있었다. 바로 전날 웃어넘겼듯, 이번에도 그냥 넘겼다. 그런데 친척 어른의 카톡은 이후에도 1,2시간 간격으로 계속됐다. 그때마다 혼자 한숨을 쉬고 넘겼는데, 오후 4시쯤 ‘제사 지내는 법’을 알려주는 유튜브 영상 링크를 연달아 받은 순간, 짧게 소리를 질렀다. 화가 났다. 뒷목이 당길 정도로 짜증이 났다. 가슴이 조여 오는 기분이었다. 집 밖에 나가 담배를 한 대 피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때 한 문장이 떠올랐다. 


“안 할 겁니다.” 


그래, 아예 “안 한다고” 말해버리자. 그런데 전화로? 전화로 해봤자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다 못 할 테고, 오늘 하루 종일 카톡이 왔으니, 나도 카톡으로 보내자. 한 분에게만? 아니, 다른 친척들도 톡방에 초대해서 함께 보게 하자. 사촌형제들에게도? 아니,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장손이기 때문에 나에게 가해지는 고통이니, 그들은 상관없지.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약 1시간에 걸쳐 글을 썼다. 그리고는 작은 아버지들과 고모님들만 한 곳의 단톡방에 초대해 글을 전달했다. (뒤늦게 알았는데, 그 와중에 고모님 한 분을 빼먹었다.)



안 할 겁니다. 이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저는 조상님들 묘소에 찾아가고 싶지도 않고, 그걸 관리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어떤 부분도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이었는데, 추석 다음 날인 오늘 아침부터 작은 아버지가 선산 사진과 제사 관련 영상을 카카오톡으로 연달아 보내시길래, 이제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전달드립니다.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에 서운함을 느끼시거나 화가 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습니다. 작은 아버지들께서 젊은 시절에 그러셨던 것처럼 저도 사는 게 바빠서 그렇습니다. 매일 출근하고, 야근하고, 집에 와서도 일 생각을 합니다. 주말에도 일할 때도 있습니다. 아직 결혼도 못했고, 집은 하나 샀는데 어머니가 사셔야 하기 때문에 저는 월세 살고 있습니다. 제 현실이 그렇습니다. 


묘소에 관심을 갖고, 뭔가 해야 하는 때가 1년에 몇 번이나 되는 데 그러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1년에 단 한 번. 혹은 3년에 한 번, 또는 10년에 한 번이라 할지라도 안 할 겁니다. 하고 싶지 않고,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작은 아버지 세대에서는 '의무'였던 일이, 저에게는 '선택'입니다. 저는 안 하는 걸로 선택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해도 “너희 아버지는 먹고 사느라 바쁘면서도 그 모든 일을 챙겼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집은 가난한데, 족보 만든다고 자기 돈과 시간 써가며 전국을 돌아다니는 게 싫었습니다. 집은 가난한데, 벌초해야 한다며 온갖 벌초 기구를 사들이는 것도 싫었습니다. 작은 아버지들의 아버지, 그러니까 할아버지도 비슷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분의 자녀인 작은 아버지, 고모분들은 어떠셨나요? 그런 아버지를 보시면서 자랑스러우셨나요? 그런 아버지 때문에 행복하셨나요? 저는 그런 저희 아버지가 자랑스럽지도 않았고, 그런 아버지 때문에 행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장손이 해야 하지 않냐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장손이라는 이유로 그걸 맡아하다 보면, 장손으로 태어나지 않은 다른 사촌 형제들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제가 이끄는 대로 따라주지 않는 사촌형제들에게 서운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명절 때면 종종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시죠? 사촌형제들 자주 만나고 친하게 지내라고. 이미 그러고 있습니다. 가까이 사는 00이, ##이, $$이는 종종 만납니다. 멀리 사는 **와는 종종 카톡을 하고, 저보다도 바쁜 %%이와는 SNS로 서로의 안부를 들여다봅니다. 수원에 사는 @@형도 제가 수원에 갈 일이 있었을 때 연락을 해서 만났었습니다. 저희는 이미 그렇게 지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서로에게 서운한 것도 아쉬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저희 아버지와 형제분들의 관계는 어떠셨나요? (제가 모르는 사연도 있겠지만) 가족인 이상 서로에게 가질 수밖에 없는 서운함, 아쉬움, 그로 인한 불편함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그 불편함 때문에 차례와 제사에 오지 않는 분도 계신 거고요. 저희 조카 세대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제가 장손이라고 해서, 오빠라고 해서, 또 형이라고 해서 뭔가를 강요하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나면 즐거울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러고 싶습니다. 사촌형제들에게 장손이고 싶지 않고, 그냥 형이고 오빠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무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나이만 먹었지, 철들지 않았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철이 드는 것보다는 그냥 사촌형제들과 편하고 재밌게 지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 할 겁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제가 나쁜 녀석처럼 보이고, 돼먹지 못한 것처럼 보이시겠지만, 안 할 겁니다. 왜 이런 부담을 자식 세대에 물려주려고 하시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작은 아버님들도 젊은 시절 그게 부담스러웠던 것 아닙니까? 그게 저라고 안 부담스럽겠습니까? 이번 추석 때 뵈었던 작은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은퇴하고 나서 이렇게 관심을 쏟는다”라고. 저는 은퇴하지 않았습니다. 약 20년 후 정년이 끝나서 은퇴한다고 해도 일을 안 하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일을 안 하고 살 수 있을 만큼 여유롭다고 해도 안 할 겁니다. 


