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 돌봄 윤리》
《돌봄 : 돌봄 윤리》 (버지니아 헬드, 김희강, 나성원 옮김, 박영사, 2017, 20180403)
공리주의 윤리 같은 자유주의 도덕이론과 차이를 보이며 다음의 특징을 갖는다고 헬드는 주장한다.
첫째, 돌봄윤리의 핵심은 취약한 의존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도덕적 의무이다.
모든 인간은 의존을 경험하며, 취약한 의존인의 돌봄요구는 매우 절박하고 또한 도덕적인 것이다. 이 때 돌봄윤리는 취약한 의존인의 돌봄요구에 대한 도덕적 응답이다.
둘째, 돌봄윤리는 공감, 동감, 민감성, 응답성 같은 감정을 유의미한 것으로 고려한다.
돌봄윤리는 이성과 합리적 연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도덕의식은 문제가 있으며, 도덕적 지침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셋째, 돌봄윤리는 추상적 논의에 회의적이며 보편적 원칙에 기대지 않는다.
보편적universal이고, 불편부당한impartial 원칙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 도덕이론과는 달리, 돌봄 윤리는 구체적particular이고 부분중심적partial인 관계와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넷째, 돌봄윤리는 가족과 우애의 ‘사적’ 영역의 도덕적 중요성을 등한시하는 주류 도덕이론의 입장에 비판적이다.
돌봄윤리는 가족, 우애 및 사적집단의 맥락에서 상호연계된 사람들, 즉 감정과 비자발성이 결부된 불평등하고 의존적인 사람들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도덕문제를 중요하게 간주한다.
다섯째, 돌봄윤리는 도덕적⋅인식론적으로 인간을 관계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존재로 바라본다.
이는 인간을 합리적, 자율적, 자기이해적 및 비의존적으로 전제하는 주류 도덕이론의 관점과 다르다. 따라서 돌봄윤리는 개인의 권리 혹은 개인의 선호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기본적인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는 선택적이고 자발적이라기보다 가족적⋅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우리 안에 내장된 우연에 의해 우리 앞에 펼쳐진다고 간주한다. 인간은 수많은 사회적 유대로 구성되며 이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이 확립된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돌봄윤리는 주류 자유주의 도덕이론에 대해 비판적이다. 돌봄 관점에서 직시하는 자유주의 도덕이론의 가장 큰 한계는 돌봄이라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부인할 수 없는 경험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구성원을 비의존적이고 자유로우며 평등하고 합리적인 행위자인 것처럼 간주하는 것은, 모든 사람은 자유주의적 개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수 년 동안 돌봄을 받아야 하며 돌봄관계에 얽혀있었다는 사실을 묵인하는 것이다. 1~3
정의윤리와 돌봄윤리에 대한 헬드의 입장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정의윤리는 도덕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정의윤리는 제한된 영역에만 적용될 수 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정의윤리가 모든 도덕문제에 적합한 포괄적인 도덕을 제공할 수 있다고 오판하여 정의의 범주를 확대하려고 하는 전통적인 관행이다. 돌봄윤리는 공적 삶에 적합하지 않으며 사적 영역에만 국한시켜야 한다는 주장 역시 기각되어야 한다.
둘째, 돌봄과 정의는 대체되는 가치로서 도덕문제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법과 도덕적 권고사항을 제시한다고 이해된다.
‘정의윤리는 공정, 평등, 개인의 권리, 추상적 원칙, 원칙의 일관성 있는 적용에 관심을 둔다. 돌봄윤리는 배려, 신뢰, 필요에 대한 응답성, 서사적 어감narrative nuance, 돌봄관계 조성에 초점을 맞춘다. 정의윤리가 경쟁하는 개인의 이해와 권리 사이의 공정한 해법을 추구하는데 비해, 돌봄윤리는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의 이해를 단순히 경쟁적으로 보지 않고 중요하게 얽혀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정의는 평등과 자유를 보호하는 반면, 돌봄은 사회적 유대와 협력을 권장한다. --- 정의윤리의 주류 도덕이론에서는 평등의 가치, 불편부당성, 공정한 분배, 불간섭이 우선시된다. 정의의 실천에서 개인의 권리는 보호되고, 공정한 판단이 내려지며, 처벌은 합당한 것이고, 동등한 대우가 추구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돌봄윤리는 신뢰, 연대, 상호관심, 동감적 등답의 가치가 우선한다. 돌봄실천에서 관계는 기르고 쌓아야 하고 필요는 응답받아야 하며, 민감성이 발휘되어야 한다.
