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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작 Sep 29. 2022

나는 효자가 아니라 시민이다

ㅣ 조기현 『아빠의 아빠가 됐다』


  어쩌면 그 청년들도 자기에게 벌어진 일에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p179) 

  아버지와 나는 부모와 자식이 아니라 시민과 시민으로 관계 맺으려 한다. 내가 아버지를 돌보는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가 사회적이고 신체적인 약자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내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가족 관계 증명서'가 있듯이, 아버지와 나의 돌봄 기간을 증명하는 '시민 관계 증명서'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 관계 증명서'는 아버지가 알코올 의존증과 인지 장애증 환자이기 이전에 한 사회의 성원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내 돌봄이 비가시적인 소모가 아니라 사회적 의미를 갖는 행위라고 인정한다. 아버지와 내 관계가 부모와 자식일 뿐 아니라 유동적이고 다양하게 연결되는 사회적 관계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가족이라고 말해지기 전에 우리는 하나의 '사회'라고 선언한다. 
  나는 효자가 아니라 시민이다. (p170) 

- 조기현 『아빠의 아빠가 됐다』 (이매진, 2022) 



<오늘의 '명명'> 


  2호를 임신하고 있을 때였다. 편집 회의를 하러 여의도에 있는 한 외주 프로덕션으로 가고 있었다. 배가 많이 부르진 않았지만 수원에서 여의도까지 오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몸도 힘들고, 해야 할 일이 많아 마음도 급했다. 얼른 회의를 하고 1호 어린이집 마치는 시간 전에 다시 집에 가야 했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당시 어머님은 병원에 계셨다. 무릎 연골 수술을 하셨는데, 우리는 모르고 있다가, 수술 당일 아버님 전화로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생각해, 우리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연락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던 모양이었다. 대구에 계신 어머님께, 송금 외에는 당장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회복 중이셨다. 그렇게 수술 후 며칠이 지났다. 

  여의도역에 내려 계단을 올라가는 데 어머님에게 문자가 왔다. 초복이니 아버님께 전화 한 통을 드리라고 했다. 아버님은 초복을 명절에 준하게 챙기셨다. 왜 인지는 몰랐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아버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혼자 계셔서 힘드셔서 어떡해요. 오늘 초복인데, 삼계탕이라도 드셔야 하는데...."라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전화기 너머로 날선 문장들이 쏟아졌다.  순화해서 요지를 말하면, '지금 못 먹는다고 놀리냐. 왜 전화를 했냐. 혼자 있는데 어쩌라고. 이런 전화를 왜 했냐. 내가 뭘 먹든 말든, 너나 잘 먹어라.'라는 이야기였다. 

  갑작스럽고 어이없는 공격에 다리 힘이 스르르 풀렸다. 화도 났지만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 옛날 경상도 분이긴했지만, 이런 식의 가시 돋친 말을 내게 쏟아낸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왜 이런 욕을 먹어야 하는지 전혀 납득할 수 없었다(나는 즉각 아버님의 아들(그러니까 나의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그가 나서 상황을 정리했다). 


  프로덕션에 가서 피디와 나는 프로그램 회의는 안 하고 아버님의 전화와 관련해  토론을 했다. 피디는 10살 많은 기혼남이었다. 피디가 말했다. 그냥 (잘못한 게 없어도) 잘못했다고 납작 엎드려서 사과하거나, 아니면 그냥 연을 끊으라고. '시월드'는 토론하거나 설득하거나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이제 생각하니, 아버님은 당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평생 누군가 챙겨주는 밥을 먹고, 해주는 빨래로 옷을 입었던 양반이 홀로 계셨던 것이다. 그뿐인가. 병원에 있던 어머님도 챙겨야 했을 것이다. 불편하고 귀찮고 힘든 상태였다. 본인의 무의식(혹은 의식?)에서 그럴 때 며느리가 와서 밥도 하고, 빨래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을 것이다. 당장 올 수 없는 상황과 거리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짜증은 날 수 있다. (물론 나 역시 이렇게 머리로 이해는 해도, 화는 풀리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그날 이후, '아버님이 기대하는 며느리는 없다'는 걸 알려드리기 위해 더 전략적(?)으로 못/안 하는 며느리가 되었다) 


  아주 오랫동안 "노인에 대한 돌봄은 가족 간 권력 위계에서 가장 취약한 며느리 몫"(p18) 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 노동자들이 맡고 있다. 20살 청년으로, 어느 날 갑자기 '아빠의 보호자'가 된 조기현 작가는 흔치 않은 경우다. 그래서 돌봄 낯설게 보기가 더 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는 9년간의 '돌봄'을 기록하며,  사회적 명명을 시작한다.


  조기현 작가의 경우는 아주 극단적 돌봄의 경우다. 현장에서 일하다 다친 뒤, 알코올성 치매와 당뇨를 앓는 아빠.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이십 대의 젊은 청년이 이런 상태를 어떻게 버텼나 싶다. 장하다 토닥여주고 싶어진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시간적으로 벼랑 끝에서 내몰리며, 삶을 저당잡힌다. 그러나 조기현 작가는 이 과정에 매몰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며 버틴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나간다. 그것은 개인이 생각을 달리하면 성공한다는 식의 자기 계발서식(그러니까 가족의 사랑과 의무나 개인의 성찰을 강조하는 식)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분석하고 이해하고, 그 속에서 관계를 재정립하는 사회학적 방법이다. 

   <청년 케어러>(저자가 지은 돌봄 경험을 나눌 청년 모임의 이름)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호명되지 못한 이름이다. 그는 어느 날, 느닷없이 자신에게 닥친 일에 이름과 의미를 찾고자 한다. '효자'라서 아빠를 돌보는 것이 아니다. 시민으로서 '현재의 약자'인 아빠를 돌본다. 아빠 역시, 시민이다. 그는 이혼하고도 아들에게 한 번도 집안일을 시키지 않는 사람이고, 한평생 노동을 놓지 않고 잘 살아보고자 노력했던 시민이다. 당위성에 억눌린 아버지와 효자는 납작하지만, 그 지위와 역사를 인정받고 동반자로 살아가는 시민은 입체적이다. 그래서 조기현 작가는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아빠가 치매 판정을 받아야 하는데도, 검사에서 '기어이 문제를 다 맞히는 아빠가 밉고, 다 맞히려는 아빠가 안쓰럽고, 다 맞히는 아빠가 기특'(p133) 하다. 


  가족이라서 당연한 건 없다. 그리고 우리는 작든 크든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점점 더 그럴 것이다. 그래서 돌봄은 사회로 나와야한다. 어렵지만, 함께 이해하고, 분석하고, 구조를 만들어가야 하는 문제인것이다. 내 주위에도 많고, 나에게도 늘 걱정스러운 일이다. 내가 돌봄을 해야 하든, 받아야 하든. 


   그런 의미에서 '내게 닥친 알 수 없는 일'에 명명을 시도하고, 이해하고, 사회 안에서 함께 해결해 나가며 '인간의 지위'를 잃지 않고자 하는 조기현 작가의 고군분투는 매우 귀하지 않을 수 없다. 


  

  '아빠를 보호하는 일은 버거운 과제였지만, 아빠를 보호할 때만 인간의 지위를 얻었다'(p79) 



* 같은 글이 블로그에도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fullmoonmind/22288733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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