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에서 데뷔하고 싶다면, 정원관리사 자격증을 따라
픽사를 향한 마음이란, 이를테면 매일 밤 정말 맛있는 걸 들고 퇴근하는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다. <토이스토리> 이후, 픽사는 장편이든, 단편이든 실망을 준 적이 없다. 물론 <카> 시리즈 같은 많이 아쉬운 작품도 있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픽사의 작품 중에서는 아쉬울 뿐이라는 단서를 애써 붙여주곤 했었다. 기자로 일한 지 6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픽사를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미국이란 나라, 샌프란시스코란 도시가 궁금한 곳이었다면, 픽사는 만끽하고 싶었던 곳이었다. 누가 말을 붙여주지 않아도, 그 곳 한 가운데에서 멍하니 앉아있고 싶었다.
픽사의 정문이다. 픽사는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에 위치해있다. 주워들은 말에 따르면, 오클랜드는 미국전역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우범지역이다. 매년 6월쯤 되면, 살인사건만 100건 넘게 집계된다고 한다. 이런 곳에 픽사가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픽사 때문인지, 이 곳 근처는 그래도 그나마 돌아다니기 괜찮은 곳이란다.
정문을 통과하면 왼쪽에 본 건물로 향하는 길이 있다. 뭐가 이리도 싱그럽나 싶었다. 하늘은 구름한 점 없고, 나무는 푸르고, 잔디는 관리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이곳 직원들이 음식을 들고 캠퍼스 곳곳에 모여 앉아 먹었다. 야외무대로 보이는 공간, 축구장, 수영장등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극동에서 온 나 또한 이런 회사를 보며 부럽고 부러웠다.
픽사의 엠블렘이 된 룩소주니어다. 픽사가 자사의 아트웍을 가지고 호주에서 전시를 할 때, 현지에서 받은 선물이라고 한다. 밤이 되면 불도 켜진다. 혹시나 픽사 내 기념품 샵에 룩소주니어와 똑같은 스탠드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없었다. 애니메이션으로 봐서 그렇지, 사실 그 쪽에서는 너무 흔한 디자인의 스탠드라고.
픽사 로비다. 정문 반대 쪽 위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에서 오른쪽이 마음대로 공짜로 먹을 수 있다는 식당이고, 왼쪽에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키친이 있다. 로비 곳곳에 반가운 캐릭터들이 놓여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니모와 <토이스토리>에 나왔던 외계인 인형들이 제일 좋다.
픽사가 그동안 받았던 트로피도 로비 입구 쪽에 진열돼 있었다.
픽사 로비 내 남자화장실 표시는 우디의 실루엣이다. 다른 층 화장실에는 버즈가 그려져 있기도 했다. (여자화장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우디 정도는 뭐 그럴 수 있다고 여겼는데, 누군가 또 그 옆에다가 <라따뚜이>의 생쥐를 그려넣은 걸 보고는 못 말리는 애들이라고 생각했다.
픽사 애들이 얼마나 못 말리는 애들인가는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로비 안에 극장이 하나 있다. (입장 전에 모든 카메라를 맡겨야 해서 찍지는 못했다.) 천장이 별빛을 본 뜬 조명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영화가 시작하기 앞서 누군가 말하기를, 상영관 불이 꺼짐과 동시에 별빛들 사이로 별똥별이 지나갈 거라고 했다. 정말 별들 사이로 또 다른 별이 움직이며 지나갔다. 꽤 여러 별들이 움직였다. 평소 이 곳에 초청되는 직원의 아이들은 이 순간만 되면 미리 알고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그리고 진짜 못말리는 사례는 픽사의 아카이빙 담당자가 말해줬다.
호른이다. 픽사 초창기, 한 대의 컴퓨터가 렌더링을 끝내면 담당자가 이 호른을 불렀다고 한다. 호른 이후에는 각 컴퓨터마다 동물 이름을 붙여놓고는 렌더링 끝날 때마다 동물 울음소리를 냈다고. 회사는 작고, 일은 많고, 힘들고 그런 와중에 조금이나마 재밌게 일해보자고 그랬다는 거다. 귀엽다는 생각보다도 마음이 짠했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으면... 울음소리를 내면서도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을텐데 말이다.
