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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Jan 19. 2021

문화 예술바라기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오늘 밤 문득 드릴 말 있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내 사랑을

       

  이장희 콘서트에서 그가 부른 첫 번째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이다. 

  평택시 안중지역은 아직 문화예술을 즐기기와는 거리가 멀다. 서울 딸네 집에 있을 때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쎄시봉’ 공연을 관람한 일이 있었다. 그때마다 딸이 좋은 좌석을 마련해주어 아내와 편안하게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또 오페라 <나비부인>도 아내와 같이 감상하고 오붓한 시간을 가졌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사는 곳인 평택 안중에서는 연극이며, 뮤지컬 또는 영화를 접할 기회가 드물다.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공연이 있어 그때마다 시간이 맞으면 달려간다. 

  몇 년 전에는 평택에서 하는 연극 <사랑해요 당신>을 보러 간 일이 있었다. 이순재가 출연한 치매 노인에 대한 연극이었다. 아내와 연극을 보면서 부부가 노후를 걱정하며 한마음이 되기도 했다. 이 연극은 인기가 대단했다. 좋은 좌석의 표가 없어 맨 꼭대기 구석에 있는 좌석을 받았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인터넷에 익숙지 않아 이장희 콘서트를 예매할 때는 딸에게 부탁했다. 그랬더니 당일에는 예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행히 현장에서 표를 구할 수 있다고 해서 문예회관으로 달려갔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그런 탓으로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쉽게 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좌석은 무대에서 가까운 곳이어서 안성맞춤이었다.

  이장희는 쎄시봉에서 활약한 가수다. 나도 20대에는 음악다방 등으로 놀러 가곤 했다. 쎄시봉의 가수 조영남은 나이로는 나보다 한 살 위이다. 그는 고등학생 때, 동대문에 있는 동산교회엘 다녔다. 내 친구가 그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와 그의 가족 소식을 많이 알게 되었다. 언젠가 그를 한 번 만나기도 했다.    


  공연이 시작되고, 찬조출연으로 김세환이 등장했다. 여자 관객들은 가수 김세환에게 더 많은 박수를 보냈다. 그가 <토요일 밤에>를 부르자 모두 손뼉을 치며 따라 불렀다. 특별한 것은 김세환이 나훈아의 <영영>을 부른 것이다. 요즘 트로트가 대세라고 불러보고 싶었다고 한다. 나훈아 창법을 모창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웃는다. 정작 김세환의 창법으로 <영영>을 어떻게 부르나 궁금했다. 그만의 독특한 창법으로 소화를 하는 데 색다른 느낌이다. 청중들의 박수가 우레같이 쏟아졌다.     

  

  중학교 1학년 중퇴로 주물공장 노동자였던 김동식의 《회색 인간》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구러 2018년에 ‘평택시의 한 책’으로 선정되었을 때 강연회에서 저자를 만났다. 이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지상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든,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든, 소설을 쓰던 사람이든, 이곳에서 예술은 필요가 없었다.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으로 추락했을 때, 인간들에게 있어 예술은 하등 쓸모없는 것이다.”

                                              -《회색인간》, 김동식, 요다, 2018   

 

  예술과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는 의미심장한 문장이다. 

  인간이 예술을 사랑해야 이유를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만든 칼 융은 “예술이란 인간의 존엄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라고 했다. 니체도 예술 활동을 높이 평가하며 “삶은 오직 예술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했다.    


  예술이 없는 곳에는 인간의 존엄성도 사라질지 모른다. 서평택 지역에 더 많은 문화예술을 접하는 공간과 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그런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삶을 풍요롭게 해야겠다.  


  콘서트 관람으로 떠나가는 가을밤을 뜻깊게 보냈다. 창밖은 낙엽이 떨어진다. 이장희와 김세환을 오래도록 기억해야겠다. 잊히지 않고 싶다. 문화예술회관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관객 중 누군가 <영영>을 부르는 멜로디가 들리는 듯하다.  

  

   “영원히 영원히 네가 사는 날까지 

   아니 내가 죽어도 영영 못 잊을 거야 

   아니 내가 죽어도 영영 못 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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