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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경계에서

선택적 함구증Selective Mutism에 대하여

by 마음 자서전

사람은 누구나 말할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말은 마음과 세상을 잇는 다리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길을 놓고 다시 허물며 관계를 쌓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말은 갑작스레 높아진 벽이 된다.

입을 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입이 열리지 않는 순간. 그 벽 앞에서 사람은 조용히 멈춰 선다. 그 현상을 우리는 선택적 함구증(選擇的 緘口症)이라고 부른다.

강진령은 《상담심리용어사전》에서 이렇게 정의한다.

“언어발달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져 다른 상황에서는 말을 잘 함에도 불구하고, 말을 해야 하는 특정 사회적 상황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증상(진단기준 A)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정신장애”라고. 즉, 말하기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말하려는 순간 불안과 긴장이 몸을 잠가버리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고집처럼, 혹은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장애의 핵심은 고집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집에서는 말이 잘 나오지만, 학교나 직장 같은 사회적 환경에서 입이 굳어버리는 모습은 단순한 낯가림이 아니라 “말하면 위험하다”는 오래된 기억이 활성화되는 순간이다.


사전은 진단 기준을 덧붙여 설명한다.

“이 장애로 인해 교육적·직업적 성취나 사회적 의사소통이 저해되고(진단기준 B), 적어도 1개월 이상 지속된다(진단기준 C)…”

이 말은 선택적 함구증이 단순한 일시적 위축이 아니라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깊은 그림자임을 의미한다.

특히 “말 못 하는 이유가 ‘언어 지식’ 부족 때문이 아니어야 하고(진단기준 D), 의사소통 장애나 발달장애, 정신증으로 더 잘 설명되지 않아야 한다(진단기준 E)”는 이 장애의 본질이 ‘심리적 억압’ 또는 ‘불안 기반의 침묵’임을 보다 분명히 한다.


이 침묵은 마음 깊이 존재하는 공포가 만든 울림 없는 말이다. 그 공포는 때로 “심리적 상처를 받은 후”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유전적으로 말이 늦어 여러 상황 경험이 부족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든, 결국 선택적 함구증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마음의 갇힘이다.

그 갇힘이 오래 지속되면 사람은 “사교성을 잃게 되거나 사회적 상황에 대해 심한 공포감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관계와 일상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사전은 마지막에 이렇게 강조한다.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침묵을 의도나 의사 표현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선택적 함구증의 침묵은 의도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이 보내는 구조 요청이며, 세상과의 연결을 잠시 멈추어놓은 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일 때가 많다.


말하지 않는 사람은 실은 누구보다 말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왜 말하지 않느냐”라는 추궁이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용과 안전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음이 조금씩 회복될 때, 그들은 다시 말을 시작할 것이다.


침묵에서 벗어나, 오래 머물렀던 마음의 벽 너머로 작은 목소리가 돌아오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선택적 함구증은 그 작은 말이 다시 세상에 닿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시간의 병이다.

그 기다림 안에서 사람은 다시 자기 목소리를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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