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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Nov 22. 2016

쾌락과 이상

<죄와 벌> 독후감


톨스토이가 기독교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부활을 썼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창녀인 소냐의 헌신적 사랑으로 기독교 정신을 부활시켰다.


줄거리 요약

라스콜리니코프는 학비가 없어 법대를 중퇴한 청년이다. 가난으로 학비는 물론, 방세도 못내는 가난한 형편이다. 그는 이기적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뽑아 재산을 축적하는 전당포 노파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증오한다.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의 돈을 착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의 논문에서, 인간은 평범한 인간과 비범한 인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택된 강자는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사회의 도덕률을 파괴하는 권리를 갖는다고 했다. 나폴레옹과 같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다. 사회의 기존 질서를 파괴해야 새로운 질서가 오고 그 질서로 새로운 사회가 열린다는 것이다. 나폴레옹도 사람을 많이 죽였지만 오히려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비범한 사람은 사회규범에 억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만 끼치는 탐욕스럽고 무가치한 노파가 있어. 자기가 왜 사는지도 모르고, 또 얼마 안 있으면 어차피 죽을 목숨이야, 다른 한편에는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젊은이가 있지. 그런 사람은 곳곳에 널렸어, 수도원에 기부하기로 한 돈만 있다면 다시 살아날 수천 가지의 좋은 사업과 계획이 있다고! 과연 이 고약한 노파의 삶이 그에 비해 가치가 있을까? 단 한 번의 범죄를 수천 가지의 선행으로 용서받을 수는 없을까?’ 

 돈만 아는 노파를 살해하고 자기를 비롯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노파의 살인으로 수천가지 선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파를 살해하고 집안에서 금품을 찾고자 장롱을 뒤지다가 뜻하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전당포에서 물건을 훔치려고 이곳저곳을 뒤졌다. 그때 인기척에 났다. 노파의 여동생리자베타 이바노브나가 나타난 것이다. 당황한 라스콜리니코프는 도끼로 리자베타의 머리를 내리친다. 예기치 않고, 원하지 않은 살인을 하고 나오려 한다. 

문을 열고 나오려는 순간, 전당포 손님인 코흐가 문을 두드린다. 놀라고 당황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안에서 문을 걸고 잠근다. 밖에선 사람을 찾는 소리가 문을 두드리고, 라스콜리니코프의 몸에선 심장 소리가 몸을 두드리고 있다. 마룻바닥엔 뜨거운 핏물이 흐르고, 라스콜리니코프의 몸엔 식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그는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답답했다. 적막이 흘렀다. 그러다 코흐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문을 열고 도망쳐 나온다. 

집으로 돌아온 라스콜리니코프는 몸에 열병이 난다. 정신적으로는 혼돈에 빠진다. 나스타샤가 찾아왔을 때도 누워 있었다. 음식도 먹지 못했다. 자신의 범행이 들킬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나스타샤 앞에서 애써 침착하려 해도 몸이 흔들리고 손이 떨린다. 

경찰서에서 출석요구서가 왔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고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경찰서로 간다. 제대로 먹지 못하여 몸은 허약하고, 정신적으로 긴장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여기서 쓰러진다. 위기를 느낀 그는 훔친 물건을 바위 밑에다 숨겨놓는다.   

퇴직한 9등급 문관 출신, 마르멜라도프는 늘 술에 취해 사는 사람이다. 딸 소냐가 노란딱지를 받고 거리의 여자가 되어 벌어오는 돈으로 술을 마시는 술주정뱅이다. 소냐는 아버지와 계모를 부양한다. 거리의 남자인 아버지가 마차에 치어 죽는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마르멜라도프의 장례식에 사용하라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 25루블을 카트리나 이바노브나에게 준다. 세 명의 배다른 동생을 포함한 가족을 위해 거리의 여자로 나선 소냐는 정말 고운 심성을 가진 여자다.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라스콜리니코프도 소냐에게 관심을 갖는다.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관심은 신분을 넘어 인간의 본연의 모습과 상태를 이루게 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사람들에게 소냐를 변호해주고, 자신도 스스로 자신감을 찾는다. 

"소냐 당신은 나를 버리지 않을 거죠? 그렇죠?"

그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으려고 애썼다.

"버리지 않아요. 당신을 따라가겠어요. 그곳이 어디든 ----. 감옥이라도 함께 가겠어요."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에게 범죄를 고백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한다.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이론을 이해하고 두냐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 오빠에겐 그만의 이론 같은 게 있어요. 목적이 좋다면 개인의 악행은 용납된다는 겁니다. 재능 있고 자부심도 강한 청년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거죠. 삼천 루블만 있으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데 그걸 구할 수 없다면 얼마나 분하겠습니까? 오빠는 또 다른 이론도 갖고 있어요. 인간은 두 종류가 있다는 겁니다. 평범한 인간과 비범한 인간----. 이를테면 법에 구애받는 높은 신분의 인간과 받지 않는 인간으로 나눌 수 있겠죠. 당신 오빠는 자신을 법을 넘어서는 천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범죄를 저지른 후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괴로워 한 것 같군요." 

대학생 라스콜로니코프를 길거리의 창녀인 소냐가 구원한 것이다.

느낀 점 

라스콜리니코프는 계획적으로 살인을 했지만 계획적이지 못했다. 노파를 죽이는 데까지만 생각을 했지, 돈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흠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대비를 못했다. 그 결과 원하지 않는 살인으로 리자베터를 죽이게 된다. 또 갑자기 나타난 코흐의 방문으로 당황하게 된다. 범행 후, 전당포를 나와서도 허겁지겁 도망을 쳤다.법대생의 범행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초기에 사건은 급박하게 돌아가지만 법대 중퇴를 한 대학생의 범행으로 보기엔 허술하다. 


도스토옙스키는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이 작품을 썼다. 톨스토이의 <부활>은 반기독교적인 작품으로 평가되어 두 작품은 기독교적으로는 상반되는 구조다.

도스토에프스키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 대학졸업 후 취직을 하면서 글을 썼고, 톨스토이는 귀족으로 돈에 구애됨이 없이 글을 쓸 수 있었다. 신분상으로도 차이가 나고 기독교적인 시각으로도 차이가 난다. 


  라스콜로니코프는 ‘자존감이 박탈당할 경우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아울러 소설의 플롯은 ‘실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옮겨간다. 과연,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가난한 휴학생이다. 그는 사악한 부자인 전당포 노파를 죽여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정의로운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유에 대한 잘못된 욕망에서 비롯한 것이다. 자신이 양심의 가책 없이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초인’임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유를 추구하고자 했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절망과 자기혐오에 시달리다 결국 자백을 결심한다.

 사람은 본능적 자유가 아니라 도덕적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 프로이드는 인간은 쾌락을 추구함으로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레셀은 인간은 자아실현을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두 가지 모두를 부인할 수 없다.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인간 스스로가 진정한 주인이 되는 도덕적 상태를 가질 수 있는, 자신의 의지와 자아를 극복하는 데 있다” - 도스토에프스키
 

노파를 죽이고 자신을 둘러싼 무거움을 벗어버리고 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었다. 그러나 하늘을 날지 못하고 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자유는 허공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허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던 배움과 일을 통해 얻고 도덕을 통해 완성할  수 있다.  


물질로는 자유로워질 수 없다. 물질의 자유는 또다시 물질의 노예가 된다. 진정한 자유는 원칙과 법칙을 익혀 나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사람이다.  

법륜스님께서 무소유를 실천하셨다. 미국에서 핸리 데이빗 소로우와 같이 자발적 가난을 실천한 사람들이 있다. 물질이 아니라 마음으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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