셋째, 근본적으로 돌봄윤리는 정의윤리가 부합되는 보다 큰 도덕적 틀을 형성한다. 다시 말해, 제한된 영역에서 정의에 우선권을 둘 수 있으나, 돌봄은 가장 기본적이며 본원적인 도덕적 가치이다. 돌봄은 그 자체로 실천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이 돌봄을 필요로 하는 한, 우리는 돌봄 없이는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6
돌봄이 폭넓은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 가치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돌봄윤리를 “사적” 영역에 국한된 “가족윤리”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돌봄의 초기 논의에서 그러한 주장이 있었고 또한 개인적 맥락에서 돌봄과 연관된 가치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고는 있지만, 돌봄윤리를 올바로 이해한다면 돌봄윤리는 근원적이며, 정의와 마찬가지로 정치제도 및 사회의 구성방식을 다루고 있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돌봄윤리의 가치는 전통적으로 의존해온 가치보다 더 근원적이며 사회적 삶과 더 부합된다.
돌봄윤리의 특징
첫째, 돌봄윤리의 핵심은 우리가 책임지고 있는 구체적인 타인의 필요를(누군가의)아이를 돌보는 것은 당연히 또한 응당 옹호 받는 인간의 도덕적 고려사항 중 가장 우선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인생에서 수 년 동안(돌봄)의존적이고, 이러한 의존인이 필요로 하는 돌봄에 대한 도덕적 요구는 절박한 것이며, 인간의 생존과 성장을 가능하게 만드는 돌봄관계의 발전에는 매우 중요한 도덕적 특징이 존재한다는 점을 돌봄윤리는 인식한다. 모든 사람은 적어도 생(生)의 전업에 잏ㅆ어 돌봄을 필요로 한다.
둘째, 우리가 존재하고 행동하는데 있어 무엇이 도덕적인 권고사항이고 무엇이 도덕적으로 최선인지를 이해하려는 인식론적 과정에서 돌봄윤리는 감정을 거부하기보다 중요시한다.
셋째, 돌봄윤리는 편견과 자의성에 빠질 위험에서 더 자유로워지고 또한 불편부당함에 더 근접할 수 있기 때문에, 도덕문제에 대한 논의가 더 추상적일수록 더 좋다는 주류 도덕이론의 입장을 거부한다.
