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스칼 브뤼크네르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ft. <2521>
시간 속에서 사랑이나 우정을 통해서 영원을 경험한 사람은 존재에 바짝 다가간 기분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p172)
어느 나이에나 구원은 일, 참여, 공부에 있다.
...
우리는 존재를 긍정하고 무조건 찬동하는 사람으로 끝까지 남아야 한다. 세상의 광휘, 그 눈부심을 찬양하라. 지상에 살아있음이 기적이다. 비록 위태로운 기적일지라도 기적은 기적이다. 성숙은 끝없는 찬탄의 연습에 드는 것이다. 동물, 풍경, 예술작품, 음악의 아름다움을 마주하고 경탄할 만한 기회를 찾도록 하자. 세상이 추해지지 않도록 숭고한 것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매혹을 발견해야 한다.
...
당연히 받았어야 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터무니없는 은총이 감사하다.
(p 302- 304)
- 파스칼 브뤼크네르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인플루엔셜, 2021)
<오늘의 '이 터무니없는 은총'>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우정과 사랑 사이에 앉아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던 나희도(김태리)는 말한다.
"나 왜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지?"
그러자 백이진(남주혁)은 답한다
"영원할 건가 보다"
아,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싶게 서로를 바로 보며 웃던 나희도는 다시 석양을 보며 말한다.
"영원하자."
나는 이 장면이 이 드라마의 정수라도 생각한다. 늦게 이 드라마를 봤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귀가 얇은 나는 인터넷에서 한참 논란(?)이 되었던 백이진 사망설, 백이진 남편설 등에 엄청 휘말렸(?)을 것이다. 사실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응팔과 시대적 배경이 비슷할 뿐이지, 이 드라마는 애초에 결이 다른 드라마다. 일단 아이가 아빠의 얼굴을 모를 리도 없고, 백이진을 검색을 통해 처음 본다. 게임 끝이다. 이 드라마는 애초에 '이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김태리가 연기한 나희도는 이토록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또 있을까 싶게 사랑스럽다. 그런데 중간중간에 나오는 '중년의 희도'는 그렇지 않다. 비단 외모의 문제는 아니다(중년의 희도 연기자분의 외모도 충분히 사랑스럽다). 그저 중년의 희도의 삶에는 어떤 '빛남'이 보이지 않는다.
이 드라마를 정주행 하기 직전에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를 읽었다. 책에 수십 개의 밑줄이 그였다.
이 책은 50대 이상을 위한 책이라고 앞에서 밝힌다. 그러나 50대라는 생물학적 나이보다는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도 좋을 것이다. 결론은 사실 새롭지 않다. 많은 철학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전개하는 과정이 새롭다. 결국은 결론에 이르는 저 문장처럼 '어떻게 삶에서 경탄과 매혹을 발견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 방법은?
좋아하는 일은 오래도록 지속하고(<포기 / 포기를 포기하라>) 루틴으로 생활의 뼈대를 바로 세우고(<루틴 / 시시한 일상이 우리를 구한다>, 생을 처음 바라보듯 바라보라 (<시간 / 당장 죽을 듯이 영원히 죽지 않을 듯이 살라>)
끊임없이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욕망을 사랑하고 (<사랑/ 죽는 날까지 사랑하라>), 원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한계 /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등 금과옥조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이를 삶에 대비해 보면 '이별'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헤어질 때 둘의 나이기도 하지만, 백이진이 나희도를 만났던 동안의 나이기도 하다. 작가는 처음부터 나희도가 백이진과 헤어진다는 것을 밝히고 시작한다. 그리고 서서히 물들어가고 아름답게 빛나고, 천천히 변해가는 관계가 보인다. 물론 백이진이 마지막에 보이는 태도(고유림 뉴스를 보도한 자신을 과하게 책망하고(그게 그럴 일인가? 누구에게나 알려질 뉴스인데? 비리를 터뜨린 것도 아니고), 뉴욕 특파원에 혼자 지원하고, 결국은 나희도에게 날 이해 못 한다고 소리 지르는 등)는 지금까지 백이진이 쌓아온 캐릭터를 무너트린다. 그 과도한 나르시시즘에 짜증 나고 이해도 안 됐다. 그런데 또 잠시만 생각해 보면(아니면 얼굴이 남주혁이라서) 고작 스물다섯이지 않은가. 재벌로 지내다 집안이 망하고, 고졸로 임용고시에 붙고, 매일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장에 6개월이나 있는데. 세상 고통 자기가 다 짊어지고 있고, 이해 못 받는다는 착각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물론 그보다 어린 나희도는 그 와중에도 너무 빛난다만). 그 시절 나를 생각하면, 지질함과 나르시시즘은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요지는 우리는 언제나 '순간'을 산다는 것이다. 순간의 어떤 충만함을 경험하면 그것이 곧 '영원'이 된다. 중년의 나희도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생에는 우정과 사랑만으로 빛나는 어떤 짧은 순간이 있고, 그 힘으로 남은 생을 살아간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책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스물하나의 나희도도 분명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늘 생의 가장 앞에 서 있다. 나희도와 백이진이 서로의 관계를 정의할 때 알 수 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은 '에로스적 사랑 혹은 빛나는 우정' 같은 전형적인 감정 하나만으로 빛나는 것이 아니다. 눈앞의 작은 꽃, 아이의 말 한마디, 책에서 읽은 글귀. 이웃과의 우정. 도처에 경이로움이 있다. 중요한 것은 경탄할 줄 아는 힘이다. 그런 면에서 중년의 나희도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수십 개의 밑줄을 긋다 보면 알게 된다. 그토록 반짝이던 솔직함, 통찰력, 세상을 바라보는 경이로움은 '그 해 여름의 나희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나이,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이 터무니없는 은총이 가득한 지금, 여기의 모든 순간에 있다.
ps ㅡ자세히는 못 썼으니 문지웅, 지승완 두 캐릭터도 너무 마음에 든다. 중년의 두 사람은 여전히 자기 스타일대로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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