작은 아버님들의 말씀에 따르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길게 적었습니다. 직접 뵙고 말씀드리면 좋겠지만, 이 사안이 저에게도 쉬운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 이어진 작은 아버님의 카톡에 저도 답변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글로 적어서라도 보내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같은 대화만 이어질 게 분명하니까요. 저에게 "관심을 가져라"라고 하실 테고, 저는 그냥 대충 웃으며 넘기는 일이 반복되겠죠. 그보다는 그런 부담을 저와 사촌형제들에게 물려주지 않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이 일로 화가 나신다면, 저에게 화를 내세요. 

하지만 저희 어머니한테 화를 내지는 마세요. 


아시다시피 저희 어머니는 명절 때라도 친척들 만나는 걸 좋아하고 즐거워하시는 분입니다. 

저는 앞으로 그런 어머니만 챙기며 살겠습니다.



보내 놓고 나서 걱정을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꺼내놓고 나니, 살 것 같았다. 화가 가라앉았고, 사태를 관망할 수 있게 됐다. 약 20분 후, 둘째 고모님이 답변을 올렸다. 이 답변은 “말하지 않았을 때도 너에게 느꼈던 감정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과거 명절날 나에게 느꼈던 서운함을 설명했고,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있었다. 


“자기 뿌리에 대해 궁금하고 알고 싶은 날. 알려주는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는 날이 있더라.”


집안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 그건 할아버지였고, 나의 아버지였다. 그들은 가족들에게 집안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던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귀담아 들었던 가족은 얼마나 있었을까? 물론 나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누군가가 알고 있으면 그걸로 됐다’는 생각에 그랬을 것이다. 집안의 뿌리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내가 몰라도 되기 때문이라는 안심. 결국 시간이 흘러 집안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세상을 떠났고, 남겨진 사람들은 그제야 이야기를 찾기 시작했다. 고모님이 말씀하신 “알려주는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한 이유는 그 때문일 거다. 내가 놓쳤던 이야기를 지키고 있던 사람이 있다니… 하지만 사실 그는 지키고 있던 게 아니라, 항상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그 외로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물론 내가 그런 외로움 때문에 저런 글을 써서 보낸 건 아니다. 그냥 싫었을 뿐. 


둘째 고모의 답변 이후, 셋째 작은 아버님이 톡방을 나갔다는 메시지가 떴다. 


잠시 후 막내 고모님이 답변을 보내셨다. 고모님은 “많이 고민했을 것 같다”며 “너의 마음을 이야기해줘서 반갑다. 네 선택을 존중한다”라고 적었다. “다만, 우리가 가족인 것을 잊지는 말자”며 “세대 간에 연결하는 역할을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네가 해주면 고맙겠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둘째 고모님이 또 다른 이야기를 적었다. 


“오빠네 집이라고 찾아가도 인사도 안 하고, 자기감정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왜 여기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모두 자기감정에만 빠져있고, 자기 좋을 대로만 하기 때문에 기껏 찾아간 자리에서 소외감이 느껴져 가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고모님의 이야기는 나를 향해 있었다. 내가 아무런 기억을 못 하는 걸 보면, 분명 내가 고모님에게 상처를 입혔을 것이다. 사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살 때도 집에 오면 내 방에만 있었고, 명절에는 사촌 동생들만 내 방에 데리고 와서 대화를 했었다. 아마도 언젠가 고모님이 혼자 우리 집을 찾았던 날, 그때도 나는 대충 인사를 하고 내 방에 있었을 것이다. 한때 사랑을 다했던 조카가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아무런 답변을 적지 못했다. 


나는 연달아 톡을 보냈던 둘째 작은 아버님의 답변이 가장 궁금했다. 하지만 그날 밤까지도, 다음 날 아침까지도 그분은 아무런 답변을 보내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날 오후. 단톡방에 유튜브 링크 하나가 떴다. 

가수 이동원과 성악가 박인수가 정지용의 시 ‘향수’에 멜로디를 붙여 부른 노래다. 

작은 아버님은 이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적었다. 


