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작 Aug 02. 2023

10세는 뚜거리탕이 좋다고 했다(3)

- 욕망의 메타포 뚜거리탕(ft. 플라톤의 이데아론)

드디어,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뚜거리탕을 영접하는 그날!  

  

우리의 숙소는 '양양국제공항 호텔'이었다. 이 호텔이 지어졌을 당시를 생각해 본다. 어마어마(?) 한 이름에 걸맞게, 휘날리는 만국기 아래로 기대감이 주렁주렁 달렸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이 일대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가게가 막 북적이는 그런 상상으로 온 도시가 희망의 빛으로 일렁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논밭 위에 참으로 덜렁! 있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숙소에 들어가니 청량하고 맑은 개구리 소리가 우리를 반겼다.


호텔은 논 뷰였다. 시원하고 좋았다. 2호는 '앗 계단식 논이다!'라며, 자기가 조사 발표한 강원도 논이 나와서 반갑다고 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도 '블랙홀'의 연장이었다. 식당 찾아 삼만 리 하고, 겨우 밥을 먹을 때만 해도 이제 우리의 '헤맴'은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숙소를 찾아오는 길도 만만치 않게 야릇했다. 저기 숙소가 보이는데 티맵이 들어가는 입구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길 잃은 나그네가 된 기분이었다. 아닌 것 같아 두 바퀴를 돌다가, 결국 티맵이 안내한 길로 갔다. 가로등 하나 없는 좁은 산길이었다. 앞에 숙소가 보이긴 하는데, 과연 이 길이 연결된 건지는 미지수였다. 그래도 일단 들어가 보자며 차를 몰았다. 근데 갑자기 '쿵' 소리가 났다. 어두워서 옆에 있는 턱을 못 보고, 차 아래를 긁은 것이다(참고로 이 차는 남편이 일 년을 기다려 -빚을 많이 지고 - 얼마 전에 뽑은 새 차...).


이미 차 밑은 긁혔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길은 다행히 호텔 뒤쪽과 연결이 됐다. 호텔 손님이 많을 때는 여기까지 주차를 했겠지만, 관리 상태를 보니 지금은 손님이 없음이 분명했다. 밤이어서 더 그렇겠지만 범죄 영화에 나오는 음산한 분위기였다. 앞으로 가니,  넓은 (그리고 텅 빈) 주차장이 나왔다. 충격인 것은 바로 앞에 우리가 두 바퀴를 돌았던 도로와 연결된 입구가 당당히 있었다. 놀랍지도 않았다. 뭐  이쯤 되니, 이건 뚜거리탕의 저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선택 기준은 뚜거리탕 식당과의 거리였다. 10분 거리였고, 2인 조식도 나왔다. 가격도 쌌다. 그렇다. 쌌다. 다 이유가 있다. 사실 우리는 숙소를 막 따지는 타입은 아니다. 하루 자고 나오는데, 뭘. 그냥 잘 머물다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낡은 숙소의 상태가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침구류는 깨끗했고, 온수 매트도 다 있었다. 나는 목욕탕 못 간 한으로 욕조에 몸까지 담갔다. 됐다. 이 정도면 만족한다.


다음날 맛있는 '뚜거리탕'을 위해 조식을 포기할까 하다가, 내려가서 커피와 빵만 먹기로 했다. 2호는 아주 간단하게 계란과 밥만 딱, 1번만 먹기로 했다(2호는 빵을 안 먹는다. 밥만 먹는다. 그리고 원래 조식은 여러 번 먹는다). 2호와 내가 내려가보니, 다른 선택의 여지는 원래 없었다. 조식 메뉴가 몹시 간단했다. 파리 세 마리가 접시 위에 앉아 우리를 환대했다. 2호가 어쩌냐고 묻길래, 어쩌긴 아래 접시를 꺼내면 되지 하고 말했다. 조식 추가를 안 한건 얼마나 다행인가(남편은 방에 남아 어제 먹다 남은 통닭 처리를 맡았다).


11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드디어.... 뚜거리탕을 향해 갔다.


