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감사일기

같은 영화를 다시 보는 이유

영화를 사랑하는 두 번째 방법

by 마음 자서전

1월 5일, 월요일.


오늘도 도서관에 갔다. 요즘 내가 붙들고 있는 책은 《영화비평》과 《영화평론》이다. 비평과 평론이 어떻게 다른지, 어디까지가 같고 어디서부터 갈라지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나는 이제 영화를 ‘쉽게’만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영화는 부담 없는 취미였다. 보고, 웃고, 울고, 잊었다. 그런데 《영화관람》이라는 책을 읽고 난 뒤부터 마음이 달라졌다.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하나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는 외삼촌의 손을 잡고 영화관에 다녔다. 텔레비전이 귀하던 시절, 영화관은 늘 사람들로 가득했다. 입석도 흔했다. 어린아이에게 영화관은 쉽게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지만, 외삼촌 덕분에 나는 또래보다 자주 스크린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스크린이 켜지는 순간의 설렘은 아직도 몸에 남아 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영화와 천천히, 그러나 오래 이어진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지금도 나는 일주일에 한두 편의 영화를 본다. 상업영화를 피하지는 않지만, 마음은 주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로 향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저예산 독립영화를 더 보고 싶다. 그런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이 많아질 때, 한국 영화도 더 깊고 넓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극장가에 일본 독립예술영화가 유난히 많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쉽다.

영화는 극장에서만 보지 않는다. 유튜브와 OTT도 자주 이용한다. 영화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집에서는 가능하다. 멈추고, 되돌리고, 다시 본다. 그렇게 장면을 붙잡고 있으면, 미처 보지 못했던 감독의 숨결이 드러난다. 의도는 설명이 아니라 배치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마다 새삼 깨닫는다.

오늘 다시 보기 시작한 영화는 <F1 더 뮤비>였다. 작년에 극장에서 보았던 작품이다. 그때는 지나쳤던 장면들을 멈추고, 되감고, 또다시 보았다. 소니와 조슈아의 심리전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노인과 젊은이의 신경전처럼 다가왔고, 한편으로는 흑백의 대리전처럼 느껴졌다. 감독은 영상 속에 여러 겹의 메타포를 숨겨두었고, 그것을 발견해 가는 과정은 작은 보물찾기 같았다.

영화 관련 책들을 읽으며 나는 영화를 ‘깊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실이 고맙고, 그런 나 자신에게도 조용히 칭찬을 해주고 싶다. <F1 더 뮤비>를 통해 나는 메타포가 어떻게 이미지로 구현되는지를 배웠다.

지난주에는 영화동아리에서 본 <플랜 75>의 리뷰를 올렸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글을 읽어주었다. 그 덕분에 한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이들에게도 안부 문자를 보냈고, 뜻밖의 목소리들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영화 한 편이 사람과 사람을 다시 잇는 다리가 되어준 셈이다.

프랑스 누벨 바그(Nouvelle Vague) 출신, 프랑수아 트뤼포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며, 두 번째 방법은 영화평을 쓰는 것이고, 결국 세 번째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아직 영화를 만들기는 걸음마 단계다. 그러나 같은 영화를 다시 보고, 그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지금, 영화 사랑의 두 번째 문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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