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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칠 Mar 23. 2022

사수

사수라는 말을 처음 들은 건 군대에서다. 선임과 함께 초소에 근무를 나갈 때, 선임은 사수를, 신병이었던 나는 부사수를 맡았다. 그러나 사수라는 말은 단순히 초소 안의 역할에만 국한되어 사용되는 건 아니었다. 사수는 생활관에서도 사수였다. 그에겐 나를 군대에 맞추어 개조해 내는 의무가 있었다. 아마 사수를 풀어쓴다면 '개인 전담 조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사수라는 말을 다시 마주하게 된 건 회사에서다. 회사에서 총을 다루는 것도 아니건만 사수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은 어딘지 이상했다. "군대도 하나도 사회"라는 말은 군대에선 흔한 레퍼토리다. 사회에서 사수라는 말이 쓰이는 것은 사회가 병영이라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전쟁터'라는 으름장엔  일말의 진실이 담겨있다.



사회는 무엇일까? 확실한 것은, 학교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수는 신입에게 쉬이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바빠서, 피곤해서, 자기도 잘 몰라서 등의 이유로. 군대에서 사수가 신참을 '털면서' 규율에 순응하는 법을 가르치듯이, 회사에서 사수는 무관심으로 신참이 사회인의 소프트웨어를 탑재하도록 돕는다. 그 소프트웨어의 이름은 '각자도생'이다.



사수엔 다른 뜻도 있다. 스승 사에 줄 수를 더해 만드는 사수라는 단어는 '스승에게서 학문이나 기술의 가르침을 받는다'라는 뜻이다. 그 밑엔 얄궂게도 이런 예문이 실려있다. "사수 없이 독학하다"



사수에게서 각자도생 이외의 무언가를 사수받길 기대할 수는 있을까. 파티션이라는 참호 안에서, 손 뻗는 자리에 있는 것은 결국 사람이 아니라 검색창이다. 교육 콘텐츠 기업의 월 정기 구독 팝업창은 언제나 파티션 너머 사수보다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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