“막걸리 한잔 혼주 하니 옛 생각이 간절하오. 조카 놈이 조상 산소 찾기 절연을 선언하는 톡을 보내와
심경이 까칠해 슬퍼지오”


이 톡은 꽤 흥미로웠다. 이건 나한테 하는 이야기지만, 마치 근처에 사는 지인에게 하소연을 하는 형식의 글이다. 왜 나한테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못하시는 걸까. 그냥 “이 녀석아, 그게 말이 되냐”라고 하실 수도 있을 텐데. 그제야 작은 아버지가 평소 나한테 이야기하던 메시지의 형식들이 생각났다. 선산에 같이 가자는 이야기도 대놓고 강요하지는 못하고, 마치 같이 놀러 가자는 듯 이야기하셨다. 톡을 연달아 보내기는 했지만, 함께 붙은 메시지는 혼자 적은 메모에 가까웠다. 어쩌면 이 분도 이제 와서 나한테 선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마음 한 켠에서는 미안했던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보내온 또 다른 답변을 보니 더 그랬다. 



� 어우렁 더우렁


와서는 가고

입고는 벗고

잡으면 놓아야 할

윤회의 소풍 길에

우린 어이타 

인연 되었을꼬,


봄날의 영화

꿈인 듯 접고 

너도 가고 나도 가야 할

그 뻔한 길

왜 왔나 싶어도


그래도...

아니 왔다면 후회했겠지!


노다지처럼 널린

사랑 때문에 웃고

가시처럼 주렁 한

미움 때문에 울어도


그래도 

그 소풍 아니면

우리 어이 인연 맺어졌으랴,


한 세상 세 살다 갈 소풍 길

원 없이 울고 웃다가

말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낮단 말

빈 말 안 되게 

어우렁 더우렁

그렇게 살다 가보자.

/ 만해 한 용운



헐. ‘시’라니… 그것도 만해 한용운이라니… 나는 대화의 맥락에서 작은 아버지가 이 시를 보낸 이유를 추론했다. 언뜻 보면 ‘가족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자’는 메시지로 보였다. 우리가 가족이라는 걸 강조하면서 은연중에 장손의 역할을 함께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몇 번을 더 읽어본 후에는 “네가 선산을 돌보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족이니 어우렁 더우렁 살아가자”는 의미로 생각해봤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아버님, 어머님들처럼 어디선가 받은 ‘좋은 글’을 그냥 공유한 걸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이든 작은 아버지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피하고 계셨다. 


추석 연휴로부터 몇 주가 지났지만, 이 단톡방은 그대로 있다. 아직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던지는 질문이 없지만, 있을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대답할 것이다. 친척 어른에 대한 예의의 차원이라기보다는 내가 더 이상 이 문제를 애써 웃어넘기고 싶지가 않아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대화를 보면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식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집안의 이야기를 지키는 건,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어른들도 알고 계실 테니 말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내 여자 친구의 외할머니께서 하셨던 결단과 비슷한 결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여자 친구의 말에 따르면, 평생 시댁 제사를 지내셨던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집안의 묘소들을 정리해 해양장을 하신 후 당신께서도 같은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도록 하셨다고 한다. “어차피 찾아올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만약 나의 가족들도 비슷한 결단을 한다면, 기꺼이 비용을 부담할 생각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분담했을 비용까지 더해서 2인분으로 낼 것이다.


혹시나 해서 1. 

이런 이야기를 몇몇 친구에게 했다. 한 친구가 물었다. 그럼 “너희 아버지는 선산에 계신 게 아니야?” 친구의 질문을 듣고 나니, 아버지가 나에게 돈으로 물려준 건 없어도, 매우 큰 편리함을 남기고 가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월남전에 참전하셨던 아버지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립묘지에 안장되셨다. (나중에 어머니도 아버지 바로 옆에 모실 수 있다.) 만약 선산에 계셨다면, 나는 친척 어른들의 권유를 웃어넘기지도 못했을 것이고, 저런 글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너희 아버지 산소 관리 안 할 거야?”라는 말에는 대답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너희 아버지 산소 관리 안 할 거야?”란 말 다음에는 “그렇다고 어떻게 아버지 산소만 쏠랑 하냐. 바로 근처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도 있는데…”라는 말이 이어졌을 것이고, 그러면 나는 아버지 산소만 ‘쏠랑’ 이장하지 않는 이상, 어떤 말도 못 했을 것이다. 아버지 덕분에 계획이 세워졌다. 먼 훗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일단 아버지 곁에 모시고, 내가 그 나이가 되면 두 분을 해양장으로 모신 후,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혹시나 해서 2. 

해양장은 ‘해양산분’으로 불린다. 지난 2012년 국토교통부는 ‘해양산분’에 대해 “해양환경관리법에 의한 법적 분석 결과 불법이 아니며, 장사문화의 존중, 해양환경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해양산분 행위에 대한 규제 필요성도 많지 않다”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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