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하루 한 줄

이야기가 많아야 행복하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by 마음 자서전

이야기가 많을수록 행복한 삶이다.

내가 하는 이야기의 내용이 바로 '나 자신'이다. 생각도 이야기다. 내가 나 자신과 나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문화심리학자 비고츠키는 생각을 '내적 언어' 라고 했다. 개인의 생각만이 아니다.

21세기를 '스토리텔링의 시대' 라고 한다. 다양한 방식의 '기호 sign' 와 '상징 symbol'으로 매개된 스토리텔링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구성 원리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이야기가 없는 이들은 '남의 이야기'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중년들은 모여 앉으면 정치인 이야기다. 허나 우리가 뽑은 정치인을 욕해봐야 다 우리 수준을 욕하는 일이니 제 얼굴에 침 뱉기다.

그러나 낚시꾼 이야기나 골프 이야기는 정치인 욕하기와 질적으로 다르다. 일단 이야기가 착하다. 남에 대한 비난이나 사디즘적 투시가 포함될 확률이 적다. 내 이야기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이야기다. 내가 겪은 이야기, 내가 본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야기가 있는 삶은 행복하다. 골프 이야기는 즐겁다. 낚시 이야기는 가슴 설렌다. 그러나 이외에는 달리 나눌 이야기가 없는 남자들의 삶은 참 슬프다. 이야기는 풍부하고 다양할수록 좋은 것이다. 남의 이야기는 백날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 더 파괴적인 이야기만 난무하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다른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내 피부로 느끼는 삶의 기쁨이나, 슬픔에 관한 이야기, 내 가족,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자잘한 즐거움과 설렘에 관한 이야기가 많을수록 행복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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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로 가득 찬 삶이 진짜 재미있는 삶

2002년 월드컵처럼 온 국민이 나와 빨간 옷 입고 세상이 뒤집어져야만 재미있다고 느낀다. '엄청난 재미'에 대한 환상이다. 이 땅의 사내들은 뉴스도 열심히 본다. 아내와 아이들의 엄청난 저항을 무릅쓰고서...

도대체 왜 이렇게들 열심히 뉴스를 보는 것일까? 세상이 뒤집어지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저 밋밋한 뉴스만 나오면 재미없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잘 돌아가는 나라라면 밋밋한 뉴스만 나와야 한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뉴스가 자주 생기는 건 후진국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 이 땅의 사내들은 자신들이 '독수리오형제' 인 줄 알고 지구를 지키겠다고 큰소리친다.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는 이 땅의 사내들에게는 이야기가 없다. 내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삶이 재미없다는 이야기다.

재미의 문화사적 기원은 이렇다. 재미라는 단어는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나타난 문화현상이다. 각 문화권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재미를 사회적으로 구성하기 시작했다. 재미의 사회적 구성을 가능케 한 조건은 주체의 성립이다. 신분과 계급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주체가 근대에 등장한다.

집단적 의미부여의 행위로만 존재했던 '역사서술'을 이제 개인차원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내러티브 전환 narrative turn' 이라 부른다.(제놈 브루너) 내러티브란? 자기서술 행위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과 느낌에 대해 스스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야기하기, 즉 '스토리텔링 storytelling' 현상은 삶의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한 의미부여 과정이다.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기, 즉 스토리텔링의 내용은 대부분 자신의 행위를 가능케 한 동기, 즉 모티베이션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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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사랑 행위를 생물학적인 종족번식이라는 동물적 충동이 아니라,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 사랑스러운 목소리 등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러티브 구성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가장 잘 설명해 줄 뿐만 아니라 의미 부여가 명확한 개념으로서 '재미'라고 하는 차원이 비로소 생겨나게 되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원인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경우처럼 답답한 경우는 없다. 그래서 그 이유를 끊임없이 이야기 한다.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한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행위는 삶의 의미를 찾는 행위다.

이야기가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생략되어버리는 까닭이다. 자신에 대해 할 이야기가 별로 없다는 것은 사는 재미가 없다는 뜻이다. 아파트 이야기나 주고받는 삶은 삶이 아니다.

자기가 찾은 작은 즐거움에 관해 가슴벅차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삶이 진짜다.

대통령이 어떻고, 정치가 사회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진짜 내 이야기가 아니다. '독수리오형제' 이야기 일 뿐이다. 가슴 설레는 나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 찬 삶이 진짜 재미있는 삶이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김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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