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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Aug 04. 2018

'캡틴아메리카:시빌워'가 보여주는 신나는 정치적행동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2016)

*2016년 5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블로그에 기고된 글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이하 <시빌워>)는 전국 누적 관객 700만 명을 기록했다.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를 매우 사랑해온 한국 관객에게 <시빌 워>가 사랑받는 건 당연해 보인다. 게다가 이 영화에는 캡틴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아이언맨도 있고, 그 외 여러 슈퍼히어로들이 함께 등장하면서 <어벤져스 2.5>나 다름없는 캐스팅까지 갖추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파이더맨'이 나온다.


'스파이더맨'은 이미 여러 편의 영화로 관객과 만났다. 2명의 주연배우가 거쳐갔고, 곧 <스파이더맨: 홈커밍>이란 제목으로 새로운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시작될 예정이다. 그렇게 익숙한 캐릭터이지만, <시빌 워>가 어느 10대 소년의 뒷모습으로 스파이더맨을 처음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뉴욕 퀸즈에서 메이 숙모와 함께 살아가며 숙제를 걱정하는 피터 파커의 모습이 어딘가 아련하게 다가온 덕분이다. 한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해야 할까. <시빌 워> 속 피터는 앞서 다른 영화로 보았던 '스파이더맨'들과 함께 지구 어딘가에서 평행우주적인 관점으로 살고 있었을 것 같은 캐릭터였다. 스파이더맨은 바뀌거나 사라진 게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스파이더맨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시빌 워>에서 스파이더맨은 영화를 본 사람들이 모두 극찬하는 공항 결투 장면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아직 철부지 아이나 다름없는 스파이더맨은 어른들 틈에서 싸우는 내내 입을 가만두지 않는다. 상대방의 무기에 놀라워하고, TV와 신문에서만 보던 슈퍼히어로들과 한 팀을 이루었다는 사실에 흥분하며 자신이 그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재미를 느낀다. 스파이더맨의 존재감 덕분에 이 장면은 단지 슈퍼히어로들이 서로 싸운다는 설정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어른들의 싸움에 끼어든 아이. 그리고 그 아이의 활약. 공항 결투 장면을 가장 신나게 볼 수 있는 관점이다. 


<시빌 워>의 슈퍼히어로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서로와 대결한다. 슈퍼히어로들은 그동안 수많은 빌런과 싸우며 지구를 구했지만, 사실 그들이 벌이는 싸움은 곧 인간들에게 재난이었다. 워싱턴 DC와 뉴욕, 소코비치 등에서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숫자가 <시빌 워>에서 처음 언급된다. 그리고 UN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 국가들은 어벤져스 대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자신들의 능력을 쓰지 못하게 하는 '소코비치 협정'을 계획한다. 토니 스타크를 중심으로 한 슈퍼히어로들은 어벤져스를 지키기 위해 협정을 받아들이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는 그 협정 하에 이루어진 시스템이 어긋날 경우, 더 큰 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에 협정을 반대한다. 외부의 입김에 의해 굳건하던 어벤져스가 팀 아이언맨 대 팀 캡틴 아메리카로 나뉘는 것이다. '정치적'이라는 건 다른 걸 말하는 게 아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 그로 인한 분열, 또 그로 인한 대립. 우리가 현실에서 보던 '정치'와 <시빌 워> 속의 정치는 속성상 다른 게 없다.


그런데 10대 소년인 스파이더맨이 지금 이러한 정치적 대립에 끼어든 것이다. 설정상 피터 파커는 토니 스타크의 후원을 받기 위해 이 싸움에 참여하지만, 분명 그는 지금 매우 정치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두 팀의 사이에서 한 팀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시빌 워>의 이야기를 담은 원작코믹스에서도 스파이더맨은 매우 중요한 '조커'로 등장한다. 처음 스파이더맨은 슈퍼히어로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토니 스타크와 한 팀을 이룬다.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스스로 마스크를 벗고는 "지금 제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은 제가 하는 일이 부끄러워서가 아닙니다. 저는 제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하지만 이후 자신의 동료들이 감옥에 갇히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팀 아이언맨과 대립하고, 그의 새로운 선택은 이 전쟁의 양상을 뒤바꾸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물론 영화 <시빌 워>는 이러한 정치적인 대립과 함께 슈퍼히어로들 개개인의 사연에 주목하면서 정치 드라마보다는 휴먼 드라마적인 감정을 강조한다. 영화 스스로 정치적인 맥락으로만 강조되는걸, 두려워한 것이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의 입장에서 볼 때, <시빌 워>는 여전히 중요한 정치적인 함의를 갖는다. 어느 조직이든 100% 완전 무결한 단결이란 있을 수가 없다. 또 그렇게 내부적인 대립을 통해 조직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정부의 제안에 저항하는 존재가 그토록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싶어 했던 캡틴 아메리카라는 사실도 흥미롭지 않은가? 누구나 신념을 가질 수 있고 그 신념을 추구하기 위해 행동할 수 있다. 이러한 행동들이 겹치고 겹쳐 정치적인 활동이 되는 것이다. 10대의 피터 파커에게 이날의 정치적인 행동은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그냥 멋진 형 누나들과 신나게 어울렸던 기억에 불과할까? 어떤 목적으로든 일단 스파이더맨은 선택을 했고 '정치적'인 행동을 했다. 그 선택은 이후 그에게 생겨날 신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만약 이 싸움의 무대가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어린 슈퍼히어로들은 어디서 어린 것이 어른들 싸움에 끼어드느냐는 말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사회에서는 이미 정치인 외의 사람들이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두고 "왜 정치적인 것으로 끌고 가느냐"며 비난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이까지 어리면 그 비난은 두 배가 된다. 그래서 점점 사람들은 자신의 발언을 조심스러워 하게 되었고, 주변인의 정치적인 행동을 불편하게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정치적이면 안되는 것인가?' 그들은 대부분 '쓸데없는 분란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쓸데있는 분란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인가?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싸움은 없다.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념이 다른 사람들과 대립한다면, 그게 정치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다. <시빌 워>의 스파이더맨은 투표권을 이제 막 가진 당신이나, 곧 가지게 될 당신에게 '정치적'인 것이 얼마나 흥분으로 가득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스파이더맨에게는 '거미줄'이 있고, 당신에게는 '투표권'이 있다. 그것이 당신이 정치적인 싸움에 참여할 수 있는 무기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신나게 정치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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