티맵 기준, 6대가 그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졌으나, 우리는 불과 10분 거리에 있었다. 식당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직 자리가 남아 있었다. 계산대 옆 옆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뚜거리탕 3개를 시켰다. 은어튀김도 먹고 싶었지만 철이 아니라 안 됐다.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앉아있는데 커플이 들어와 우리 옆에 앉았다. 그들은 '어휴 2시간을 어떻게 기다리니... 그냥 여기서 먹자.'라고 했다. 부산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어디 유명 맛집에 갔다가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 근처의 이곳으로 온 것 같았다. 그러더니 아저씨에게 '뚜거리탕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저씨가 '아니, 그것도 모르고 여길 왔나.'라는 세상 장사 잘 되는 사장님 얼굴로 대충 '민물고기다..'라는 식으로 설명했다. 그러자 그 부산 커플은 '아~~'하더니, '정식 2개요'했다. 사장님은 안 먹으면 너만 손해지하는 얼굴로 쏘~ 쿨하게 '네' 하며 갔다. 옆에서 안 듣는 척 참 열심히도 듣던 나는 속으로 나만 먹고 싶기도 한데, 이 유명한 것을 여기까지 와서 안 먹고 가는 경상도 커플이 안타깝기도 해서 마음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저 아주(?) 유명한 건데, 드셔보시죠."라고 특유의 오지랖을 펴 말아, 하는 내적 갈등이 막 일어났다.   


그런데 다행히(?) 자리에 앉은 여자가 '뚜거리탕 먹어 보고 싶은데...' '뚜거리탕 먹어볼까.' '뚜거리탕 맛은 어떨까.'를 계속 반복했다. 그러자 남자는 뚜거리탕 1인, 정식 1인을 주문했고, 사장님이 그렇게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자 뚜거리탕 2인을 주문했다.     


뚜거리탕님!!!




그 사이 우리의 뚜거리탕이 나왔다. 2호는 기대를 안고, 뚜거리탕을 한 숟갈 떴다. 그리고 "오~ 맛있는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저 반응은? '그냥 그렇다'라는  뜻이었다.


2호는 일단 맛있으면 동공이 확장되고, '오!!"라고 다른 설명이 붙지 않는다. 그냥 "오!!" "오!!!!!" "오!!!!!!!!!"다. 그리고 입안 가득 막 밀어 넣으면서, "정말 맛있어. 정말 맛있어."를 외친다. 그 리액션을 우연히 본 음식점 사장님들이 감동(?) 해, 음료 서비스를 주신 경우도 많다. 좋아하는 국밥을 먹고 나면 마지막에 물을 안 먹는다. 왜? 이 맛을 오랫동안 입안에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먹는 것에 정말 진심이다.

부푼 기대를 안고!! 



뚜거리탕은 객관적으로 맛있긴 했다. 약간 심심한데 깊은 맛이 났다. 마치 평양냉면 같다고나 할까. 먹을수록 그 매력이 조금씩 더 느껴졌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집 바로 앞, 차로 8분 거리에 있는 추어탕 생각이 났다. 두 탕의 형식(민물고기를 갈아서 얼큰하게)이 비슷한데, 우리 집 앞 추어탕이 진짜 맛있다. 뚜거리탕을 먹으며, '아, 그 추어탕 맛있는데. 도리도리뱅뱅 도 맛있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근데 나만 아니라, 먹고 나오는 길에 남편도 '우리 집 앞 추어탕' 이야기를 했다.  


옆 테이블 커플은 한동안 말이 없이 후루룩 먹더니, 먼저 일어나 계산을 했다. 그러면서 사장님께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다. 정말 맛있다."라며 찬사를 보내고 또 보냈다. 그러면서 둘이 "이게 부산에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이야기를 한참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아, 이게 바로 '욕망'의 속성이구나 싶었다. '뚜거리탕'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랫동안 갈망하며  욕망한 '그 모습 그대로의 뚜거리탕'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플라톤이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동굴 속에 있다. 벽에 투사된 뚜거리탕의 그림자만 보고 각자의 상상을 했다. 그러나 정작 뚜거리탕의 '이데아'가 나타나자, 내가 상상한 게 아니라고 그 실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아, 동굴에 갇힌 죄수의 한계였다!


플라톤의 이데아론/ 우리는 뚜거리탕의 그림자만 보고 있는 동굴의 죄수다.




2호는 뚜거리탕은 맛있지만, 그렇게까지는 아니라면서 숟가락을 놓기 전에 '코리아 짬뽕'을 먹고 싶다고 했다. 코리아 짬뽕은 우리 집에서 약 20분 거리에 있는 짬뽕 맛집이다. 낙지 한 마리와 각종 해물, 갈비가 들어가 있다. 그렇다. 파랑새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다 쓰고 나니 이런 근본적인 질문이 (이제야) 든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뚜거리탕 3부작으로...) 쓸 일이었나?




매거진의 이전글 10세는 뚜거리탕이 좋다고 했다(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