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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작 Aug 27. 2020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김영하, <여행의 이유>ㅣ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 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오늘의 '환대의 기억'>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기억이 거의 없다. 영감이란 게 있다면 언제나 나의 모국어로, 주로 집에 누워 있을 때 왔다." (p79)

  나의 모국어로 된 '여행의 이유'를 집에 누워서 읽었다. 영감이란 게 오진 않았으나, 공감이란 게 왔다. 나에게도 여행은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것'(65)이었으며,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행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51)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공감한 부분은 '여행과 환대'다.  

  인도 여행의 마지막 장소는 고아였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 해변에서 2주간 그냥 머물렀다. 처음에는 좋았는데 하루 이틀 지나자 심심하고 외로웠다. 하는 일 없이 해변에 매일 나가서 바다만 주야장천 보고 있으니 웬 늙은 유럽 아저씨가 자꾸 자기 방에 놀러 오라고 했다. 그 아저씨랑 마주치기 싫어서  시장을 갔다. 시장에서 반지와 숄을 사다가  파는 아저씨와 친해졌다. 한구석에는 나무 피리가 있었다. 한참 앉아서 불었으나 잘 안됐다. 재능 딸리는 내가 불쌍했는지 아줌마가 친절하게 잘 가르쳐 줬다. 그러나 여전히 잘 안됐다. 그날 저녁은 게스트하우스 아줌마를 따라 교회도 갔다. 나는 인도 전통의상을 입고, 머리를 땋고, 손에는 헤나를 하고 있는 외국인이었다. 이상한 나를 친절하게 받아 주었다. 인도 시골 교회의 예배는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2달간의 나의 인도 여행은 아름답게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3일 후에는 나는 뭄바이로 갈 예정이었다. 뭄바이는 화려한 도시다. 나는 그곳에서 거지 같던 나의 인도 여행의 마지막을 나름 아름답게(?) 보낼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밤.

  내 트렁크 안에 있던 100달러가 사라졌다. 인도 물가로도 큰돈이고, 나에게도 큰돈이었다. 복대를 늘 하고 다녔었는데,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고 작은 시골마을이었고, 너무 더웠다. 무엇보다 친절한 사람들에게 취해 마음을 놓았다. 루피와 달러가 더 있었는데, 딱 100달러만 사라졌다. 그 걸 안 순간, 수만 가지 가능성이 내 머릿속에 펼쳐졌다. '전날 환전을 했는데, 거기서 혹시 더 낸 걸까? 시장에서 반지를 살 때 내가 루피 대신 달러를 낸 건가. 오다가다 흘렸나?'  다음날 나는 그 전날의 행적을 되짚었다.  당연히 아무도 나의 100달러의 행방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은 당황해 벌게진 나를 보며, 그들만의 '환대'를 보여줬다. 환전소 총각은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아이스크림은 끈적하고 맛은 별로였는데, 먹는데 자꾸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장신구 아저씨는 내게 팔찌를 선물해줬다. 터키석과 진주가 박힌 아름다운 것이었다. 한국에 와서도 하고 다녔는데, 줄이 끊어져 버렸다. 혹시 잃어버릴까 봐 잘 넣어뒀다. 피리 아줌마는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였다.

  나는 그날 저녁 고아 해변에 앉아지는 해를 바라봤다. 가장 합리적인 의심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그 집에서 거의 일주일을 묵었다. 저녁도 같이 하고, 교회도 따라갔다. 그 집 아이와 손을 잡고 산책도 다녔다. 그때 생각했다. 만약 그들이라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내게 100달러는 없어도 그만인 돈이지만, 그들에게는 몇 달을 벌어도 벌기 힘든 돈이다. 철저한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으나, 나는 그때 그들이 보여준 '환대'의 의미를 잃을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더욱더 내가 그냥 실수로 잃어버렸을 거란 생각이 든다.

  3일 후 나는 뭄바이에서 가장 싼 숙소에 묵었다. 여행 내내 싼 곳만 찾아다녔기 때문에 특별할 것도 없었다. 의외로 인도 여행의 마지막으로 더 좋았다. 여전히 인도 전통의상을 입고, 머리를 땋고, 이마에 점도 찍고 시내를 다녔다.  그리고 가장 비싼 호텔 로비에 가서 그냥 앉아있다 왔다. 앞에 서 있는 거인 경비원과 사진도 찍었다. 나는 그렇게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인간을 불신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선설을 믿는다거나 인간을 신뢰한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정말 대책도 없이 그냥 떠난 많은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오는 경험이 쌓이면서, 보편 인간의 '선'과 '신뢰'를 조금씩 믿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 든다) 물론, 사기치고 나쁜 짓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보편적인 사람들이 아무 대가도 없이 베풀어준 무한히 많은 환대들에 비하면 그 비율은 턱없이 낮다. 아마도 평생 다시 만날 일이 없을 나에게 그들은 기꺼이 시간과 정성과 자원을 나눠준 것이다.


  이 환대는 단순히 여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살아가는 순간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환대'를 해주고, 받는 존재가 된다.  김현경이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장소/환대'가 함께 맞물려, 우리는 서로에게 '사람'으로 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다. 그런 관점에서 노키즈존에 대해 은유 작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누군가의 시공간을 침해하면서 어른이 됐다. (...) 인간 사회는 민폐 사슬이다. 인간은 나약하기에 사회성을 갖는다. 살면서 기대지 않을 수도 기댐을 안 받을 수도 없다. 아기를 안고 공부에 나선 엄마처럼 폐 끼치는 상황을 두려워 말아야 하고, 공동체는 아이들을 군말 없이 품어야 한다. 배제를 당하면서 자란 '키즈'들이 타자를 배제하는 어른이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건강한 의존성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관계에 눈뜨고 삶을 배우는 어른이 될 수 있다." (은유, <다가오는 말들>)


   내 입장에서 환대지만, 누군가에는 '민폐'로 보일 수도 있다. 우리 모두 삶이라는 여행을 하는, 나약한 여행자에 불가하다. 그런 내가 지금, 여기 무사히 살아갈 수 있는 건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다. 삶이라는 여행을 지속하는 한, 잊지 말아야 할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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