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A. 레빈, 권수영 감수, 양희아 옮김, 소울 메리트, 2016)
저자인 피터 A. 레빈Peter A. Levine은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의료 및 생리물리학 박사학위 받고, 인터내셔널대학에서 심리학 박사학위 받음.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분야에서 50여년을 연구, 소매틱 경험요법(somatic experiencing)의 개발자. 2010년 미국신체심리치료협회(USABP)에서 평생공로상. 레이스 데이비스 아동정신의학 센터의 명예 이사장.
대부분의 트라우마 치료사들은 주로 대화와 약물을 통해 마음을 치료한다. 이 두 치료법 모두 트라우마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몸이 가진 핵심적인 기능을 함께 다루지 않는다면, 트라우마는 치유되지 않으며, 우리는 트라우마로 인해 몸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그리고 트라우마의 후유증을 치유하는 데 있어서 몸이 얼마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기초가 없다면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는 우리의 시도는 제한적이고 편협할 수밖에 없다. p,15
전통적인 심리학은 정신에 영향을 주어 트라우마를 치료하고자 한다. 이러한 접근은 기껏해야 트라우마를 절반만 다루는 것이며, 전적으로 치료에 부적절하다. 몸과 마음을 서로 연결된 하나의 단위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트라우마를 온전히 이해하고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p,17
트라우마 증상들은 그것을 촉발한 사건 그 자체로 인해 생기는 것이 아니다. 트라우마 증상은 해소 및 방출되지 못하고 몸에 남아서 얼어붙어 버린 에너지 때문에 생긴다. 이렇게 몸에 잔류한 에너지는 신경계 안에 갇혀서 우리의 몸과 영혼에 큰 혼란과 파괴를 일으킨다. 우리가 위협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부동’ 또는 ‘얼음’ 상태로 들어갔다가 거기서 빠져나오는 과정을 온전히 완결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심신이 쇠약해지고 때로는 특이한 증상을 보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적평형(dynamic equilibrium)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 안에 선천적으로 내재된 충동을 깨우고 격려함으로써 우리는 그 얼음을 녹일 수 있다. p,41
트라우마 치유는 그 증상들을 인식하는 것에 달려 있다. 트라우마 증상들은 대체로 원시적 반등들의 결과이기 때문에 이 증상들을 인식하기가 어렵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트라우마를 정의내리는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그 트라우마를 느끼는 경험적 감각이 필요한 것이다. p,46
트라우마로 인해 외상을 입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증상들은 플래시백(flashback), 불안, 공황발작, 불면증, 우울, 신체화 증상, 개방성 결여, 이유 없는 분노로 인한 폭력적 공격성, 반복적인 파괴적 행동 등이 포함되는데, 이 중에는 놀랄 만큼 무섭고 기이한 증상들도 있다. 한때 건강했던 사람들도 자신의 일생에 비하면 상당히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난 사건들로 인해 '정신이상의 벼랑 끝까지 내몰릴 수 있다. p,69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무찌르기 위한 무기로 감각 또는 감각 느낌을 사용할 수 있다. 감각 느낌은 트라우마를 변화시키는데 필요한 명료성, 본능적인 힘, 그리고 유동성을 모두 포함한다. ‘감각 느낌’이란 용어를 만든 유진 젠들린(Eugene Gendlin)은 그의 책 《포커싱(Focusing)》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감각 느낌은 정신적 경험이 아니라 신체적 경험이다. 신체적 경험이라는 뜻은, 상황이나 사람 또는 사건에 대해 당신의 몸이 느끼고 알아차린 모든 것을 포함해 느껴지는 분위기나 기운을 말한다. 이 내면의 기운은 세부사항에 집착하는 대신, 어떤 대상에 대해 단번에 느낌으로 알아차리고 당신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p,104
감각느낌 연습
감각느낌에 대한 기본적이고 경험적인 이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어디에서 책을 읽든지, 가능한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연습을 시작하라.
당신이 몸을 의지하고 있는 곳의 표면과 몸이 어떻게 접촉하고 있는지 느껴보라.
당신의 피부가 옷에 닿는 느낌을 알아차려 보라.
당신의 피부 속을 느껴보라. 그곳에 어떤 느낌이 있는가?
