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복종》
우리나라는 왜 선진국처럼 개척자, 선구자, 발명가 등 위대한 인물이 나오기 힘들까? 그 답을 목수정은 이렇게 말한다.
‘자발적 복종이라는 병균을 담은 물이 우리 발아래 출렁인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위협적으로 차오른다. 대체 언제부터 이 검은 물은 우리의 발밑으로 밀려오기 시작한 걸까?
그 원죄는 우리가 한 번도 깨끗이 밀어내지 못한 유교적⋅봉건적 질서에서 찾을 수 있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고,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이념을 가졌던 이 나라, 그러나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이성계가 나라를 지배할 사상적 무기로 유교사상을 택한 후 무려 5백여 년간 충과 효가 결합되고 사농공상(士農工商)과 삼강오륜(三綱五倫)이 뒤범벅되어 빚어낸 옹골진 수직의 질서가 우리의 삶에 고착된다.’ 8쪽
독재자들은 절대적 복종을 요구한다. 군사독재의 망령이 사회 곳곳에 잔재되어 있다. 자발적 복종을 요구하는 무언의 압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시킨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문제점 중 하나다. 정치, 교육, 예술, 종교 등 모든 분야에 자발적 복종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최근의 Me Too운동도 여성들의 자발적 복종을 요구한 남성문화의 폭력성 때문이다.
질 들뢰즈에게도 자발적 복종은 자본주의가 정착해놓은 핵심적인 장애물로 포착된다. 들뢰즈는 묻는다.
“왜 민중은 자신의 노예된 삶을 숭배하는가? 어찌하여 인간은 그것이 자유라도 되는 양 굴중을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가? 어찌하여 민중은 자유를 획득하는 것뿐 아니라, 단지 그것을 견뎌내는 것조차 힘들어하는가?”
자유를 애써 쟁취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주어져도 참기 힘들어하는 민중은 끊임없이 독재와 파시즘의 출현을 허락한다. 바로 거기에 인류의 비극이 있다. 24쪽
인간의 내면이 성숙하지 못한 사회는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한다. 유독 한국 사회는 명품에 열광한다. 속은 텅 비고 보여줄 게 없으니, 명품으로 포장된 외모를 보여주어야 한다. 건물도, 자동차도 외형에 집중하고 있다.
‘명품에 대한 한국사외의 숭배, 자본에 대한 눈물겨운 숭배 역시 물질의 노예들이 행하는 자발적 복종이다. 명품이란 자신의 기호를 연출해낼 안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비싼 돈을 지불하고 자신을 위장하는 수단이다. 그것으로 우리는 비슷한 욕망을 가졌음을 입증한다.’ 27쪽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복종이 아니라 노예처럼 굴종하는 것을 본다. 그들은 통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독재자가 행하는 폭정의 피해자가 된다. 재산도 부모도 아내나 자식도 없이 자신의 삶마저 스스로의 소유가 아닌 인생을 살면서 이 모든 것을 기꺼이 약탈당한다. 군대로부터 당하는 약탈도 아니고, 피를 뿌리며 대적해 싸워야 하는 야만인들로부터 당하는 것도 아니다. 그 약탈은 오직 한 사람에 의해 행해진다. 40
코끼리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자신을 방어하다가 포박당하는 순간 나무에 머리를 처박아 스스로 턱과 이빨을 부러뜨린다. 이는 오직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의지를 온몸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닐까? 60
자발적 복종의 첫 번째 이유, 습관.
자발적 복종의 일차적 근거가 습관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치 말이 길드는 과정과 같다. 말에 재갈을 채우면 처음에는 재갈을 물어뜯다가 나중에는 익숙해져 재갈을 갖고 장난질한다. 말에 안정을 얹으면 처음에는 격렬하게 반항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을 짓누르는 무거운 장비와 장신구를 뽐낸다. 81
복종의 두 번째 이유는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다른 이유가 추가된다. 독재 하에서 사람들은 쉽사리 비겁해지고 나약해진다. 88
종교를 남용하는 악행을 저지른 자들은 그보다 더 큰 고통의 형벌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104
질서를 강조할 때 조심해야 한다. 진실이 동행하지 않는 질서는 큰 무질서를 초래한다. 146
《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애시, 심영길, 목수정 옮김, 생각정원, 2015, 2018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