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어르신들
요양원 어르신들 1.
이 어르신은 아직 요양원에 올 나이가 아니다. 그만큼 아직은 나이가 젊다. 현재 57세다. 그가 왜 한창 일할 나이에 요양원에 오게 되었는지? 그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시골에 작은 마을에 교회가 있었다. 마을에 하나뿐인 교회는 작은 공동체이자 만남의 장소였다. 시골의 사랑방이 사라진 후에는 사랑방 역할까지도 도맡아 했다. 이곳에서 자라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짓고 있던 청년도 교회를 다녔다. 어머니도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따라 다닌 것이었다.
교회에는 노인들이 많았다. 어디고 그렇듯 젊은이들은 적었다. 젊은이들은 얼마 안 되어 서로를 잘 알게 되었다. 총각처녀가 함께 교회를 다니지만 그들은 서로 이성으로 보지 않고 친구로 여겼다. 어려서부터 장난을 치며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나이가 청년이 되었지만 물정모르는 초등학교 때와 같이 장난을 치곤 했다.
그런 교회에 변화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유치부를 담당하실 여자 선생님을 소개한 것이었다.
청년은 유치부 선생님에게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선생님은 참으로 예뻤다. 시골에서 볼 수 없는 아가씨였다. 그의 마음은 오직 유치부 선생님으로 가득했다. 청년은 머리손질을 하고 신발을 닦고, 옷을 단정하게 입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유치부선생님을 가까이할 기회가 있으면 기분이 들떠 있었다. 애정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는 나이 많은 아저씨에게 물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까운 아저씨를 집으로 찾아갔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였지만, 정작 자신의 고민은 꺼내지도 못했다. 어떻게 서두를 풀어나가야 할 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처음에는 동네 이야기, 농사 이야기로 일관했다. 그러다 교회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었다. 이때다 싶어 유치부 선생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유치부 선생님이 얼굴도 예쁘고 아이들도 잘 가르치네요.”
“너 다른 사람 칭찬을 잘 안 하는데 선생님 칭찬을 하는 걸 보니 너 딴 생각 가진 것 아니지?”
아저씨는 눈치가 빨랐다. 자신이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아주니 고맙기도 했다. 그런데 청년에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을 하지 않는가.
“너 중학교 나왔잖아. 선생님은 고등학교를 나왔어. 중학교 나온 녀석이 네 처지도 모르고┅.”
마음이 여린 청년에게 있어 그 말은 큰 상처가 되었다. 공연히 아저씨에게 속마음을 들키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무거웠다.
읍내에 나가 술을 마셨다. 이집 저집 술집을 돌아다녔다. 술집에는 술집여자들이 있었다. 돈을 쓰면서 위로받는 위로는 진정한 위로가 아닌데도 그때는 그게 좋았다. 술집여자들이 상처 난 마음을 위로해준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도 청년은 읍내 술집을 자주 찾았다. 술집을 가지 않을 때는 집에서 음식을 먹었다.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그는 결혼을 했지만 몇 년 살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다. 술집 여자에 익숙해진 청년은 결혼 생활을 원만히 할 수 없었다.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지만, 계속 마시고 안주를 먹으면서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뒤늦게 병원을 찾았을 때는 당뇨가 많이 진행되어 있었다. 급기야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첫사랑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이 청년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것이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골만은 《EQ 감성지능》에서 감정을 스스로 위로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끊임없이 괴로운 감정과 싸우게 되고, 이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좌절과 혼란에서도 빠르게 회복한다고 했다.
그는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야 요양원에 왔다. 그는 때때로 “그때 마음의 상처가 엄청 컸다.”라고 후회하곤 했다.
대인관계에서 상대에게 위로의 말보다 상처를 주는 말을 더 하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가 한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 하지 않는가. 힘이 되어주지는 못할 망정, 희망을 가지려는 사람에게 절망을 주는 말은 삼가야 할 일이겠다. 그의 첫사랑의 아픔이 오래도록 내 가슴에 앙금처럼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