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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Oct 23. 2018

경쟁사회
(사람은 옅어지고, 사물은 뚜렷한)

《모멸감》

 경쟁 사회 (사람은 옅어지고, 사물은 뚜렷한 사회)

《모멸감》(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진호 지음, 유주환 작곡, 문학과지성사, 2014, 180927)


 김찬호의 《모멸감》을 재독(再讀)했다. 독서일기에는 2014년 4월15일에 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에는 발췌만 했다. 자존감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느낌이었다. 작가는 '복음자리'에서 활동을 했다. 나도 예전에 여기를 방문한 적이 있은데, 이곳은 고(故)제정구 국회의원이 설립한 곳으로, 빈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성지(聖地)같은 곳이다.저자는 사회운동을 하다가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되고, 공동체에서 모멸감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나 역시 빈민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은 서로를 존경하기보다는 폄하를, 칭찬보다는 비난을, 존댓말보다는 반말을 쓰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자존감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 다른 사람의 자존감을 깎아내려서 자신과 동등하게 만들려는 심리'라고 말한다.

 목차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면, 한국인의 감정, 사회문제, 갑질 문화와 자존감이다. 특이한 점은 음악가들이 QR코드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넣은 것이다. 음악 역시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저자가 클래식 음악을 넣은 것은 이를 통해 마음의 상처가 치유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의 대표 키워드는 감정이다. 감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감정에 대한 인식은 낮다. 도시를 알려면 복잡한 뒷골목의 위치를 알아야 한다.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복잡한 뒷골목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고속도로를 다니듯이, 사람들을 큰길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루저’, ‘찌질이’, ‘잉여인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휩싸인다. 상승이동에 대한 욕망과 비교의식이 강한데 자신의 처지는 점점 뒤처지는 듯하기에, 그 간극이 자괴감과 열패감으로 드러난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등의 표현에 함축되어 있듯이, 이른바 ‘르상티망ressentiment’(원한, 증오, 질투 따위의 감정이 되풀이되어 마음속에 쌓인 상태)이 번식한다. 그리고 불합리한 갑을관계가 생존을 옥죄고 자존심을 위협하는 가운데 피해의식과 원한 감정이 깊어진다. 그래서 조금만 건드려도 상처받고, 그에 대한 앙갚음으로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억누른다. (p40)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한국은 극심한 경쟁사회다. 입시로 시작해서 입사로 취업경쟁에 내몰리고, 입사 후에는 승진경쟁에 싸워야 한다. 정년은 보장받을 수 없는 사회다. 사람과의 경쟁에도 지쳐가는 데, 알파고가 미래까지 위협한다. 이성으로 승부하는 곳에서, 감정은 메말라가고 있다. 마치 도박장에서 승부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18세기 말 낭만주의 시대에 '이성 이외에 감정의 중요함이 부각되면서 이성의 시대는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했다‘고 사회학자 남경태는 《철학입문 18》에서 말한다. 《모멸감》의 저자도 “감정은 이성보다 근본적이고 강력하다. 그것은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잉여가 아니라, 중대한 인간사를 좌우하는 핵심이다.”(p.29)라고 말한다. 세계의 흐름은 이성보다 감정을 중요시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성을 중시한다. 스펙을 따진다. 스펙이 부족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폄하함으로 만족을 얻으려는 심리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서구사회는 팁문화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고마운 감정을 돈으로 보상해준다. 한국은 다른 사람의 서비스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정신과 의사 문지현은《자존감 대화법》에서 언어행동을 네 가지로 나눈다. '첫째, 수동적 의사소통이다.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눈치를 보는 사람이다. 둘째, 공격적 의사소통이다. 자신의 목소리만을 높인다. 셋째, 수동공격 의사소통이다. 드러내고 자신의 주장을 하지는 않아도 분노와 불평이 쌓인 사람이다. 넷째, 자기주장형 의사소통이다. 건강한 유형이다. 자기주장을 하면 건강한지는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된다. 자기주장형 의사소통은 다른 사람과 진실한 관계를 맺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한국사회는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을 예의 없는 사람, 버릇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 

 저자는 '모멸감'에 대한 해결책으로 감수성과 소수자 연대를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생각과 다르다. 감수성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자아를 찾는 게 중요하다. 모멸감 없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자아를 찾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인들 대부분이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세계적인 사회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자아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으면, 공감을 제대로 성숙하게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는 사람은 모멸감을 주고받지 않는다. 공감의 기본은 자아를 찾는 일이다. 모멸감을 극복하는 일도 자아를 찾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알쓸신잡>에 나왔던 건축가 유현준은 그의 책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한국인은 똑같은 학교교실과 운동장, 똑같은 교과서, 한 가지 정답만을 강요하는 문제지,  수동적 교육을 받고 자랐다.  때문에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다른 사람이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해도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를 찾고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타인(他人)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문제를 깊이 파악한 점을 높이 평가할 만한 책이다. 문제의식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해결책에 대하여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한국사회를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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