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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 앞에서 멈추어선 사람

사회불안장애 Social Anxiety Disorder

by 마음 자서전

사위는 오랜 시간 신학의 길을 걸어왔다. 젊은 시절, 그의 두 손에는 언제나 묵직한 성경책이 들려 있었고, 그의 가슴에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소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전도사 생활을 지나, 대학원 졸업과 함께 목사 안수를 받기까지, 그의 길은 마치 순례자의 발걸음처럼 꾸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길의 끝에는 언제나 한 발짝 나서지 못하는 작은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그는 15년 넘게 협동 목사로 성실히 교회를 지켜왔다. 누구보다 따뜻하게 사람들을 위로하고, 소그룹 토론에서는 빛처럼 마음을 열어 사람을 잇는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설교단 앞에 서는 일만큼은 그에게 유난히도 먼 풍경처럼 보였다. 담임목사가 자리를 비우며 설교를 부탁하면 그는 조용한 미소로 고개를 저었다. 정중함 속에 숨어 있는 망설임은,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두려움’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대중 앞에 서는 일은, 그에게는 마치 좁은 방 안에서 갑자기 천창이 열리며 너무 많은 햇빛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경험과 같았을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은 빛과도 같아서, 그 밝음 속에서 그는 오히려 눈을 감고 싶었으리라.


우리는 흔히 불안을 시끄러운 것으로 오해한다. 숨이 가빠지고, 손이 떨리고, 눈물이 나는 그런 장면을 떠올린다. 그러나 사회불안은 대개 아주 조용하게 찾아온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내면에서는 작은 떨림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혹시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속삭임이 나직하게 가슴을 쓸고 지나간다.

사위의 회피는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거절이지만, 그에게는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싸움이었다. 사람들은 “설교를 왜 안 하느냐”고 가볍게 묻지만, 그 질문 속에는 그의 떨림, 그의 망설임, 그가 감당하기 힘든 무게가 들어 있지 않다.

사회불안장애, 특히 발표 상황에만 초점을 맞춘 불안은 겉으로는 온화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더 자주 숨는다. 그들은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혼자 있고 싶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사랑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다만 ‘모두의 시선 앞에 선 나’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낄 뿐이다.

사위가 소그룹에서는 누구보다 편안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몇 사람의 얼굴이 놓인 작은 원 안에서는 그의 목소리는 진심을 향해 흘러나오고, 그의 말은 사람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닿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 앞에 서는 순간, 그는 마치 낯선 바람 속에 뒤섞인 작은 새처럼 갈 곳을 잃고 망설이게 된다.


그렇다고 그가 소명을 잃은 것은 아니다. 그의 마음속 믿음과 따뜻함, 그리고 사람을 향한 사명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다만 설교단이라는 높은 단 한 곳에만 그를 멈추게 하는 작은 벽이 있을 뿐이다.

이 벽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어쩌면 그의 마음이 너무 예민하고 너무 진지하여서 생긴 섬세한 균열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자신의 약점을 들킬지 두렵고, 말씀을 전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충분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그런 마음.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란, 이해받는 순간 조용히 풀리기 시작하는 법이다. 사위가 언젠가 “나는 설교가 두렵습니다”라고 차분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의 불안은 이미 반쯤은 치유된 것이다.

사람 앞에 서지 못하는 그를 보며 우리는 약함이 아니라 ‘인간의 섬세함’을 본다. 그의 두려움은 신앙의 부족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성실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지금껏 그 자리에서 묵묵히 사역해 온 시간들이 그의 두려움보다 훨씬 깊고 훨씬 크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우리가 먼저 알아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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