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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22. 2019

스물일곱의 첫 독립

프리지아와 크레이프 케이크 11화


며칠간 정신이 없었어. 어쩐지 메타가 잔뜩 걱정할 것만 같아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변명해 보자면 가출도, 도피도 전혀 아니야. 정정당당하게 걸어 나가는 독립이야. 스물일곱에 가출이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어쩌다 보니 저렴한 월세로 독립하는 셈이 됐어. 예술로 밥벌이하는 사람들에게 몇 년 동안 집을 빌려주는 공동주택이 있더라고. 연재하던 소설 웹사이트 측에서 아직 나를 재직 중으로 해놓아서 자격이 된 거긴 하지만, 뭐 아무렴 어때. 평생 지지리도 운이 없더니 여기에 다 몰아 쓰려고 그랬나 봐. 집은 공실이라길래 당장 보름 후에 입주하는 걸로 계약서에 적어버렸어. 어차피 짐도 침대랑 책장이 전부고, 챙겨갈 소소한 몇 가지는 진진의 도움을 좀 받기로 했으니, 별로 문제 될 건 없을 거야.


이 집에 엄청난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마냥 홀가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가 마음에 좀 걸려. 아빠 말이야. 의외로 엄청 슬퍼하는 거야. 이층엔 잘 올라오지도 않던 사람이 괜히 내 방문 앞을 기웃거리면서 같이 밥을 먹지 않겠냐는 둥 도와줄 건 없냐는 둥, 하루에 열두 번씩 내 이름을 불러대는 거지. 삼십 년 가까이 함께 살긴 했지만, 늘 남보다 못 한 사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참 이상해. 막상 떨어지게 되니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몽글몽글 올라와. 이런 거 보면 정말 가족이라는 게 뭔가 싶어. ‘자주 얼굴을 보여줘야 한다’ ‘동거는 절대 안 된다’ 이런 얘기를 열댓 번씩 듣다가 결국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전화하기로 손가락까지 걸어버렸다니까. 이게 뭐 하는 거야, 싶으면서도 한 편으론 기분이 이상했어. 투박한 손부터 걱정스러운 말투까지, 뭐랄까, 아빠의 모든 게 낯설어서 말이야.


막상 떠나게 되니까 솔직히 헤이즐넛 아줌마라도 아빠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좀 진득하게 오래 만나면 좋으련만. 나라고 아빠가 평생 독수공방하길 바란 건 아니거든. 그저 평범한 행복을 바랐을 뿐이지. 이렇게 아빠와 딸이 뒤바뀐 걱정을 하는 걸 보면 평범은 이미 물 건너간 것 같지만.



글. 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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