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공포증Specific Phobia을 떠올리며
젊은 날의 풍경은 늘 빠르게 흘러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작업장 한가운데서 갑작스레 일어난 사고, 피어오르던 금속 냄새, 허둥지둥 뛰어다니던 발소리, 그리고 구급차 안의 좁고 흔들리는 침상. 우리는 다급했고, 두려웠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침착해야 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의사는 신속하게 처치 계획을 말했고, 간호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주사기를 준비했다. 희고 차가운 형광등 아래, 반투명한 주사기 속 액체가 흔들리고, 간호사가 바늘을 끼우는 순간이었다.
내 옆에 있던 그 동료가 갑자기 무언가에 날카롭게 찔린 듯한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은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 있었고, 공포가 그의 몸 전체를 감싸며 그를 방 한쪽 모서리로 몰아넣었다. 어른의 체면도, 남자의 굳센 체격도 그 순간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움츠리고,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손끝으로 공포를 막아보려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장면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미숙한 청년들이었고, 세상에 대한 지식보다 우쭐한 자존심이 먼저였으며, 남의 두려움 앞에서 웃음을 터뜨릴 만큼 철없었다.
“아니, 주사 하나에 왜 저래?”
“애도 아니고…”
그때는 몰랐다. 그의 비명 뒤에 숨은 거대한 그림자를.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는 특정공포증, 그중에서도 혈액·주사·상처형(BII형)의 공포를 오래도록 품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주삿바늘이 그의 눈앞에 드러나는 순간, 뇌는 이미 ‘도망쳐야 한다’는 신호를 내렸고, 몸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떨고, 수축하고, 벽 쪽으로 밀려났다. 그의 공포는 어른의 이성으로 제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안다. 한 사람의 두려움 뒤에는 그가 감당해 온 세월이 숨어 있으며, 때로는 자신조차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틈이 있다는 것을. 어떤 공포는 어릴 적 한순간의 충격으로 생겨날 수도 있고, 어떤 공포는 기질처럼 태어날 때부터 몸 안에 들어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그날 비웃었던 그 행동은, 그에게는 오래된 상처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도 다스리지 못하는 몸의 기억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가끔 그 치료실의 풍경을 떠올린다.
햇빛 한 점 들지 않던 복도, 반짝이던 바늘의 은빛,
그리고 벽을 등지고 떨고 있던 그 동료의 그림자.
그 장면은 이제 나에게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는 한 가지 기준이 되었다.
사람을 판단할 때,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가볍게 웃고,
너무 빠르게 결론을 내리려 한다.
하지만 어떤 두려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을 오래 품고 있고,
그 어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고요하며 아프다.
지금의 나는 그날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는 주사를 무서워한 것이 아니라,
몸이 기억한, 오래된 공포를 홀로 견디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에는 조심스러운 깨달음이 남는다.
사람의 두려움을 함부로 가벼이 여기지 말 것.
보이지 않는 상처에도 귀 기울일 것.
서툴렀던 젊은 날의 무지를 되풀이하지 말 것.
어쩌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바늘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금속 조각 하나에 불과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뒤흔드는 공포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이제, 그 작은 바늘이 드리운 그림자를
웃음이 아니라 이해로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