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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Jun 19. 2024

영화 ‘탈주’ 시사 후기 | 부서질 망정, 멈추지 않음

100분 이하의 영화는 웬만하면 재밌다 

*영화 '탈주'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첫인상


북한 비무장지대의 말년 군인은 근무 도중 남한의 라디오를 듣는다. 주파수에 잡힌 프로그램은 '배철수의 음악캠프'다. DJ 배철수가 읽는 청취자의 사연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는 (아마도) 20대 청년의 한숨이 묻어있다. 그런데 답이 나오지 않는 건, 북한의 말년 군인도 마찬가지다. 영화 <탈주>의 주인공 규남(이제훈)에게 다가오고 있는 제대는 또 다른 수렁이다. 출신성분이 '바닥'인 그는 군을 나가봤자,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다. 당이 시키는 대로 살아봤자 농촌 아니면 탄광에 가야한다. 그래서 그는 남한으로의 탈주를 계획한다. 남한이 지상낙원이라서가 아니다. 적어도 남한에서는 '선택'이라는 걸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다. 

여기서 부터 <탈주>는 빠르게 달려간다. 인물들도 달리고, 영화의 전개도 달린다. 빠르게 달린다. 제대를 앞둔 군인은 왜 탈주를 하려 하는가? 에 대한 맥락만 설명해놓고 그 다음에는 탈주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간결한 것이다. 주인공 규남의 탈주는 여러 방해물과 위기가 있다. 규남은 그때마다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모면한다. 빠른 상황 파악과 신분 위장, 그리고 지칠 새가 없는... 아니 지치면 안되는 체력이 그의 무기다. 다소 우연에 의존하고, 운에 기대는 부분이 있지만 크게 어색한 정도는 아니다. 영화가 주인공의 열망이 뿜어내는 에너지의 묘사에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 이제훈이 또 몸으로 그런 열망을 연기한다. 게다가 이 영화는 그런 허점을 생각할 겨를도 없는 속도감으로 달려간다.

구교환이 연기한 이현상이라는 인물도 재미있다. 이 인물을 요약하자면, <사랑의 불시착>의 리정혁이 흑화한 버전이라고 할까? 주인공의 탈주를 막는, 말하자면 빌런이고 안타고니스트인 캐릭터인데 단순하지 않다. 구교환에게 맞춘 각색이 있었다고 하지만, 구교환이 또 한 번 배우로서 각색한 영역이 커 보인다. 이 영화로 구교환은 남한 D.P와 북한 D.P(실제 그렇게 불리지는 않지만)를 둘 다 연기한 배우가 되었다. 

북한 군인의 탈주를 그리고 있지만, 사실 답을 찾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사람의 이야기다. 더 나은 삶을 간절하게 꿈꾸는 입장이라면 영화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메인 테마곡으로 삽입된 자이언티의 '양화대교'가 아련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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