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된 무기력을 넘어 주체가 되는 순간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는 2023년에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느낌은 마치 1920~30년대 고전 영화를 다시 만나는 듯하다. 흑백과 4:3의 비좁은 화면비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전통을 소환하며, 관객을 전후 로마의 골목 깊숙이 데려간다. 이러한 고전적 미학은 단순한 스타일의 재현이 아니라, 여성들이 침묵 속에서 살아야 했던 시대의 공기를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다. 감독이자 주연배우인 파올라 코르텔레시는 자신의 연출에서 의도적으로 고전적 문법을 호출함으로써, 과거의 이야기가 곧 오늘의 현실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에서 500만 명을 동원하는 흥행을 일으키며 사회적 담론까지 촉발할 만큼 큰 호평을 받았다.
남편의 폭행 장면을 춤추는 동작처럼 안무화(按舞化)한 연출은 이 영화의 미학적 정점이다. 왜 감독은 가장 잔혹한 폭력을 춤으로 표현했을까.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트라우마 경험의 해리(dissociation)와도 맞닿아 있다. 견디기 어려운 현실은 때때로 마음속에서 비현실적 장면으로 변환된다. 델리아의 몸은 맞고 있지만, 영화는 그 순간을 춤의 리듬으로 치환함으로써 폭력이 얼마나 오래 반복되어 그녀의 일상적 리듬으로 굳어졌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 장면은 비극을 풍자로 전환하는 블랙코미디적 거리두기 효과를 만들어, 관객으로 하여금 폭력을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구조화된 일상의 문법으로 보게 만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감독 코르텔레시의 연출 감각은 배우의 몸짓과 영화적 리듬을 하나로 묶어낸다.
주인공 ‘델리아’를 심리학적으로 읽어보면, 그녀의 여정은 단순한 개인의 탈출기가 아니다. 그것은 억압된 자아가 주체적 자아로 재구성되는 회복의 과정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 남편의 폭력과 가난 속에서 살아온 델리아는 셀리그먼(M. Seligman)이 말한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의 전형적 상태에 놓여 있다. 반복되는 폭력 앞에서 저항이 무의미하다는 경험이 누적되면, 인간은 실제로 탈출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지 못한다. 델리아가 일상을 기계처럼 견디며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는 태도는 바로 이러한 심리적 마비의 결과다.
영화는 그녀를 단순한 피해자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딸 마르첼라의 약혼을 통해 델리아는 자신의 삶이 세대 간 전이(intergenerational transmission) 될 수 있음을 직감한다. 부잣집 예비 사위 ‘줄리오’에게 남편 ‘이바노’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순간, 그녀는 딸이 자신과 동일한 관계 패턴 속으로 진입하려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델리아는 평소 알고 지내던 미군 병사의 도움을 통해 예비 사위 줄리오의 건물을 폭파함으로써 그 결혼을 무산시킨다. 이 장면은 단순한 사건 전개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이는 자신의 삶을 옭아매 온 폭력의 구조가 딸에게 세대 전이되는 것을 행동 수준에서 차단한 첫 번째 자기결정적 선택이다. 이전까지 폭력을 견디는 수동적 생존자였던 델리아는 여기서 처음으로 현실의 구조를 바꾸는 능동적 개입자가 된다.
폭력에 시달려온 델리아가 옛 연인 ‘니노’와 재회하는 장면 역시 흥미로운 심리적 장치로 기능한다. 관객은 사랑이 그녀를 구원할 것이라 기대하지만, 영화는 이 로맨틱한 서사를 과감히 배반한다. 이는 서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델리아의 회복은 타인의 구조에 의해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외부 구원자에 대한 환상을 벗어나, 반두라(A. Bandura)의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획득해 나간다.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감각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녀가 소중히 품어온 편지가 연서가 아니라 투표 통지서였다는 반전은,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시민적 행위가 자기 회복의 핵심 계기임을 선언한다. 투표소로 향하는 마지막 걸음은 실존적으로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델리아는 더 이상 환경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선택을 통해 스스로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빅터 프랭클이 말한 것처럼 인간은 어떤 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를 가진다.
1946년 6월 2일은 이탈리아 여성 참정권의 시작을 상징하는 날인 동시에, 델리아 개인에게는 ‘자기개념이 탄생하는 날’이다. 침묵과 체념의 흑백 세계에 머물던 그녀는 한 표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딸을 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딸이 살아갈 세상의 질서 자체를 바꾸는 선택에 참여함으로써 그녀는 비로소 ‘어머니’에서 ‘시민’으로, ‘피해자’에서 ‘주체’로 변모한다.
마지막 장면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 심리학적으로도 깊은 해방감을 남긴다.
여성의 손끝에서 투표지가 들어가는 그 순간, 한 인간이 오랫동안 내면화했던 무기력과 공포를 넘어 자기 삶의 저자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보게 된다.
2주 전 극장에서 우연히 시간이 맞아 보게 된 영화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였다. 큰 기대 없이 선택한 작품이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수작이었다. 최근에 본 영화들 가운데서도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