편안하게 이 감각들을 기억하면서, 당신이 편안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어떤 신체적 감각들이 당신이 편안하다는 느낌을 느끼는 데 도움을 주는가?
이런 감각들을 더 알아차릴수록 점점 더 편안해지는가? 아니면 불편해지는가? 혹은 시간이 지나면서 느낌이 바뀌는가?
잠시 그대로 앉아서 그 편안한 느낌을 지각하는 것을 즐겨라.
이 연습을 통해 의식적으로 당신의 몸과 몸의 감각들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떤 경험이든 그것을 더 강렬하게 만든다. p,106
트라우마 치유의 어려움 중 하나는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킨 사건이나 사고의 내용에 지나치게 집중한다는 것이다.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선천적으로 치유의 힘을 가진 동물이라고 여기기보다 트라우마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위협적인 삶의 상황에서 다시 일어서는 동물들의 능력은 우리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치유의 능력들을 되찾아가도록 우리를 안내하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트라우마의 부정적인 영향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본능적인 전략들을 찾아내기 위해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이 동물적인 자원에 주목해야만 한다. p,144
일반적으로 어떤 증상들은 다른 증상들보다 빨리 나타난다. … 우리는 외상 반응의 핵을 형성하는 우선적인 증상들인 과각성(過覺醒, Hyper vigilance) · 수축 해리 무력감을 살펴보았다. 이 증상들과 동시에 나타나거나 약간 뒤에 나타나는 또 다른 초기 증상들은 다음과 같다.
- 과경계(過警戒, hyper vigilance)
- 아무 때나 떠올라 괴롭히는 이미지 또는 플래시백
- 활동 항진 상태
- 과장된 감정 및 놀람 반응
- 악몽과 야경증(수면장애로, 주로 소아에서 발생하며 갑자기 잠에서 깨어 비명을 지르며 공황 상태를 보임)
- 갑작스러운 기분 변화(격렬한 분노 및 짜증과 수치심 사이를 오고 가는 등의 변화)
- 스트레스 대처능력 감소(쉽게 자주 스트레스를 받음)
- 수면장애
위의 증상들 중 몇몇은 다음 단계인 발전 단계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마지막 단계에 나타날 수도 있다. 이 목록들은 진단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 증상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인식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두 번째 단계는 증상들이 발전하는 단계로 다음의 증상들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마지막 단계의 증상들이 발전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 유기체가 목록에 올리기 위해 어떤 증상을 선택할지 또는 언제 그것을 증상화할지 결정하는 데는 정해진 법칙이 없기 때문이다. 이 목록들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마지막에 발전하는 증상들은 다음을 포함한다.
- 지나친 소극성
- 감정적인 반응이 없어졌거나 약화됨.
- 집중하기 어려움
- 만성 피로 또는 신체적 에너지가 매우 낮음. 208
- 면역체계의 이상과 갑상선 기능 이상과 같은 내분비계 이상증세
- 두통, 목과 허리 통증, 천식, 소화 장애, 대장 경련, 극심한 월경전증후군 등의 정신 신체화 질병들
- 우울, 불행이 닥친 것 같은 느낌
- 분리감, 소외감과 외로움(살아도 죽은 것 같은 산송장 같은 느낌)
- 삶에 대한 흥미가 사라짐
- 죽을 것 같거나 미칠 것 같은 공포 또는 수명 단축에 대한 두려움.
- 자주 울기
- 갑작스러운 기분 변화(격렬한 분노 및 짜증과 수치심 사이를 오고 가는 등의 변화)
- 과도한 또는 지나치게 약화된 성적 활동
- 기억상실과 건망증
- 무력감과 무기력한 행동
- 사랑과 양육 불능 또는 타인과 유대관계를 맺기 어려워함
- 수면장애
- 스트레스 대처능력 및 계획 세우기 능력 감소
분명한 사실은 모든 증상들이 트라우마로 인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제시된 증상들 중 하나를 가지고 있거나 여러 개의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트라우마로 인한 외상을 입은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p, 209
만성적인 무력감은 왜 생기는가?
