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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장애와 주의력의 교차로에서

노년기 마음의 풍경

by 마음 자서전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음의 결이 변한다. 몸이 느려지고, 관계의 폭이 줄어들며, 삶의 사건들은 이전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다. 이런 변화 속에서 노인들은 흔히 우울감, 기운 저하, 집중력 감소, 잠의 변화, 그리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내적 진동을 경험한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러한 현상들을 두고 “노년기 우울증은 증가하고, 양극성장애는 발병률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지만, 양상이 더 복잡해진다”고 말한다.


노년기 우울증은 신체질환, 관계의 상실, 사회적 고립, 약물 부작용 등 수많은 요인이 얽혀 나타난다. 반면 양극성장애는 새롭게 발병하기보다는, 기존의 양상이 더 자주, 더 깊게 나타나거나 우울기가 길어지는 식으로 변한다. 때로는 감정이 들떠 여러 일을 벌이지만 마무리가 되지 않고 쌓여가는 모습 속에, 경조증의 그림자가 숨어있기도 한다. 그러나 이 행동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이는 우울증, 불안, 성격 특성, 혹은 ADHD와도 겹치는 흔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성인의 ADHD는 종종 오진의 그늘 속에 숨겨진다. 많은 이들이 우울, 불안, 또는 양극성장애로 진단받고 오랜 세월 치료를 이어가지만, 호전이 미미한 경우가 있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ADHD》에서 황희성은 주의력 부족뿐 아니라 감정, 감각, 수면, 운동 조절에 이르기까지 ADHD의 스펙트럼이 광범위함에도 불구하고, 진단 기준은 그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임상 현장에서 우울·불안·양극성장애로만 설명되지 않는 만성적 증상들을 지닌 이들에게서 ADHD의 흔적을 발견하였고, 적절한 약물치료를 통해 오랫동안 호전되지 않던 문제들이 변화하는 경험을 공유한다.


이러한 주장은 현대 ADHD 연구 흐름과 맞물린다. 실제로 성인 ADHD는 단순한 산만함이 아니라 실행기능 문제, 감정조절 곤란, 과도한 사고 흐름, 수면 장애 등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는 연구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중요한 주의점도 있다.

ADHD와 비슷한 모습은 우울증, 양극성장애, 불안장애, PTSD, 노년기 인지저하, 성격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진단을 확장해 적용하려면 엄격한 감별과 전문적 판단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과잉진단의 위험이 커진다.


양극성장애 진단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증, 경조증, 우울증, 혼재성 일화 등 다양한 기분의 파고를 평가해야 하고, 이는 단순한 기분 변화와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양극성장애는 단지 ‘감정의 병’이 아니라 수면, 행동, 충동성, 뇌 생체리듬, 환경 스트레스가 얽혀 있는 복합적 장애다. 치료 역시 약물치료뿐 아니라 사회리듬 치료, 가족 교육, 심리치료, 위기 개입 등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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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진단 기준 외 기법들이 심리적 조정에 도움을 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게슈탈트 치료의 ‘창조적 무관심’은 기분의 파도가 넘실거릴 때 중심을 잡는 데 도움이 되고, ‘빈 의자 기법’은 내면의 갈등과 감정을 통합하는 데 유익하다. 이러한 기법들은 양극성이나 우울증의 직접 치료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삶의 맥락 속에서 감정의 무게를 감당하는 데 보조적 역할을 한다.


돌아보면, 정신건강을 다룬다는 것은 단일한 진단명으로 개인을 재단하는 일이 아니다. 같은 증상이라도 원인은 다르고, 같은 진단이라도 삶의 양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노년기의 마음은 특히 더 복잡하다. 그들 뒤에는 한평생의 기억과 상실, 성취와 고독이 자리하며, 이는 단순한 세 개의 진단 범주로 설명될 수 없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감별과 의존하지 않는 균형 잡힌 진단, 개인의 삶을 전체로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치료의 다층적 접근이다. 결국 정신건강 진단의 목적은 이름을 붙이는 데 있지 않고, 그 사람이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있다.


노년기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섬세하게 들여다봐야 하며,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과 원인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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