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시간은 '원테이크' 다
형식이 때로 내용을 이끈다.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이 그렇다. 나는 이 드라마를 자꾸 ‘다큐’라고 잘못 말하곤 했다. 그만큼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그 비결은 원테이크 촬영이다. <소년의 시간>은 단 네 회로 끝난다. 매 회가 한 신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단 한 번의 컷도 없이 한 시간이 연속해서 흐른다. 그래서 설명하거나 회상하지 않는다. 다만 던진다. 물 흐르듯 흘러간다. 상황이 주어지면 사람들은 생각하고, 고민하고, 함께 느낀다. 그 결과 <소년의 시간>은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 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왜 그랬을까? 정말 ‘이 소년’만의 문제일까? 나는, 내 아이는 괜찮을까. 궁극적으로 ‘우리가 뭘 더 해야 했을까?’라고.
“뭘 더 해야 했을까?”
“내 생각엔 우리가 뭔가를 해야 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아.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 중에서
*
백로 무렵이었다. 새벽 공기가 달라졌다. 문을 열면 공기 속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한낮엔 여전히 햇살이 뜨거웠지만, 그 속엔 분명히 가을이 와 있었다. 축제를 준비하던 우리도 그랬다. 뜨거운 마음과 서늘한 걱정이 한데 섞여 있었다.
올해는 여러 공동체가 함께 꾸린, 첫 마을 축제가 열렸다. 초등학교 학부모회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주축이었다. 공식적으로 마을 도서관이 주최는 아니었지만 멤버 대부분이 두 공동체의 일원이어서 자연스레 한 무대 위에 올랐다. 누군가는 뽑기 부스를, 누군가는 전통 놀이를 맡았다. 도서관은 마을 기록 부스를 꾸몄다.
준비는 가볍게 시작했다. ‘함께놀장’이라는 이름처럼, 정말로 함께 놀아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여러 공동체가 함께 움직이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조율이 필요했다. 참여 인원은 예상보다 많았고, 곳곳의 협조는 저조했다. 각 공동체마다 사정이 달랐다. 일정 조율은 물론 축제 당일 챙길 일도 산더미였다. 부스를 어디에 둘지, 행사 진행 시간을 어떻게 맞출지, 동선을 어떻게 짤지, 의견이 엇갈릴 때마다 공기가 조금씩 무거워졌다. 아직은 낯선 서로의 ‘다름’을 맞추는 일은 늘 쉽지 않았다.
게다가 축제 며칠 전부터 가을비가 내렸다. 백로의 이슬이 아니라, 본격적인 비였다. 비는 멈출 줄 몰랐고, 축제 당일에도 비 예보가 있었다. 결국 우리는 축제를 일주일 연기했다. 처음엔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직 준비가 미흡했고, 일주일의 여유가 생겼으니까.
그러나 어영부영 일주일이 또 흘렀다. 각 단체의 사정으로 일정은 조금씩 엇나갔다. 그동안 눌러 두었던 속내가 하나둘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또 비가 내렸다. ‘도대체 무슨 영화를 보자고,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만큼 마음이 조금씩 처졌다.
하지만 그 일주일이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각자의 속도를 맞추고, 미처 듣지 못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조금씩 대화의 방향이 달라졌다. “누가 잘못했어”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로. 백로의 비가 공기를 맑히듯, 우리의 관계도 조금 더 투명해졌다.
한 주 더 미룬 축제 당일 아침까지도 비가 내렸다. 결국 학교 운동장 대신 마을 도서관에서 소규모로 치르기로 했다. 그러나 행사 시작 직전, 하늘이 거짓말처럼 개었다. 비가 그친 하늘 사이로 투명한 햇살이 내려왔다. 그 빛이 운동장 사이로, 부스 사이로 흘러들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마을 도서관 부스에는 오래된 마을 사진이 걸렸다. 벌써 10년째 우리는 도서관 옆 시멘트 혼화제 연구소와의 갈등을 기록해오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낯선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현실이었다. 사람들은 한참을 머물러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서명을 남겼다. 마을 도서관은 단지 웃고 즐기는 공간이 아니라,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는 곳이니까.
당연하게도, 모든 순간이 완벽하진 않았다. 비가 올까 말까 해서 부스를 옮기고, 천막이 바람에 휘날렸고, 전달이 잘못되어 준비한 순서가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모두가 서로의 장면을 이어받으며 흘러갔다. 그날의 축제는 정말 원테이크였다. 누군가 삐끗해도, 그게 그대로 명장면이 되었다. 편집이 필요 없는 하루, 그래서 더 진심이 남는 하루였다.
축제가 끝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이들은 여전히 손에 손을 잡고 뛰어다녔다. 사람들은 정리하면서도 사진을 찍고, 남은 음식을 나눴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이게 우리 마을이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어긋났다가, 다시 맞춰지는 과정. 백로의 하늘처럼 투명하고, 이슬처럼 잠깐 머물다 스며드는 시간. 축제의 끝에 남은 건 완벽한 결과가 아니라, 함께 만든 하루의 기억이었다.
현실은 언제나 원테이크다. 도서관의 일상도 그렇다. 완벽하다기보다, 닥치는 대로 그 자리에서 생각하고 대응한다. 때로는 얼굴을 붉히고, 속상해하고, 동시에 고마워하고, 감동으로 글썽인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맞춰가며 원테이크로 한 편의 드라마를 쓴다. 화려한 조명도, 편집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그날의 마음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도서관 문을 열며 스스로에게 중얼거린다.
“오늘도 원테이크야.” 모든 장면이 다 실시간이고, 그 모든 장면이 명장면이다.
백로의 햇살은 여전히 부드럽고, 사람들은 또다시 함께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그 시간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렇게 나의 '관장의 시간'이 원테이크로 흐르고 있다.
추신
* `
<소년의 시간>의 저 물음에 대한 정답은 아니지만, 이 책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왔다>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작고 가볍고 얇다. 그러나 정말 실용적이다.
나는 교실에서 다른 아이들의 혐오/차별적 시선과 발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1 딸아이와 함께 이 책과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었다. 알면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