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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Jul 18. 2018

'연애의 온도'가 드러낸 연애의 본질

<연애의 온도>는 상온의 연애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3년간 사내연애 중이던 동희(이민기)와 영이(김민희)가 헤어지면서 시작한다. “이별은 누구나 하는 것”이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헤어진 게 다행”이라고 말한 그들은 이별한 후에 더 많이 헐뜯고, 욕하고, 싸운다. 서로의 페이스 북을 뒤지고, 새로운 연인의 정체를 파악하는 한편, 빌려준 돈은 받아 챙기고 돌려줘야 할 물건은 망가뜨려버린다. 그런데 그들은 또 다시 만나고 사랑한다. 그리고는 또 헤어진다. 도대체 이들은 처음 왜 헤어졌던 걸까. “왜 싸웠는지는 기억이 안나는 데, 그애가 뭐라 그러고 그래서 내가 또 뭐라고 하다보니까...” 그럼 왜 다시 만났는데? “아니, 뭐 그렇게 됐어요.” 그런데 왜 또 헤어진 거야? “나는 이번에는 정말 잘해보려고 웬만해서는 다 참았는데, 그 녀석은 여전히 제멋대로라서...” 듣기 만해도 짜증난다고? 그런데 사실 우리 모두가 겪은 연애의 본질이 지루하고 짜증나는 건 마찬가지다. 


로맨틱 코미디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장르다. 다수의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하지만, 너무 리얼한 연애담은 관객의 비호감을 사기 십상이다. 로맨틱 코미디를 종종 제작해 온 한 영화제작자는 “블록버스터보다 힘든 게 로맨틱 코미디”라고 말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기가 여간해서는 쉽지 않은 장르이고, 제작비는 적은 데 비주얼은 볼거리가 있어야 하고, 스타파워가 절대적인 장르인데, A급 남자배우들은 꺼리는 장르”라는 거다. 또 어느 시나리오 작가는 말했다. “로맨틱 코미디는 주인공의 직업을 설정하는 게 어려워요. 영화계나 광고계, 방송계 종사자는 이제 지겹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동사무소 직원으로 설정하면 그림이 안 나와요. 차라리 백수가 낫지.” 할리우드는 로맨틱 코미디의 다양한 유형을 개발해 이러한 고민을 돌파했다. <귀여운 여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노팅 힐> 등은 그런 유형을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할리우드를 벤치마킹해온 한국의 로맨틱 코미디는 이제 ‘섹스코드’를 설정하거나 다른 장르와의 이종교배를 시도하면서 해법을 찾는 중이다. ‘우연한 폰섹스로 만난 두 남녀’(<P.S I LOVE YOU>), 일도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여자가 우연히 얻은 연애비법(<남자 사용설명서>), 귀신을 보는 여자와 귀신이 무서운 남자의 만남(<오싹한 연애>), 첩보원인 두 남녀의 좌충우돌 소동극(<7급 공무원>) 등등. 저마다 눈에 띄는 개성으로 장착한 로맨틱 코미디였지만, 사실 이 영화들이 연애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 흔적은 없었다.  


<연애의 온도>가 보여주는 연애의 속살은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애써 감추거나, 일부러 답하지 않았던 질문에 대한 답일 것이다. 연애라는 게, 그렇게 아름답기만 하던가. 별의 별 사건들이 수시로 벌어질 만큼 버라이어티 하던가. 헤어졌다가도 다시 만나면 그걸로 끝나는 게 연애이던가. 독특한 개성으로 무장한 로맨틱 코미디는 즐겁지만, 본질을 꿰뚫는 연애담은 더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의 유형을 개발시키기도 한다. <이터널 선샤인>이나 <연애의 목적>처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연애의 민낯을 드러내주는 역할도 해준다. 개인적으로 <연애의 온도>를 관람하는 동안, 여자 친구의 얼굴을 봤다. 사소한 말다툼이 신경질을 거쳐 큰 소리로 이어졌던 어느 날, 내가 보려 하지 않았던 그때의 표정이었다. 여자 친구는 보았지만, 나는 볼 수 없었던 내 얼굴도 보았다. 그녀가 김민희를 닮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내가 이민기를 닮았다는 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여자 친구는 참 많이 슬퍼보였고, 나는 바보 같았다.


*2013년 3월, 패션지 '그라치아'에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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