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작 Apr 11. 2022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아

- 문경민 『훌훌』


"살아온 길이 다르니까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나는 그 사정을 알 수가 없잖니."

- 문경민 『훌훌』 (문학동네, 2022)

<오늘의 '아픔'>


  아프다. 코로나니까 당연한 건데, 아프다. 그런데 이 '코로나로 아프다'라는 말의 범위가 너무 넓고 다양하다. 먼저 걸렸던 지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누군가는 병원에 갈 만큼 아팠고, 누군가는 가벼운 감기 정도라고 했다. 우리 가족만 해도 그렇다.

  3월 말 2호가 먼저 걸렸고, 이틀 후 1호가 걸렸다. 아이들의 격리가 풀리자마자 우리 부부가 걸렸다. 결과적으로 나는 병원을 제외하고는 2주째 격리 중이다. (밖에는 봄이 왔다고 하더라. 덥다고 하더라. 벚꽃이 너무 이쁘다고 하더라만. 하하하하).

  분명 같은 병인데 증상이 모두 달랐다. 1호는 열이 났고, 2호는 목과 귀가 아팠다. 남편은 오한과 피부 통증이 있었고, 나는 근육통과 목 통증이 있다.

  

  생각해 보면 아픔이란 것이 원래 그렇다. 내가 아무리 아파도, 내가 네 고통을 이해한다고 해도 나는 내 인식 범위 안에서 할 수 있을 뿐이다.


『훌훌』이미지

  


  1호가 한참 아플 때 목이 너무 아파서 귀까지 아프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별로 아프다고 하지 않는 아이라, 걱정이 됐다. 병원에 비대면 진료를 받고, 설명을 한 뒤 약을 타러 갔다. 약국 문에는 확진자는 문밖에서 기다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복도식 약국 안에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저마다의 아픔을 덜어줄 약이 봉지에 담겨 하나씩 나왔다. 1호의 이름을 말하니, 수많은 봉지 중에 하나를 찾아 줬다. 그리고 정말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설명을 했다. 그 와중에 들어오는 문의, 서류를 어찌나 물 흐르듯 처리하는지. 이게 프로인가 싶었다. 이 전쟁통에도 약사와 직원은 놀랍도록 침착한 목소리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긴 나에게는 오늘 하루지만, 이들에게는 일상이겠지. 당연히 매출이야 올라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일을 쉽지 않을 것 같았다(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라면 막 약봉지가 돈 봉지로 보여 즐거울 수도...).

   아이들 확진 후,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면서 의료진들이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을 그제야, 피부로 한 것 같다. 그전에는 막연하게만 힘들겠다고만 생각했다. <굿 닥터>나 <그레이 아나토미> 코로나 편을 보면서 아, 저런 지옥을 경험했구나 생각했는데. 이번에 아주 짧게 해 보니 -그나마다 마지막에 안일하게 하다 결국 걸려버렸지만-  그 자체로 힘들었다. 게다가 이것만 하나. 방호복은 어떻고.


  그렇게 그 전쟁통 약국에서 약을 찾아 나오는데 헛웃음이 났다. 약봉지에는 만능 약이 들어있었다. '타이레놀'. 난 이것을 찾으러 옷을 갈아입고, 나름(만) 씻고, 차를 몰고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타이레놀은 우리 집에도 있는데!!!

 결국 이 아픔을 견디는 것은 시간을 보내는 것뿐. 지금은 아프지만, 지나간다는 것. 그 시간의 힘을 믿는 것뿐이구나.


  다행히 아이는 많이 안 아파서 타이레놀을 거의 먹지 않았다. 이 타이레놀은 현재 내가 먹고 있다. 처음에는 목이 약간 따끔한 정도였는데, 어젯밤 심하게 기침이 나더니 목이 너무 아팠다. 가글을 하고, 한약을 먹었지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이의 봉지 안에 남아있는 다량의 타이레놀이 생각이 났다. 그중 한 봉지를 꺼내 먹고 나니, 집의 약통에서 꺼내 먹는 것보다 왠지 더 약을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덕에 잠을 좀 잤다


  사실은 『훌훌』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내 이야기만 잔뜩 했다.  『훌훌』의 주인공 유리는 할아버지와 산다. 엄마가 자신을 입양했는데,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자신은 재혼을 했다. 할아버지와 대면 대면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온 유리는 얼른 대학을 가서 이 집을 탈출하고 싶다. 그런데 얼마 뒤 엄마는 죽고 그 동생이 할아버지 집으로 온다. 그런데 이 동생에게는 온몸에 학대의 증거인 상처가 있다.  어느 날 경찰이 찾아와 아이를 찾는다. 그리고....

 ...


  여기까지만 썼는데(심지어 여긴 앞부분), 구구절절이다. 그러나 『훌훌』의 매력은 이 모든 사건들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쫀득쫀득하게 잘 읽히는 글은 잘 직조되어 있고, 그 흐름 속에서 유리만이 모든 비극을 안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도 않는다. 글의 전개 과정에서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무엇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다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있다. 그렇지만 아픔의 경중을 따지는 시합을 벌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고 특히 청소년기에는 나만이 아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세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골고루 아프다. 다만 각자의 길이 다를 뿐이다. 모든 이의 아픔에 공감하거나, 내 아픔을 축소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 아픔은 지나갈 것이라고 믿는 것(다른 이들도 그랬으니까). 다른 이도 나만큼 혹은 나보다 더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리고 나는 타인의 아픔을 쉽게 판단할 수 없다는 걸 아는 것.' 이런 태도가 지금의 나의 아픔을 잘 견디는 최선의 태도가 아닐까. 물론, 타이레놀도 먹고.


  이 책은 중1 딸에게 읽히고 싶어서 빌렸는데, 내가 먼저 읽었다.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이 글은 블로그에도 있어요

https://blog.naver.com/fullmoonmind/222695906426

매거진의 이전글 이 터무니없는 은총이 감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