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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Feb 08. 2022

잃어버린 검정 고무신 한 짝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부모님에게 귀한 아들로만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그랬습니다. 1학년 때는 공부 잘 하는 반장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부러움을 샀었습니다. 1학년 겨울방학 때 교통사고로 병원에 장기간 입원을 하였습니다. 이후에 학교에 들어갔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학업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그땐 PTSD인 줄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그렇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모래가 쌓여 있는 곳에서 친구들과 놀았습니다. 당시에는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습니다. 놀이에 열정적이다 보니 신발 한 짝이 안 보입니다. 날은 어두워졌습니다. 한쪽 고무신만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 엄청 야단을 치셨습니다.  

    

 “신발을 못 찾으면 들어오지 마!”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밤, 모래더미에서 밤늦게까지 울면서 신발을 찾았습니다. 어머니의 말이 어린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는 ’어려운 일이 있어도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억울하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혼자서 속으로 힘든 일을 참고 지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계모에게 자랐습니다. 계모에게 힘든 성장 과정을 겪으셨답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계모 할머니에게 눈칫밥을 먹고 자랐답니다. 부모님의 성장 과정에는 공통으로 어머니의 애정결핍이 있습니다.      

 애정결핍은 대물림되나 봅니다. 모래밭에서 신발을 잃어버린 후에 울면서 밤늦게까지 검정 고무신을 찾았던 게 잊히지 않습니다. 깜깜한 밤에 혼자서 검정 고무신을 찾을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나는 왜 이런 기억이 자꾸만 올라오는 걸까요? 예전에 정신과 상담을 할 때도 의사 선생님에게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나의 과거를 늘어놓는 건 처음입니다.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과거입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지난날을 들추고 싶었습니다.    

  

 《사랑해요, 엄마》란 책이 있습니다. 시인 김용택 등 사회적으로 알려진 인사 22명이 엄마를 추억하면서 쓴 글이 실렸습니다. 이 책에 기생충학자로 알려진 서민 교수가 말하는 엄마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의 엄마는 서민 어린이에게 이런 말을 잘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해결하마.”     

 

  ‘서민’ 어린이가 동네에서 매 맞고 집에 돌아와도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해결하마.”라면서 때린 아이의 학교 선생님을 찾아가기도 했답니다. 방학숙제를 못해 걱정하는 서민어린이에게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해결하마." 라며 숙제를 같이 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매 맞고 야단을 맞아도 엄마의 따뜻한 눈길을 느꼈답니다. 엄마가 자신을 품어주었기에 큰 힘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만약에 검정 고무신을 잃어버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해결하마.”라고 우리 엄마가 말했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부끄러운 과거 이야기를 언젠가는 하지 않을 수 없고, 죽을 때까지, 가슴에 묻고 갈 수는 없는 거겠죠.  

    

 ‘잃어버린 검정 고무신’은 내 일생에서 지우고 싶은 ‘까만 점‘입니다.      

 이렇게 어두운 과거를 털어놓는 것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욕심 같아서는 작은 소설이라도 만들고 싶습니다.


“한 뼘 자전소설 쓰기는 아픈 이들을 구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아픈 이들에게 우리의 상처를 보여줌으로써 동질성의 아픔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는 있다.”《나를 안다고 하지 마세요》 (한국미니픽션작가회, 나무와 숲, 2015) 7쪽   

   

 아픈 옛이야기를 쓰고 말하므로 나도 치유를 받고, 누군가의 상처도 보듬어줄 수 있으면 합니다. 나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겨진 까만점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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