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공동체에서
"1박스 문 앞(으)로 배송했습니다."
문자가 왔다. 반갑다. 동시에 의아하다. 주문한 기억이 없다. 하긴, 너무 많이 시키다 보면 내가 뭘 주문했는지조차 잊기도 하니까. 연휴의 두 번째 날 아침, 뒹굴뒹굴하던 몸을 침대에서 일으킨다.
현관문을 여니, 익숙한 쿠팡 봉투가 보인다. 받는 사람 주소는 맞는데, 이름이 홍**이다. 성만 보고 순간, '엄마가 자기 집으로 시킨다는 걸 나에게 잘못 시켰나' 생각한다. 일단 주소도 전화번호도 맞으니까. 봉투를 든다. 가볍다. 쭈욱 뜯어본다. 하얗고 큰 마시멜로다. 응? 이게 뭐지? 순간 엄마는 절대 아니라는 판단이 선다.
엄마는 채식주의자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자연식을 지향한다. 고기만 먹어도, 너무 먹이지 말라고 한다. 이런 식의 가공식품은 거의 혐오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니 애초에 마시멜로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모를 것 같다. 설사 안다고 해도 마시멜로를 '사람이 먹어도 되는 것'의 범주에도 넣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일단 엄마 이름으로 왔으니까 전화를 한다.
"엄마, 우리 집으로 뭐 보냈나?"
"뭐? 보낸 거 없는데?"
"과자 같은 건데... 00(동생 이름) 인가?... 엄마는 어디 가는데?"
"어... 지금 갓바위 가고 있다."
엄마와는 대화는 택배와는 상관없이 흘러간다. 엄마의 요지는 '애들한테 이상한 거 사서 먹이지 말고, 집에서 좋은 거 잘해서 잘 먹여라'다. 역시, 이 택배가 엄마일 리 없다.
다음은 동생이다. 택배 사진을 찍어, 톡을 보낸다. 이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코스트코 광신자로, 이런 가공식품을 좋아한다. 언젠가 새 차를 산 걸 축하한다며, 12개 들이 껌 한 박스와 다분히 색소 범벅으로 보이는 알록달록 햄버거모양 젤리가 100여 개쯤 담긴 상자를 보낸 바 있다. 출처는 역시, 코스트코였다. 그 기억을 떠올리니, 확신이 든다. 애들도 '삼촌 재질'이라고 끄덕끄덕 한다.
그러나 잠시 후... 톡으로 답장이 온다.
어? 아니다.
갑자기 의혹과 의아함이 몰려온다. 나의 표정을 보던 둘째가 불을 지핀다.
"이상한 업체에서 보낸 거 아냐? 여기에 막 독을 탄 거지."
신빙성이 없어 보이는 이 음모론을 듣다 웃는다. 그런데 뒤끝이 쓰다. 말도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설마 하는 상상이 붙는다. 3일 전에 끝난, 동 대표 4년간 별의별 일을 다 겪었기 때문이다. 내가 동 대표 회장(임기 8개월 정도를 남기고 어쩌다 대행이 되었다가, 정식 회장이 되어 임기를 마무리했다)이 된 다음에는 더 자주 벌어졌다. 어느 날은 이상한 업체에서 은밀한 커넥션을 암시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어이가 없던 나는 단호하게 거부하며, 내 번호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능글거린 목소리로 "다 아는 수가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뉘앙스에 담긴 섬뜩함을 기억한다. 그건 자본의 온도였다. 집요한 자본이라면, 한낱 동 대표 회장에게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비논리적인 줄 알면서도, 불쾌하고 찝찝한 그날의 기억이 따라붙는다. 셜록 홈스처럼 안 보이는 증거라도 잡은 기분이다.
그 순간 쿠팡 봉지를 다시 자세히 본다. 그제야 보인다. 진짜 웃음이 나온다. 받는 사람이 엄마 이름이 아니다. '홍*님'이었다. 그렇다. 이제 나의 해석은 다른 쪽으로 튼다. 그럼, 이걸 보낸 건 분명 나의 별칭이 '홍시'임을 아는, 친밀한 이들 중 하나다.
나는 공동육아를 했다. 공동육아는 양육자가 별칭을 정해야 한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서로를 그 별칭으로 부른다.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서로에게 평어를 쓴다. 나이와 상관없이 동등하게 대화하고, 자기의 생각을 말하기 위한 장치다. 실제로 이는 매우 효과적이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언어의 힘이란 이렇게 큰 것이다.
처음 별칭을 정할 때 매우 고심했다. 대구에 내려갈 때마다 보이는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라는 표어(?) 생각도 났다(대구 사람이면 다 알 것이라 믿는다. 대로변에 아주 크게 간판이 붙어 있다. 읽다 보면 궁예놀이를 저절로 하게 된다). 무엇보다 내 이름을 내가 정하는 건 처음이니까 잘 짓고 싶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는 것' 자체가 지향하는 바가 있으니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본업 관련 일을 할 때는 '은 작가'로, 학부모 모임에서는 '00 맘'으로, 운동을 할 때는 '00 회원님', 강의를 하러 가면 '은 선생님'이다. 나는 때와 장소에 따라, 불리는 대로 부응하고 행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불리고 싶은 이름'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여러 날의 고심 끝에 정한 이름은 '홍시'였다. '구름빵'도 있고, 먹는 '홍시'(는 사실 좋아하지 않는다)도 있지만, 진짜 이 이름의 뜻은 엄마의 성(홍 씨)을 잇고자 하는 마음이다. 내 이름 앞에 아빠 성만 붙어 있는 게 별로라고 느꼈다. 다행히 희귀성이라 성 자체는 불만이 없지만, 내가 가진 많은 좋은 점이 엄마의 등을 보고 배웠다는 걸 살아갈수록 느끼고 있었으니까.
