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나는 생각보다 꽤 조용한 편이다.
물론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땐 말도 많아지고, 웃음소리도 커지지만
소위 말하는 E보다는 확실히 I.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는 여전히 살짝 부담스럽고, 혼자거나 소수 정예(!)로 움직이는 게 훨씬 편하다.
술을 마실 때도 마찬가지다.
왁자지껄한 술자리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 혼자 조용히 마시는 한 잔이 주는 기쁨은 또 다른 차원의 것.
“혼자 먹는 밥, 혼자 마시는 술은 맛이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혼자 마셔도 맛있다.
아니, 가끔은 더 맛있다.
술을 왜 마시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순하다. 맛있어서. 좀 더 깊게 말하자면, 입안에 가득 퍼지는 향과 끝맛을 천천히 음미하는 게 좋다.
내 취향을 하나씩 발견해가는 그 과정이 꽤나 즐겁다.
예전엔 ‘기분 좋게 취하고 싶어서’ 마시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딱 기분 좋은 선에서, 한 모금씩 나의 술 취향을 알아가느라 바쁘다.
와인이든 위스키든,
그 술의 맛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서 안주는 잘 준비하지 않는다.(뭔가 곁들이면 맛이 흐려지는 느낌이랄까?)
처음 와인의 세계에 빠져들었을 때는 진짜 신기했다.
첫 향은 상큼한데, 마시고 나면 남는 여운은 전혀 다른 느낌.
‘이게 같은 포도에서 나온 맛이라고?’ 싶어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달콤한 와인보단 묵직한 쪽이 취향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또 가볍고 씁쓸한 와인 맛에도 빠져들었다. 참 묘하고도 매력적인 세계다, 와인은.
요즘은 슬슬 위스키에 발을 들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치과 냄새 난다”고 고개를 젓는 피트 위스키.
나랑은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 그 향을 맡으면 나도 모르게 눈이 반쯤 감긴다.
내게는 나무 향처럼 느껴지고, 그 향이 입을 통해 퍼질 때면 향수를 잘 뿌리지 않는 나조차 이 향은 들고 다니며 뿌리고 싶어진다.
내가 몇 번 갔던 위스키 바는
유튜브에서 배우 이청아님이 소개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명도 부담스럽지 않고, 위스키에 대한 설명도 친절해서 나도 종종 추천하는 곳이다.
혼술에는 몇가지 나만의 작은 규칙이 있다.
1. 취하지 말 것.
2. 맛에 집중할 것.
3. 그리고, 행복할 것.
그날의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같은 술도 전혀 다른 맛으로 느껴지니까.
향, 입에 들어온 그 첫맛과 끝맛.
그 미묘한 변화를 느끼려 노력하다 보면
아주 사소한 기쁨이 툭, 하고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마시는 술 한 잔은 하루의 끝자락에서 나를 조용히 다독인다.
작고도 분명한 기쁨.
어쩌면 이런 규칙들이, 조금씩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주는 마법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비가 생각보다 많이 오니, 씁쓸한 초콜렛과 위스키와 함께하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