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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죽음을 그려본다.

24년 12월의 어느 날

by yeon

이것은 엄마와 나의 이야기

몇 달째 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과민성방광.. 새벽에 많게는 10번 넘게

적게는 4번 이상 새벽에 화장실 가자고 깨운다.

잠을 못 자고 낮에도 화장실 다녀온 지 20분도 채 되지 않아 부르기도 하기 때문에 낮잠은 사치고, 샤워 볼 일조차 마음 편하게 하질 못한다.

새벽에 까무룩 잠들만하면 불러대는 통에 잠을 못 잔 지 4달은 되는 것 같다.

새벽엔 정말 감정 조절이 안된다. 엄마한테 폭언 아닌 폭언을 하게 된다.

씨발 진짜 잠 좀 자자. 방금 갔다 왔잖아!!

살기가 싫어 어디 가서 혀 깨물고 뒤지든 옥상에서 뛰어내리든 죽고 싶다고!!

화장실 다녀와 불을 끄고 천장을 멍하게 바라보다 보면죽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나를 뒤덮는다.



엄마가 뇌출혈 이후 중환자실에서 생과 사 갈림길에 있을 땐 살려달라 간절히 바랐다.

​​

살아 돌아왔고 그 후엔 재활에 집중했다. 할 수 있는 비급여 재활도 최대한 받았고, 걷는 걸 목표로 일반식과 물을 잘 먹는 걸 목표로 1년 넘게 집중했다.

회복기 재활병원에선 다들 급성기라 재활에 열심히 집중하는 환경이었기에 퇴원 후 집으로 가는 걸 목표 삼아 열심히 하는 분위기였다. 조금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재활병원에선 발병한 지 오래된 환자와 보호자들을 만나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10년째 재활을 받지만 여전히 와상인 환자부터 발병한 지 오래되어 더 이상 재활 치료 수도 거의 없다시피하지만 돌아갈 집이 없어 계속 요양병원을 전전하는 환자, 8년의 재활로 딱 한걸음 내딛을 수 있는 환자 등등..

집으로 와서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 재활을 하는 건데 재활을 하느라 집으로 오지 못하는 상황..

내가 뭐라고 그들의 삶을 단정 지을 수 있겠는가

근데 그들처럼 할 자신이 없어졌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간병해야 할 사람은 필요하고 간병비 버티다 결국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보고 있는 상황인데 내가 병원 생활에 이골이 나있었고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져 견디기가 힘들었다.

낫고자 하는 재활인데 재활만 하다 병원에서 보내며 사는 게 맞는 걸까 라는 의구심은 점차 커졌다.

비록 단기기억이 안 좋고 스스로 일상생활을 하나도 수행하지 못하지만 조금은 걸을 수 있고, 대화는 가능 하니 집으로 퇴원했다. 1년 8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발병 1년쯤 제일 무서웠던 감정중 하나가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였다.

재활하면 화장실 정도는 혼자 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초기..

그 간단한 행위가 얼마나 많은 기능이 있어야 가능 한지를 알게 된 후 모든 게 아득해졌다.

요의를 느끼고 스스로 일어설 줄 알아야 하며 화장실위치를 알거나 물어볼 수 있는 인지와 문을 열고 닫고 스스로 바지를 내려 조심히 앉는 행동도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 멀리에 있는 별이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스스로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 나가야 할 길이 구만리인데 차도는 너무 미미했고 뎌뎠기에 인내심도 바닥이 나고 있었다.

내가 버티지 못해 간병을 포기하면 다음 선택지는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인데 아직 내 마음에선 그 선택들은 수긍이 되질 않았다.

엄마의 마지막을 꿈꿔본다.

사람답게 사는 게 뭔지 이젠 모르겠지만 바라옵건대

마지막까지 부디 이 정도 걷는 기능은 남아있길,

더 이상 기억을 잃지 않길,

당신 딸은 알아봐 주길,

입으로 밥과 물을 먹을 수 있길 바라본다.

부디 더 안 좋아지는 상황이 오면 그냥 그대로 떠나가시길 바라지는 시간이 온 것이다.

​그저 그 끝이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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