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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작 Aug 25. 2020

사물은 더 깊이 알면 알수록 그만큼 더 아름다워진다.

실뱅 테송, <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ㅣ

나는 끝까지 버틸 힘이 있을지 모른 채로 여기에 왔지만, 이제 떠나면서는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침묵 가운데 사는 것이 영원한 젊음의 생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갇혀 사는 방법을 행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사실을 두어 가지 알게 되었다. 아무 표시도 되지 않은 순수한 시간은 보물과도 같다. 반면, 단위 시간의 행렬은 킬로미터들을 주파하는 것보다 더 우리를 정신없게 만든다. 우리의 눈은 아름다운 광경에 결코 질리는 법이 없다. 사물은 더 깊이 알면 알수록 그만큼 더 아름다워진다.  

(...) 

나는 자유로웠으니, 타자가 없으면 더 이상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산들의 시를 관조했고, 호수가 장밋빛으로 물들고 있을 때 차를 마셨다. 나는 미래의 욕망을 죽였다. 나는 숲의 숨결을 호흡했고, 달의 운행을 좇았다. 나는 눈 속에서 고생을 했고, 산봉우리에 올라서 그 고생을 잊었다. 나는 나무들의 노년에 경탄했고, 박새들을 길들였으며, 아름다움에 대한 경의가 없는 모든 것은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다. (...) 나는 창문 앞에 앉아 있는 법을 배웠다. 나는 내 왕국에 녹아들었고, 이끼 냄새를 맡았고 야생 마늘을 먹었으며 곰들과 조우했다. 수염은 길게 자랐고, 시간이 그것을 감아주었다. 나는 도시의 지하묘지를 떠나 타이가의 성당에서 여섯 달을 살았다. 하나의 완전한 삶으로서 여섯 달을 살았다. 

저기, 이 세상의 어느 숲에, 삶의 행복과 아주 멀지 않은 무엇인가가 가능한 오두막 한 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 실뱅 테송, <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  

<오늘의 멍> 


아이들이 포켓몬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가족 캐릭터를 닮은 인형을 가지고 왔다. 나는 '고라파덕'이다. 왜냐고 물으니, 멍을 잘 때려서란다. (참고로 아빠는 잠만보, 아들은 팬텀 , 딸은 삐삐 - 다 닮았다!) 그렇다. 인정. 나는 멍하게 잘 있다. 밥 먹다가도 걷다가도 일하다가도 갑자기 다른 세계로 가곤 한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멍을 때려보고자, 베란다 창문 앞에 앉았다.  그러다가 실뱅 테송이 생각나 이 글을 쓴다. 서늘한 바람이 노트북과 나 사이에 머문다. 멀리  산이 보이고, 나무들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자신만의 리듬으로 이 저녁을 즐긴다. 조용히 귀 기울이면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나뭇잎과 바람이 몸을 비비는 소리가 전해진다. 시냇물 소리 같기도 하고, 작은 돌이 구르는 소리 같기도 하다. 가만히 멍하게 있다가 파도처럼 왔다가는 바람과 나무의 춤을 보는 게 즐겁다. 신기하다. 아름답다.    


베란다에서 바라본 풍경 : 멍하게 있으면 나무들이 춤추는 소리가 들린다

  실뱅 테송은 시베리아의 숲에서 6개월간 살았다. 그는 하루 종일 창문 앞에 앉아 햇볕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관찰하고, 계절이 서서히 가는 걸 지켜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매일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그가 작은 변화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감응하며 신을 만난다.  


 " 지평선 위로 적운이 한 줄로 쌓여 있다. 그 구름을 노을이 보기 좋게 굽는다. 사 원소가 그들의 악보를 연주한다. 물은 달에서 떨어지는 은 부스러기를 받아들이고, 공기는 물보라로 축축하며, 바위는 낮 동안 축적된 열기로 진동한다. 왜 사람들은 신이 이런 해거름의 풍경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믿는 것일까? 개들은 소나무 아래에 몸을 둥글게 말고 앉아 있다. 불은 올라가고 밤은 내려온다. 그렇게 서로 만난다." (p290) 


  나도 오늘 여기 베란다에 앉아 서서히 변해가는 시간을 본다. (아직 신은 못 만났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진다. 이제는 자리를 옮겨야 할 때다.    



이글은 블로그에도 있어요; 

https://blog.naver.com/fullmoonmind/222035442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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