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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21. 2019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갈 준비

프리지아와 크레이프 케이크 10화


메타, 오늘은 비가 와. 괜히 기분이 좋아서 창문을 열어두고 짐을 정리하다가, 책장 아래칸에서 먼지가 뽀얗게 쌓인 다이어리들을 찾았어. 열한 권이나 되네. 다이어리라는 표지가 무색하게 온통 낙서와 걱정거리들 뿐이야. 하나씩 찬찬히 읽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거 있지. 이것 봐. 몇 년 전에 적은 글이야. 


‘토독, 하는 소리에 창문을 열어보고 깜짝 놀라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상하네. 비가 오는 것 같았는데’ 그러기를 벌써 며칠째. 세상은 완연한 봄이다. 끈덕진 늪같던 시간도 지나고, 어느새 작고 푸른 것들이 세상 곳곳 신발끈을 묶는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빗소리가 멈추질 않네. 이제 괜찮으니, 다 괜찮아 졌으니 그만 울어도 좋다고 마음에게 이메일이라도 보내야 하는 걸까’


이 글 말이야. 내가 적은 글인 것 같긴 한데 이상하게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 어떤 일을 계기로 적은 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든 글을 전부 옮겨 적을 수는 없지만 다이어리를 넘기는 동안 조금 슬펐어. 사랑을 기다리고, 상처를 주고 또 받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일기가 전부더라고. 하긴, 슬플 때마다 다이어리를 찾았으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읽는 내내 마음이 가라앉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속상했던 건 사랑을 기대하고 실망하던 글들이었어. ‘여기가 내 집일 거야’ 하고 짐을 풀다가, ‘이번에도 아니구나’ 하고 풀이 죽어 마음을 챙기던 일기들. 그런 글은 너무 마음이 아파서 막 울어버리고 싶었어. 텅 빈 공간을 쥐어보려고 노력하다가 그 허망함에 지쳐서 울고 싶어 하는 문장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거야.  


지금에 와서 보니 그 시절의 나는 조금 철이 없고 또 불쌍했네. 그때는 내 나름대로 성숙하려고 노력했는데 말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왜 나만?’이라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어. 어쩔 수 없이 의기소침한 시간이었나봐. 시간을 돌려 그때의 나를 위로할 수 있다면 나는 분명 밤이 저무는 줄도 모른채 종알종알 말이 많을 테지. 결국은 괜찮아질 테니 밥도 잘 챙겨 먹고 예쁜 옷도 사 입으라며 등을 쓸어 주다가 함께 울어버릴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있잖아. 메타와 함께한 시간에 대한 후회는 없어.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긴 하지만, 끈덕진 늪도 빗소리도 메타와는 연고가 없어. 다시 꽃이 피고 공원을 걸을 수 있는 계절이 오면 조금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조금은 기대하고 있어.




글. 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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