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앙리 레비, <철학은 전쟁이다> ㅣ
책이 철학자의 자식이 아니라 철학자가 자신이 쓴 책의 자식임을 의미합니다. 책 속에서 일인칭으로 말을 하는 사람은 저자가 아니라 책이라는 것을, 혹은 책을 통해 작품이 말을 하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은 어떤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 그의 즙과 실체를 짜내고, 그의 진실을 밝히고, 그가 고백을 하도록 압박하고, 그 고백을 들을 텍스트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반대로, 그를 변화시키고, 그를 변신시키고, 글을 쓴 "나"를 아직 글을 쓰지 않는 자와는 다른 어떤 인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 베르나르-앙리 레비, <철학은 전쟁이다>
<오늘의 철학>
2020년 12월에 한 청소년 기자단에 '방송작가 특강'을 했다. 원래는 가서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줌으로 바뀌었다. 그날은 기자단의 공식 활동이 끝나는 날이었다. 역시나 코로나 19로 아이들도 모이지 못했고, 모두 집에서 (공식적으로는) 줌으로 들어와 있었다. 강의는 11시였는데, 10시 40분쯤에 들어가니 바로 시작해 달라고 했다. 나는 위에만 대충 갈아입고, 바지는 무릎 나온 오리 잠옷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강의를 시작했는데, 비디오를 아무도 켜지 않고 있었다. 열심히 준비한 강의를 했지만, 한 편으로는 누군가 이 이야기를 과연 듣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중간중간 질문을 유도했고 1~2명이 호응하긴 했으나 자꾸 힘이 빠졌다. 아무튼, 그렇게 강의가 끝났다.
그런데 오늘 그때의 강의를 수강했던 한 학생이 쓴 기사가 내게 도착했다. 이 학생이 정말 열심히 들었는지, 아니면 자료만 보고 그걸 잘 편집했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성의가 보인다는 점에서 큰 위로가 됐다.
<별은 별인>_별내동 청소년 기자단이 만든 소식지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그의 책에서 "책이 철학자의 자식이 아니라, 철학자가 자신의 책의 자식"이라고 말한다.
나는 철학자는 아니지만, 책이 작가의 자식이 아니라 작가가 책의 자식이라는 말에 동감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 듯한 저 강의가 이 기사가 되어 돌아왔듯, 내가 다짐하듯 썼던 많은 글들이 내게 돌아오고 있다. 나는 책을 쓰지 않은 나와는 다른 인물이 되고 싶은 것이다.
덧붙이자면, 나는 베르나르-앙리 레비에 대해서 잘 모른다. (표지를 보니 스타일 좋은 건 알겠다) 역시나 철학에 대해서도 잘 알진 못한다. 그러나 그가 하고 싶은 말에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은 아주 많았다.
철학을 대하는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그는 왜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해 질 무렵에 만 떠올라야 하는가.라고 물으며,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기분이 내킬 때 날아오른다.'(p123)라고 말한다. 과거의 유산을 정리하는 철학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생각하는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철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거창해야 한다고도 보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그 유명한 테제를 겨냥하며
"(하임드 블로진은 '생명의 영혼'에서) 인간의 소명은 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다만 이 세계가 해체되어 먼지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p130)
달리 말하면, 더는 이 세상을 다시 만들려고 하지 말자는 겁니다. 지금의 세상을 좀 덜 나쁘게, 숨을 좀 더 편히 쉴 수 있게, 악취가 좀 덜 풍기게 만들자는 겁니다. 보존이나 혁명이 아니라 수리를 하자는 겁니다.(p135)"
라고 말한다.
그렇다. 세상은 단박에 바뀔 수 없다. 다만 이 세계가 조금 천천히 나빠지도록 노력하자. 얼기설기라도 수리해서 지금 여기에서 올바르게 살도록 노력해보자.
<아_ 꽃과 잘 어울리는 당당한 외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