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번째 직장생활, 그래! 그래도 고마웠어!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나누는 순간에도 계속 생각했다.
이제 정말 퇴사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한 달 간 감정이 정말 휘몰아쳤는데,
막판에 더 큰(?) 게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지 뭔가 허전한 느낌도 있었다.
책가방이 꽤 무거웠다. 하지만, 근무했던 회사에서 이만큼 짐이 적었던 경험도 처음인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탈출하듯이 (?) 퇴사하는 것도 처음인거 같다.
퇴근길, 아니 퇴삿길 바글바글한 지하철 입구에 들어섰다. 웬지 이 광경이 그리워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한가지 생각이 스쳤다.
'와...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회사들이 있었어.'
사람은 보통 본인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세상을 바라보며 해석한다고 하는데, 이번 일을 통해 그 지경이 더 넓어진 것 같다. 휴리스틱으로 사안을 보는 것에 대해서도 경각심이 들고 있다. 아니, 사실 나의 휴리스틱은 실패했다. 나의 휴리스틱으로는 거친 세상에서 사기꾼(?)을 만나기 쉽상이었던거 같다.
그래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14번째 회사의 경험은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가장으로서, 우리집 식구들의 선장으로써 암초들을 잘 피해야할 의무가 나에게 있다. (이미 어른이지만, 14번쨰 직장은 나를 더 어른이 되게 해준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대표님이 말했던 사업구상과 계획, 회사의 상태에 대해 나는 곧이 곧대로 다 믿었다. 그것이 sales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나는 1도 생각하지 못했다. (면접에 누가 sales를 할까;;;)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야 알았다.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그것은 바로 당신이 풀어야할 문제'라고 재촉했고, 재촉에 물리적으로 부응하지 못하면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는 건 바로 당신 때문'이었다. 이래도 당신 탓, 저래도 당신 탓. 답이 없었다.
'더 갈아넣어야 하고, 더 갈아넣어야 하고.. 그리고 더 갈아넣어야 해'라는 말은 어쩌면 내가 사원이나 대리면 통했을지 모른다. 근데 나름 15년 넘게 겪었는데... 그것이 조종인 것을 내가 모를리가 없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 '왜 미리 알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을 수백번 한 것 같다.
뭔가 수상한데 라는 낌새를 눈치챘지만, '설마, 그정도까지겠어'라는 생각에 위안을 삼았더랬다.
안일했다.
어찌되었든 비교적 삶을 간편하게 만들어왔던 휴리스틱의 마지노선이 와그르르 무너졌다. 관계의 목적이 있거나 또는 없거나, default부터 봐야함이 체화된 것 같다. 휴리스틱이 삶 속에서 다시 셋팅되어지겠지만, 이전보다는 더 견고하게 셋팅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다시 확인했다. 혹시 회사에서 또 이상한 연락이 오질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아무것도 온게 없었다. 휴. 이제 정말 퇴사했나보다. 그때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아빠 이제 백수~!"
라고 환하게 외치는 첫째의 말과 둘째의 환호와 박수에 나는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어차피 누구나 결국에는 백수가 되는 거 아닌가?
ㅎ..
그동안 나를 잘 가려줬던 옷을, 이제는 벗은 느낌으로 내일부터 살아가야한다. (아시겠지만,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은 꽤 유용한 옷이다)
예전에 설교에서 이런 예화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명품 짝퉁 가방을 들고 다닐때,
누구보다도 그 가방이 짝퉁인 것을 잘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200% 공감이 가는 지금이다.
당장 내일부터 나는 나에 대해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똑같이 가던 씨유 편의점에 갈때도 나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누구보다도 내가 '백수'인 것을 내가 잘 아니까.
ㅎㅎㅎㅎㅎ
와 벌써 느껴진다. 그 이질감. 한 5년만인거 같다.
PS.
다행인 것은,
이번이 백수 3번째이다.
한번 또 노련하게 잘 헤쳐나가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