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와 2호가 줄넘기를 다닌다. 중학생인 1호는 그냥 건성으로 다니는데, 2호는 약간(?) 진심으로 다닌다. 완전 진심은 아니다(함께 다니는 친구 H가 완전 진심이다. 2호는 덩달아 진심? 다소 진심?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일주일에 4번이나 다니고 있고, 언젠가 쓴 것처럼 세계 선수권 대회에도 나갔다. 일주일에 4번 줄넘기를 다니다 보니, 그냥 줄넘기 옷만 입고 다닌다. 튀어나온 배 주위로 음식과 각종 오물 자국으로 얼룩덜룩하다. 너무 자주 빨아 자세히 보면 너덜너덜하다. 마을에서는 그렇다 쳐도, 서울 공연 보러 갔다가 근처를 좀 보고 오려고 숙소를 잡았을 때도 갈아입을 옷으로 줄넘기 옷을 챙길 줄은 몰랐다(각자 짐은 각자 싼다). 다음날 통통한 주황 공이 서대문 형무소를 활보했다. 어디에서나 눈에 잘 띄어 좋긴 했다.
서대문 형무소와 주황색 줄넘기 티셔츠. 지금 보니 태극마크가 찰떡 아닌가!
다소 진심인 줄넘기 학원에 가기 위해서는 마을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을 가야 한다. 방학 동안은 잘 다녔는데, 개학하고 나니, 시간이 너무 빠듯해졌다. 그래서 정말 진심인 친구 H의 엄마와 번갈아 가며 가능하면 학원에 데려다주고 있다. 지난주 화요일에는 2호 혼자 가게 되었다. 데려다주고만 오려다, 근처 카페에서 일을 하며 기다렸다. 정신없이 집중해서 글을 쓰다 보니.... (라고 쓰고 싶지만, 일하려고 앉았다가 아메리카노 좀 먹다가, 카톡 좀 하다 보니 어느새!) 끝날 시간이었다.
학원에서 나온 2호는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배가 고프다고 했다. 아이를 태워 얼른 차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내 차 전방 우측 15도에 '육수당'이 보였다. 2호는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뒤통수가 뜨거워졌다. 아니나 다를까 2호는 갑자기 '아, 국밥이 너무 먹고 싶다!'를 외쳤다. 시선은 정확히 전방 우측 15도를 향한 채.
무엇에 가장 진심이냐고 우열을 가린다면, 2호에게는 국밥이야말로 정말 진심이다. 4학년 때부터 공동육아를 한 4,50대 아빠들의 리더(?)로 국밥 모임도 이끌고(?) 있다. 국밥을 먹기 위해 뭉친 아빠방이 있고, 2호가 '우리 국밥이나 먹을까?' 하면 토요일 아침에 모인다. 보통 아침 7시에 출발하는데, 지지난 주에는 6시에 출발했다. 국밥을 먹기 위해 새벽 5시 50분에 알람을 맞추며 2호는 외쳤다.
"아, 국밥 먹을 생각에 너무 설레서 잠이 안 와"
나는 걸었던 시동을 껐다. 진심은 힘이 세다. 국밥 앞의 2호는 흔들림이 없다. 2호는 먹고 가는 게 맛있다며 먹고 싶어 했지만, 집에 다른 식구도 있으니 포장을 하자고 했다. 순대 국밥과 수육국밥 사이에서 고민하던 아이는, 수육을 주문했다. 그리고 아빠용으로는 '순대 국밥'을 시켰다. 본인은 본인 것도 먹고, 아빠 것도 먹겠다는 의지가 보였다(실제로 아빠의 순대 2/3를 2호가 먹었다).
국밥은 10분도 안 돼서 나왔고, 우리는 다시 차로 와서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웬걸!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잘 걸리던 시동이 '탁. 탁. 탁' 소리만 날뿐이었다. 이건, 지난겨울 대구 갔다 오느라, 일주일 정도 시동을 걸지 않아 방전됐을 때 나던 그 증상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어 보험을 불렀고, 얼마 뒤 차가 왔다. 보닛을 열어 이것저것 살피더니, 배터리를 갈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보며, '근처만 다니시죠?'라고 했다. 옆에 있던 2호가 갑자기 신이 나서 "네! 우리 엄마는 가까운데 만 가요. 운전 안 해요. 십 년 했는데..... 블라블라..." 각종 TMI를 쏟아냈다. 듣던 기사님은 혀를 끌끌 차더니, 배터리의 구조부터 자세히 설명하며, 이런 거 하지 말라는 설명을 시작했다.
"시동을 걸고 30분 이내로 운전하는 것은 방전을 시키는 것과 같다. 그러니 일주일에 한 번은 1시간 이상 달려줘라. 주차할 때도 라이트를 자동으로 해두지 말고 꺼라. 그것도 방전을 시키는 것이다. 운전 전에는 3분~5분 정도는 (이게 힘들며 적어도 1분)은 시동을 걸었다가 출발해라." 구구절절 옳은 말씀인데, 내가 지키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또, '사용자 불량'이었다.
기사님은 지금 억지로 시동은 걸었지만, 다시 걸리진 않을 것이니 지금 바로 정비소로 가거나 아님 자기가 갈아주겠다고 했다. 살짝 비쌌지만, 정비소가 어딘지 어떻게 갈지 자신이 없어 그냥 해달라고 했다. 워낙 자세히 설명해 줘서 어쩐지 신뢰도 갔다. 새 배터리로 고쳐달고 집으로 오는 길, 돈을 써서(?) 그런지, 소리도 덜 나고 훨씬 부드럽게 잘 나가는 것 같았다.
내가 2호에게 더 잘 나가는 것 같다고 말하자, 2호는 배터리가 너무 비싸다며 내게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엄마, 그러니까 내가 학교 가면 다시 자지 말고, 일주일에 한 번은 엄마만의 코스를 만들어서 한 시간 이상 달려!"
앗. 자기가 학교 가면 내가 (잘 수 있으면) 자는 걸 어떻게 알았지? 안 봐도 뻔하다 이건가. 역시 진심은 속일 수 없는 법이구나 싶었다. 나는 운전은 진심으로 싫어(못) 하고, 자는 건 진심으로 좋아한다. 그래도 운전은 할 수 없어서 한다. 그러다 보니 단거리만 한다. 그 운전이 나의 배터리 수명을 짧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어쩌겠는가. 그게 나의 진심인 것을. 사고만 안 날 정도로, 너무 무리하지 말고 해야지 뭐.
조수석에 실린 국밥이 흔들린다. 그렇게 각자의 진심이 새로운 시동에 걸려 덜컹이며 함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