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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23. 2019

죽어가는 척 쉬고 있을 뿐

프리지아와 크레이프 케이크 12화


가벼운 마음으로 꽃집에 갔다가 얼떨결에 친구를 데려왔어. 그저 프리지아 한 다발을 사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어느샌가 조그만 간이 의자에 쭈그려 앉아 온통 푸른 것들에 둘러싸여 있었어. 작은 꽃다발을 포장하던 여주인이 웃으며 말했어. ‘잠시만 앉아있어요. 리본 하나만 묶으면 끝나니까. 운이 좋네요 제인. 남편이 방금 쿠키랑 허브티를 놓고 갔거든요’ 한 달에 두어 번 올까 말까 한 손님에게 이렇게까지 살갑게 굴어주다니,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며 두 손을 내저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오독오독 쿠키를 집어먹고 있었어.


아주 작은 다육 식물들이 칸칸이 담긴 상자를 빤히 보고 있는데, 여주인이 말했어. ‘다육 식물이라면, 제인에게는 이 아이가 더 어울릴 것 같아요. 물론 제인은 프리지아를 꼭 닮았지만요’ 장사꾼의 멘트라고 하기엔 너무 사심 없는 목소리라 괜히 몸이 베베 꼬였어. 


흙빛이 물들어 거뭇해진 손이 스윽 끌어온 작지 않은 화분에는 오묘한 색깔의 다육 식물이 얌전히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었어. 꽃잎처럼 동그랗게 펼쳐진 모양에, 가볍게 섞인 옅은 푸름, 옅은 붉음.

‘칸테예요. 다육 식물 치고는 꽃대가 꽤 큰 데다가 키우기도 쉽지는 않아요. 까탈스러운 데다가 인내심도 꽤나 필요해요. 칸테를 데려간 손님들이 간혹 말해요. 화분이 다 죽어가는데 물을 더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칸테는 늘 그렇게 사람들을 속여요. 사실은 그저 쉬고 있을 뿐이거든요. 죽어가는 척 해도 잘 살아 있는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면 다시 생생하게 빛을 내는데, 조바심이 난 손님들은 그 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듬뿍 물을 줘버리기도 해요. 칸테는 결코 바라지 않았을 일이었겠지만 어쩌겠어요.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늘 착오와 시간이 필요한 법이잖아요’


칸테를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여주인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어. ‘오해했나 봐요 제인. 그저 제인과 어울려서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부담감으로 데려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키우기도 쉽지 않은 식물인걸요’


메타. 나는 꼭 이런 식이야. 나중에 이렇게 되어버릴지도 몰라요, 하고 안 좋은 소리를 들어도 그저 그 순간 느껴지는 내 확신을 온전히 믿어버리게 돼. 나중에 어떻게 되건 말건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당장의 내 마음을 외면하고 싶지가 않은 거야. 


결국 칸테는 누더기 소파 옆, 가장 볕이 덜 드는 공간에 자리를 잡았어. 가까운 곳에 생기를 두어서 그런가 어쩐지 마음이 든든해. 이사 전에 다시 가게에 들러서 가이드북이라도 하나 추천받을 생각이야. 이왕이면 착오 없이 가까워지는 편이 서로에게 더 효율적이지 않겠어?




글. 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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