<토이스토리>의 씨드는 장난감을 이종교배하는 악당이다. 씨드가 창조한 변종 장난감들을 이들도 직접 만들었다. 그 중 하나다.
2층 복도에 걸려있던 사진 중 하나다. 복도는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어서 구글링으로 찾았다. 이 사진을 보면서도 가운데 앉은 스티브 잡스 때문에 짠했다. 존 레세터는 사진 보다 복도에 걸린 어느 카툰에서 더 인상적이었다.
이걸 찍으려 했더니, 홍보담당자가 제지했다. 그래서 이것도 구글에서 찾았다. 픽사 직원들이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과정을 소개하는 카툰이다. 1월 달력이 보이고 누군가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배치하고 어떻게 피칭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중이다. 그리고 드디어 동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날이다. 객석에 있던 존 레세터가 그 이야기에 더할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며 말하기 시작한다. 이제 당사자는 다시 스토리보드를 그린다. 그리고 또 그린다. 존 레세터는 가끔 들러서 응원하고 간다. 그게 더 부담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월이다. 맨 첫 그림에서 달력만 바뀌어 있다. 두 가지를 알 수 있었다. 픽사의 이야기에 존 레세터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건 당연한 거고,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피칭할 수 있다는 게 또 다른 한 가지다.
픽사에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가 애니메이터든 프로그래머든 간에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피칭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뽑히면 자신이 연출하는 단편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픽사에 일하는 한국인 애니메이터에게 물어봤다. 혹시 저기 잔디를 관리하는 사람도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면 피칭을 할 수 있냐고. 그는 당연하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와 아직 입봉을 못하고 있는 영화과 졸업생 친구에게 말했다. "일단 영어를 배우는 거야. 그리고 잔디깎이 기술을 배우는 거야. 너가 픽사의 잔디만 깎을 수 있다면, 한국에서 입봉기회를 잡는 것 보다 더 쉽게 미국에서 데뷔할 수 있을지도 몰라."
픽사 내부 투어를 맡아주었던 홍보담당자가 했던 말도 인상적이었다. "픽사에서는 실수 또한 작품을 위해 쏟은 과정 중 일부분으로 인정해요." 실수 때문에 겪는 손실 보다 실수를 통해 깨닫는 무언가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다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퀵보드를 타고 이동하는 직원들의 모습, 어느 때나 갖고 놀수 있는 각종 게임기구들, 또 언제나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케이터링은 부럽지 않았다. (퀵보드는 씨네21에서도 탈려고 하면 탈 수 있다. 그런 거 가지고 뭐라하는 회사는 아니다. 탈 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두려워 할 필요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확인을 해본 건 아닌데, 픽사는 나름 투어를 원하는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듯 했다. 나와 함께 간 기자들이 투어를 할 때도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보였다. 그들도 이 사진에 나온 것과 같은 방문증을 붙이고 있었다. 어떻게 신청해야하는지는 모르겠다.
P.S
이게 진짜 자랑거리다. 픽사 내 기념품 샵에서 사온 책이다. 앞서 픽사 아카이빙 담당자가 보여주었던 것들이 사진으로 담겨있다. 그리고 그림이나 명함, 사진, 인쇄물 같은 건 실제와 똑같이 만들어서 페이지 곳곳에 끼워놓았다. 앞서 올린 스토리보드 관련 그림도 여기 있다. <제리의 게임>을 만들기 전부터 다루고 있다. 다른 아트북들은 한국판이 나올 수 있지만, 이건 절대 나올 수 없을 것 같아서 샀다. 혹시나 가게 된다면, 꼭 이걸 사도록 하시라. 다른 건 다 필요없다. 이것만 있으면 픽사를 다녀왔다고 깔끔하게 인증할 수 있다. 가격은 50달러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