만성적인 무력감(chronic helplessness)은 얼음 반응과 정향 반응, 방어적 반응들이 매우 집착적이고 쇠약해져서 미리 설정된 역기능적 경로들을 따라갈 때 발생한다. 만성적인 무력감은 과경계와 새로운 행동을 배울 능력이 결여된 상태를 합친 것이며, 외상 환자의 현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보편적 특성이다. 그들의 삶과 만성적인 무력감이 뗄 수 없는 관계가 되면 무력감을 느낄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모든 외상 환자들은 어느 정도는 이런 만성적인 무력감을 경험한다. 그로 인해 그들은 특히 새로운 상황에 온전히 참여하기가 어렵다. 무력감을 느끼면서 자신과 무력감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상황에 달려들거나 거기서 도망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자기 이미지와 생각들의 피해자가 된다. 각성을 일으키는 어떤 사건이나 자극에 몸이 생리적으로 반응할 때 외상 환자들은 건강한 사람들처럼 정향 반응이나 방어 반응을 할 수 없다. 그 대신 그들은 각성 상태에서 부동 반응과 무력감으로 곧바로 넘어가고, 정상적인 반응들과 다른 감정들을 그냥 건너 뛰어버린다. 그렇게 그들은 피해자가 되고 반복해서 피해자가 되기를 기다리는 상태가 된다. p,224
트라우마로 인한 외상성 불안
외상성 불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불안하다고 할 때 경험하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매우 높은 수준의 각성과 여러 증상들, 그리고 탈출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동 반응을 두려워하는 상태를 만들 뿐 아니라, 계속해서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고 감지함으로써 극심한 불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 이 불안은 심한 외상을 입은 사람의 삶의 모든 경험 뒤에 있는 배경 같은 역할을 한다. 마치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보다 그것을 보고 있는 우리가 물에 대해 더 잘 인식하는 것처럼, 불안을 느끼는 외상 환자들보다 그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더 분명히 알아차릴 수 있다.
외상성 불안은 초조함, 조바심, 걱정, 신경질적인 예민함으로 나타난다. 외상성 불안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흔히 공황과 두려움을 경험하며, 사소한 일들에도 지나치게 과장된 반응을 보인다. 이는 끊임없이 강력하게 압도하는 문제들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는 영원히 고정된 성격적인 문제들은 아니며 신경계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p,227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 신체화 증상들
트라우마 증상들은 우리의 정신과 감정 상태뿐 아니라 신체적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질병이나 신체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다면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강하게 의심해볼 수 있다. 트라우마는 시각장애 언어장애 청각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다리나 팔 혹은 팔다리 모두가 마비되게 하기도 하며, 만성적인 목과 허리 통증을 유발하고, 만성피로증후군 기관지염·천식·소화기 질병들 월경전증후군·편두통 등 소위 정신 신체화 질병에 해당하는 모든 증상들을 일으킬 수 있다.
트라우마로 인해 생긴 방출되지 못한 각성을 묶어놓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신체 기관이라도 좋은 먹잇감이 된다. 이 갇혀 있는 에너지는 생리적으로 가능한 어떤 것이 이용하려 할 것이다.
트라우마로 인한 부정과 기억상실
많은 외상 환자들은 보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보지도 않은 채 거의 체념 상태로 살아간다. 부정과 기억상실은 이러한 체념 상태를 더 굳어지게 한다.
자신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난 적이 없다고 부정하는 외상 환자들을 판단하거나 비난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러한 부정이나 기억상실 자체가 하나의 증상이라는 점이다. p, 228
트라우마로 인한 부작용은 완전히 의식화되지는 않지만, 완전히 활성화되는 것은 확실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동기를 제공하고 우리의 행동을 조정한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어린 시절 폭력을 당한 남성은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을 때리려는 충동을 가지게 된다. 그의 때리고 싶은 욕구 뒤에 있는 에너지는 다름 아닌 바로 그의 트라우마 증상들 안에 담겨 있는 에너지다. 오로지 그 에너지가 방출될 때까지 엄청난 의지를 가지고 행동해야만 이 무의식적인 충동을 정복할 수 있다.
과거의 트라우마 사건을 다시 경험하고자 하는 충동이 일어나는 현상을 일컬어 '재연 re-enactment'이라고 부른다. 이는 트라우마 증상들이 악화되는 하강곡선 중에서도 제일 마지막 단계를 차지하고 있는 증상이다. 재연은 우리 자신과 사회, 그리고 세계 공동체에 훨씬 더 강제적이고 미스터리하며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p,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