돌봄윤리는 우리가 실제로 관계를 맺는 특정한 타인의 주장을 배제하기보다 오히려 존중한다. 31
돌봄윤리는 일반적으로 주류 도덕이론에서 상정하는 자족적이며 비의존적인 인간이 아니라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전제한다. 36
정의윤리는 공정, 평등, 개인의 권리, 추상적 원칙, 원칙의 일관성있는 적용에 관심을 둔다. 돌봄윤리는 배려, 신뢰, 필요에 대한 응답성, 서사적 어감, 돌봄관계 조성에 초점을 맞춘다. 39
조안 트론토(John Tronto)의 관점에서 보면, 돌봄은 아주 분명하고 명시적인 노동이다. 그녀와 베레니스 피셔(Berenice Fisher)는 “~에 대한 돌봄을 담당함(taking care of)”을 ‘우리가 가능한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세상‘을 바로잡고 지속시키고 유지시키기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종(種)의 활동’으로 정의했으며, 돌봄은 사물이나 인간 및 환경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 70
로렌스 블룸Lawrence Blum)은 돌봄은 단지 “마음을 움직이는 태도” 즉 미덕이다. (---)
로렌스 돌봄이 “돌봄, 공감, 관심, 친절, 사려, 관대라는 미덕‘, 즉 ”돌봄의 미덕(care virtues)’이라 칭하는 것들에 대한 논의에서, 돌봄을 미덕으로 간주할 때 놓치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 75
《돌봄: 사랑의 노동Love’s Laber)》에서 에바 커테이(Eva Kittay)는 돌봄과 중첩되지만 동일하지 않은 ‘의존노동dependency work)에 집착했다. 의존노동을 예로 들어, 영유아와 심각한 중증장애인 등 ’불가피하게 의존적인 사람들을 돌보는 노동‘으로 정의한다. 돌봄노동에는 일반적으로 정서적 차원이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차원이 없는 (돌봄)의존노동도 좋은 돌봄이라 할 수 없지만 실행할 수 있다. 77
돌봄은 분명 노동의 한 유형이지만, 노동 그 이상이다. 돌봄노동은 관계적이다. 또한 다른 노동에서는 가능할 수 있어도, 돌봄노동은 기계로 대체될 수 없다. 러딕은 “돌봄노동이 본질적으로 관계적”인 것은 동의하지만, 그 관계는 반드시 의식적으로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어떤 것이라고 지적한다. 필자는 우리가 돌봄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면, 돌봄관계를 통해서 돌봄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79
돌본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미덕을 떠올릴 때, 바로 떠오르는 미덕 중 하나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돌봄이 존경받을 만한 것이라 생각하며, 우리의 아이들이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93
돌봄이 카리타스(caritas, 사랑, 자선)라는 기독교적 미덕에 가깝다고 하지만, 카리타스는 오히려 자비와 유사하다. 94
많은 돌봄이론가에게 인간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사회적 유대에 의해 구성되었다. 돌봄윤리는 인간관계를 평가하고 돌봄관계에 가치를 부여하는 등 인간관계에 주목한다. 돌봄윤리는 주류 도덕이론이 가정하듯, 도덕적으로 정당한 관계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에 의해 자발적으로 시작된다고 상정하지 않는다. 98
관계적 접근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율성이라는 권능을 개발해가는 사회적 존재이다. 98
돌봄관계는 상호성mutuality을 요구하며, 인간 삶의 상호의존적인 다양한 맥락에서 상호성을 성취하는 방식을 조성시킬 것을 권장한다. 109
상호적 자율성은 개인적 자율성과 다르다. 그것은 시간, 공간, 일상의 결정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 그리고 얼마만큼 독립적으로 활동할 것인가에 대한 상호이해와 상호수용을 포함한다. 돌봄관계는 상당한 상호적 자율성을 포함한다. 114
“돌봄노동은 다른 종류의 노동보다 임금이 적다.”고 언급하면서 돌봄노동의 시장화 혹은 상품화에 대한 반대가 부분적으로만 유효하다고 지적한 폴라 잉글랜드Paula England와 낸시 폴브르Nancy Folbre 같은 페미니스트의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이들은 “사랑과 돌봄이 상품화로 훼손된다는 신념은 아이러니하게도 돌봄노동에 대한 저임금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
우리는 사람을 존중해야 하며 단순한 상품으로 대해선 안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적절한 방식이지만, 많은 분야에서 단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미학적이거나 역사적 가치의 진가를 음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9
인간으로서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가치 있게 대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러한 가치부여 없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210
교사의 주된 목표도 경제적 이익이 아니다. 만약에 그 교사가 사기업에서 일함으로써 돈을 훨씬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아마도 학교와 교사의 주된 목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지 가능한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아닐 것이다. 비영리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는 자신의 만족을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보건의료 필요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며, 병원의 목표, 역시 주주의 이익을 증가시키기보다 공동체의 건강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공동체에 봉사하는 동기를 개인적 혹은 제도적 선호로 축소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동체 전체 혹은 구성원의 필요에 봉사하려는 동기부여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