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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작 Nov 20. 2020

왜냐하면 너는 영원히 모를 테니까.

강화길, <음복> ㅣ 


 "딸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왜냐하면 너는 영원히 모를 테니까. 뭔가를 모르는 너. 누군가를 미워해 본 적도 없고, 미움받는다는 것도 알아챈 적도 없는 사람. 잘못을 바로 시인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너는 코스모스를 꺾은 이유가 사실 당신 때문이라는 걸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누가 나를 이해해 주냐는 외침을 언젠가 돌려주고 말겠다는 비릿한 증오를 품은 사람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지.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이 아니야. 그래.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한다. 때문에 나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네가 진짜 악역이라는 것을. 

  그런데 말이야. 

  과연 그걸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 강화길, <음복>『화이트 호스』

<오늘의 '음복'>


  한 일주일 전에 <음복>을 읽었다. 정확히는 강화길의 단편 모음집 <화이트호스>를 읽었다. 모든 글이 소름 끼칠 만큼 탁월했다. 아무 일 없이 이렇게 공포스러울 수 있다는 걸 느끼기도 했고, 진짜 폭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단연은 <음복>이다. 읽고 나서 일상의 사이사이에 <음복>을 생각했다.  아니 생각났다. 그래서 다시 읽었다. 글은 여러 겹이었다. 내가 자라오면서, 혹은 살아가면서 느꼈던 평온하지만 뭔가 어긋났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그 짧은 글 속에 다 담겨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십여 년 전, 나는 결혼을 했고 우리 집에서 언니들과 동생 그리고 부모님까지 다 오셨다. 대구에서 올라온 엄마와 아빠는 일찍 들어가 주무시고, 우리는 거실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그때 어쩌다 보니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딸 셋은 남동생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아이는 정말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같은 곳에 있었지만, 그 아이는 보지 못하는 눈빛, 서사, 억울함이 있었다. 이야기의 말미에 동생은 덧붙였다. '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날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특별히 누구를 책망하거나 몰아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만, 참 신기하다 정도였다. 우리는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다른 상황에서 컸구나.라는 어렴풋하고 신기한 (그리고 조금은 아픈 ) 느낌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밤. 

  대구로 내려간 엄마가 늦게 전화를 했다. 그러고는 대뜸 나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남동생에게 스트레스 주지 마." 

  방에 들어가서 자다가 깬 엄마는 드문드문 대화를 들었고, 남동생의 말미에 한 말('나도 스트레스받아')을 딸들이 아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고 이해했던 거였다. 엄마의 목소리는 날카로웠고, 나는 그 목소리에 마음을 베였다.  

  엄마는 왜 남동생에게 "스트레스받지 마."라고 전화하지 않고, 내게 "남동생에게 스트레스 주지 마"라고 전화했을까.  <음복>은 정확히 나의 그 기억을 소환했고, 답을 알려준다.  <음복>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과 그를 둘러싼 여자들이 나온다. 엄마, 고모, 와이프(나), 할머니. 그리고 나의 어머니. 그들의 말과 행동의 이면에 있는 감정이나 미움이나 증오를 몰라도 되는 세상에 사는 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의 의도나 성품과는 상관없이) 악역이라는 걸. 그러나 그는 물론 그 누구도 절대 알 수 없으리라는 걸. 이 소설은 보여준다.  

강화길 작가 <화이트호스>: 편혜영작가의 말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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