공동육아를 졸업한 지 벌써 8년이지만, 여전히 '홍시'로 많이 불린다. 현재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 도서관도 서로의 이름 혹은 별칭을 부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홍시, 혹은 이름으로 부른다. 또한 내가 마음을 주거나, 편한 공동체에서도 수시로 나를 '홍시'라고 소개한다. 특히 글쓰기 모임에서는 더 그렇다. 내가 선생이라는 위치로 가 있지만, 실상 글쓰기에는 선생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늘 빈 바닥에 시작하는 한낱 (잘 못 쓰는) 중생일 뿐이다. 그러므로 '은 선생님, 은 작가님'보다 그저 '홍시'가 더 마음 편하게 좋다.
나는 내가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불리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좋은 공동체의 특징이 아닐까? 내가 다른 '무엇'이 아닌, 그저 '나'로 편하게 존재하고 뻗어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니까.
우리는 이곳에서 같은 일을 도모하긴 하지만, 그것들의 제1 순위는 '재미'다. 그런데 이 재미라는 건 참으로 주관적이다. 그러니 '우리'가 되기 이전에 오롯이 서 있는 '나'가 있어야 한다. 마을 도서관도 그렇다. 단적인 예로 각자가 배우거나 함께 하고 싶은 것(바이올린, 재봉, 낭독, 기타, 우쿨렐레, 인문학 등)이 수시로 열린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팀도 있고, 지금은 하지 않는 팀도 있다. 그러나, 이도 저도 괜찮다. 어떤 관계 속 존재로서가 아닌, '나'로 해보고 싶은걸, 해보고 싶은 사람이랑 해볼 수 있는 곳이 가까이에 있으니까. 그 '나'를 통해 '우리'를 이어가고, 만들어가는 것. 그렇게 즐거운 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곡우를 맞아 도서관에서도 소소한 행사를 했다. (지난번 [곡우 1] 글에 쓴 것처럼) 아이들과 씨앗 심기도 했지만, 어른들끼리 모여 꽃 차를 마시고 산책도 했다. 곡우 행사에 '꽃 차 마시기'를 넣은 건, 누가 지나가다가 '도서관에서 꽃 차를 마시면 좋겠어'라는 말을 무심코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과 어른들이 하고 싶은 것이 다르다. 그런 마음들은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도 하고, 도서관 어딘가에 숨어 있기도 하다가 어느 날 툭 하고 꽃을 피운다. 지금 당장 표시가 나진 않지만, 작은 빗방울처럼 스며 있다 땅을 비옥 하게 만든다. 곡우의 단비가 그 해의 풍년을 만들듯, 각자의 작고 소소한 욕망들이 무심히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 공간이 마을 도서관이다.
받는 이가 '홍시'임이 밝혀지자, 마시멜로 택배의 주인공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번 연휴 동안 뭘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중간고사의 쓴맛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첫째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힐링캠프를 하며 보내겠다'라고 답했던 톡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언제나 다정한 마음을 주고받는 나의 다른 공동체였다.
비로소 마음 편하게 마시멜로 봉지를 뜯으며 먹는다. 말랑하다. 달다. 마시고 있던 커피와 잘 어울린다. 달달한 것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보니 내가 수시로 받아 오던 일상의 다정함들이 떠올랐다. 내가 부탁한 것인데도 굳이 문 앞까지 와서 커피를 걸어둔 마음, 바빠서 도서관 일을 미루다가 겨우 했더니 고생했다며, 원망 대신 나의 바쁨을 위로하며 쿠폰을 보내 준 마음, 한참을 돌아 일부러 가져다주고 가는 마음, 목탁을 두드리며 징징거리는 나에게 잘할 거라고 툭 어깨를 두드리던 손길.... 그 마음들이 이미 내 안에 택배처럼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나는 그 마음들을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고 있었다. 아, 배 부르다. 든든하다.
김연수 작가의 단편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건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에게는 오직 이 순간만이 현재다. 따라서 과거도 미래도 우리에게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우리의 사고는 과거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그러나 실상 '미래를 기억한다'면 전혀 다른 생각을, 사고를 할 수 있다. 액자식 구성인 이 소설에는 '신의 대리자'역할을 하는 사람도 나오는데 그는 말한다. '신은 그냥 붙인 이름일 뿐,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물질적인 몸이 없는 집단적 의식으로, 미래에서 왔습니다. (...) 신이 아니라 미래의 통합된 마음이라고 부르는 게 더 낫'습니다.라고.
현재는 늘 닥친다. 나는 이름 모를 이가 보낸 택배에서 '범죄'도 읽을 수 있고, '다정함'도 읽을 수 있다. 그 해석에 따라, 나의 일상의 색과 무게는 너무나 달라진다. 나는 무리하지 않으며, 즐겁게 타인을 믿으며 살아가고 싶다. 작은 것에 의심하고 화내기보다, 누군가의 선의를 믿어가며 살고 싶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고 싶은 '이토록 평범한 미래'다. 그 미래의 기억에는 나와 같이 평범한 일상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보내는 이들이 함께 있다. 그러므로 나의 미래에는 지금과 같이 꽃 차가, 산책이, 다정한 마음들이 가득할 것이다.
나는 이 미래를 기억하고 있다.
(...) 이제는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1999년에 내게는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미래를 기억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과 일어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이토록 평범한 미래』(문학동네,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